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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에게.
사진에 관한 10가지 사실.
1) 최근 한 사진작가님의 전시 토크쇼에서 사진에 대한 아주 인상 깊은 관점을 듣게 되었어. '사진이란, 특히 풍경사진이란, 아주 오랜 시간 똑같은 풍경을 본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 담긴 모습을 결국 한 사람이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기록하는 것'이었는데, 이 얘기를 들은 순간 한방 맞은 느낌이었어. 아, 내가 찍은 그 산의 봉우리는 이미 수 천명, 수 만 명의 눈에 담긴 모습이었겠구나. 조선시대에도, 그 이전에도 나와 같은 시각을 가진 사람은 존재했겠구나.
2) 고등학생 때는 석원이에게 중고로 산 DSLR을 들고 부산 곳곳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어. 고등학생 시절 가지고 있던 우울감, 불안함, 회의감 등등 모두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삼키곤 했지. 그때 찍은 사진이 아주 많아. 그리고 자연스레 샷을 바라보는 능력을 기르게 된 것 같아. 그 당시에는 카메라는 내 친구이자, 삶이었으니까.
3) 예전에 오랜 기간 여행할 때, 작은 콤팩트 카메라를 목에 걸고 걸어 다녔어. 하루에 10시간 정도는 걸어 다녔으니까, 목도 10시간 정도 카메라를 달고 았던 셈이지. 그랬더니 어느 순간 두통이 너무 심하게 오더라. 컨트롤이 안 될 만큼 말이야. 그래서 그때부터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어. 지금도 가끔 콤팩트한 카메라를 들고 다닐 때면 주머니에 넣고 다녀. 그래서 주머니가 큰 바지를 선호하나 봐.
4) 내 첫 사진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처음으로 온라인에 올린 사진은 기억나. 싸이월드에 올린 별 모양 헤드폰을 낀 내 모습이었어. 자의식이 (여전히 강하지만) 아주 강했던 중학교 시기의 내 모습이 싸이월드 어딘가에 굴러다니고 있겠지?
5) 휴대폰을 제외한 내 첫 카메라는 중2 때 산 산요 작티라는 캠코더였어. 중고로 15만 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아주 콤팩트하고 해상도도 나쁘지 않아서 매일같이 들고 다닌 기억이 난다. 아직도 가지고 있어. 언젠가 성공하고 나면 자선경매해야겠다.
6) 엄마는 사진을 엄청 좋아했어. 아마도 본가 옷장에는 우리 가족들을 찍은 사진이 수천 장 있을 거야. 그 사진들을 예전에는 가끔 꺼내서 보고 그랬는데, 못 본 지 아주 오래됐네. 이번에 본가 내려가면 봐야겠다. 거기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 과거가 아주 많아!
7) 나는 최근에 증명사진을 모두 내가 찍었어. 조명을 치고, 카메라로 직접 찍는 거지. 그리고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거야. 그러면 무려 2만 원을 아낄 수 있어! 무제한으로 찍을 수 있고. 그렇지만 보정은 셀프야.
8) 공항 수속을 밟으면 안경을 꼭 벗어. 내 얼굴을 제대로 못 알아보더라고. 사진이랑 나랑 많이 다른가 봐.
9) 2018년에 성균관대 교류수학을 하면서 프리마켓에서 천 원짜리 증명사진 장사를 했어. 물론 대쪽박이었지. 삼 천 원짜리 아메리카노는 먹으면서 사진에는 천 원도 안 쓰는 사람들.
10) 내게는 정리되지 않은 사진 수만 장이 있어. 언젠가 꼭 정리하고 싶은데, 계속 쌓여만가. 한 달 내내 정리만 해야 해. 근데 정리하면 무슨 의미가 있지? 누가 본다고?라는 생각도 들어.
2023.05.28.
재요.
다음 주에는 '고성'에 대해 적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