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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Nov 15. 2021

은퇴 포트폴리오

- 스마트 소설 -

서른 중반인 그에게 요즘 고민이 하나 생겼다.

조기 은퇴하여 전 세계적으로 젊은이들의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파이어(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에 합류하길 희망은 하나 여자친구와 의견대립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친구와 결혼까지 생각하고는 있으나 둘 다 딩크(DINK)족이 되기를 희망한다.

문제는 양가 집안 어른들이 허락할지 둘 다 아직 모르고 있다.

결혼 승낙은 문제없이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손자든 손녀든 안겨드릴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녀도 외동딸이며 그 또한, 외동아들이다.

하지만 자녀를 많이 낳아 형제들간에 외롭지 않게 만들어 주겠다는 생각을 그들은 전혀 해보지 않았다.


자녀는 삶에 있어 지장만 초래하는 짐으로 인식할 뿐이다.

간혹 자녀 문제로 고민하는 부부들이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자칭 전문가들로부터 상담을 받고 문제해결 솔루션을 제공받는 내용을 그와 그의 여자친구가 볼 때마다 역시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옛 어른들의 말이 하나도 틀림없다고 서로 격하게 공감하곤 하였다.

이런 점에 있어서 그들은 이견이 없었다.

더구나 그가 생각할 때 파이어족이 되기 위해선 자녀교육을 위한 지출을 무조건 막아야 했다.


그런데 그의 여자친구는 파이어족이 되는 걸 극구 반대하는 견해는 아니지만, 파이어족에 합류하려면 도대체 얼마의 돈을 모으고 나서 은퇴할 것인가에 관해 대화 나누면서 견해차를 보인 것이다.

자신의 회사생활로 받는 봉급으로 많은 돈을 모을 수 없다는 것을 그 역시 잘 안다.

그가 파이어족에 관한 여러 책들을 섭렵한 결과 하늘에서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지는 돈벼락을 맞지 않는 한 무조건 은퇴 후에 무언가에 투자해서 수익을 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경제전문가를 자처한 책의 저자들이 하나같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 것은 결국 은퇴 후 돈벌이 수단은 오직 투자였다.

하지만 그의 여자친구는 어딘가에는 반드시 돈을 굴려서 내 손에 수익이 들어와야 한다면 그것이 무슨 진정한 파이어족 이냐는 거였다.

그의 여자친구가 이것에 대해 의아해했고 불안해했다.


더구나 그녀가 이해하는 은퇴의 개념은 모든 사회활동에서 손을 떼는 것으로 그건 곧 경제활동 인구에서 자신이 제외된다는 것이고 남은 여생을 아무 일 안 하고 그저 한가로이 지낸다는 건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삶이겠냐는 것이었다.


“오빠는 40대에 은퇴하고 나서 무엇을 가장하고 싶은 건데?”


“아직 구체적인 건 아닌데, 사업? 아님,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 뭔가 큰돈 나오기를 바라는 건 아니고 뭐가 됐던 우리 둘이 먹고사는 데 지장 없는…….”


그가 말을 제대로 끝맺음 못 하자 그녀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게 무슨 은퇴야? 계속 일할 거면서! 욜로(YOLO)족이건 파이어(FIRE)족이건 난 개인적으로 그런 삶이 하나도 안 부럽고 원하지도 않아. 그런 삶이 어딨고 도대체 누가 그런 삶을 살고 있냐고! 돈 없으면 사람이 초라해진다는 거 오빠도 인정하지? 그렇게 초라한 사람으로 살더라도 물론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오직 숨만 쉬고 돈 벌어서 오빠 말대로 파이어족이 됐다고 해보자고. 정작 그런 삶이 오빠가 정말 원하던 삶이야? 요새는 100세까지도 내다보는 세상인데 남은 수십 평생을 놀고먹으며…….”


놀고먹는다는 극단적 표현에 그가 화가 났는지 아니면 억울했는지 그녀의 말을 끊고 짜증 섞인 말을 내뱉었다.


“누가 놀고먹는데! 수익 낼 만한 뭔가를 찾겠다는 거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겠다는 거야.”


“글쎄, 그게 뭐냐고 도대체! 얼마의 돈이 있어야 파이어족이 되는 건데? 금융자산 10억 이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자 기준이 연 소득 3억 이상에 최소 100억이라는데, 어떤 일을 해야 그렇게 모으니? 오빠가 아는 파이어족은 부자랑은 전혀 연관이 없는 그런 개념인가?  결국, 일 안 하면 오빠 말대로 투자하는 거잖아. 투자가 구체적으로 뭔데? 주식, 부동산, 증권, 뭐 도박도 있겠다. 이거 전부 원금 보장 안 되는 돈 넣고 돈 먹기 모험인 거고 설마 수익 생긴다고 해도 불로소득 아냐? 누가 그런 거로 돈 번 데? 오빠 하버드 나왔어? 내가 알기론 가상화폐로 우리나라에서 수억 돈 벌었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남자는 하버드 출신밖에 없더라! 불로소득도 머리가 좋아야 하는 것 같더라고.”


“야, 넌 또 뭔 그런 논리로 사람 무안을 주고 다른 남자와 비교를 하냐!”


“무안 주고 비교하자는 게 아니야. 난 지금 현실을 말하는 거라고! 오빠 의도는 평생 일해서 벌 돈 한꺼번에 벌어서 남은 인생 편하게 놀고먹고 싶은 건지 아니면 오빠가 하고 싶은 그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려는 건지 도무지 오빠 생각을 전혀 모르겠다는 것이고, 오빠도 생각이 정리가 안 되어 있으니까 나를 이해 못 시키는 거잖아. 그리고 내가 제일 걱정하는 건 오빠 말대로 오빠가 원하는 파이어족의 삶을 산다고 가정은 쉽게 하면서 그렇게 벌어 놓은 돈이 오빠에게 평생 붙어 있을 수 없다는 가정은 또 왜 못하는 건데. 이렇게 근거 없는 막무가내식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데? 그건 순전히 오빠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해서 그런 거 아니야?”


마치 방언이라도 터진 듯 쉴새 없이 몰아치는 여자친구의 말에 그는 넋이 나가버렸다.

한참을 멍하니 있는데 이런 얘기 다시 하고 싶으면 자기를 이해시킬 수 있게 정확한 근거와 함께 은퇴계획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작성해 갖고 오라는 말에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누가복음 12장 19-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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