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나의 버럭이
설거지남, 여러 남자와 실컷 연애하고 즐긴 여성과 결혼한 연애 경험 없고 능력만 갖춘 남성을 일컫는 신조어로 몇 해 전 SNS에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처음 이 단어를 접했을 때 드라마에서 봤음직한 설거지남이 떠올라 내심 설거지남으로 살고 있을 알지도 못하는 남자가 가엾다는 생각을 했다. 반면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배우자를 선택하며 나름의 행복을 느끼며 살수도 있을 텐데 특정 부류의 남자를 싸잡아서 평가절하하는 것 같아 그 단어가 불편하기도 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나의 상사는 내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하다. 우리 조직에서 소위 설거지를 해주는 사람이지 않냐”라는 것이다.
설거지, 맛있는 요리를 하고 플레이팅을 한 후 식사가 끝나면 남겨진 그릇을 닦는 행위. 회사에서는 기획을 하고 임원진에게 보고하고 사용자에게 우리 제품을 선보인 후 남겨진 일들을 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지긋지긋하다”, “그만하고 싶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을까? 내 성장에 도움이 되고, 조직 목표 달성에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버티기를 몇 년. 어느새 나는 설거지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나의 상사는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고 한 나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오랜 기간 성취감 없이 계속되는 야근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 고마움을 느끼기 보다 “내가 그동안 한 게 뭐가 있지?”라는 생각으로 나를 향한 자책, 설거지녀라고 말한 상대를 향한 분노, 회사를 향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책임감 때문에 꽁꽁 묶어두었던 나의 진짜 감정을 마주하게 된 것은 명상과 심리 상담 덕분이었다. 첫 상담에서 선생님이 물었다. “눈을 감고 일하는 나를 떠올려보세요. 나를 보면서 느껴지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마치 육체 이탈을 하듯 빠져나와 나를 바라보며 느껴지는 감정을 답하려고 하자 답이 떠오르기도 전에 눈물부터 주르륵 흘렀다. “가엾다. 불쌍하다”라는 감정이 느껴진다고 답했다. 나의 마음을 제3자가 되어 바라보니, 온전히 나의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의 감정을 또렷하게 알게 된 것만으로 무거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마음챙김 명상을 할 때도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짜증과 분노가 치밀면 끊임없이 부정적인 감정의 파도가 밀려온다. 그 감정에 빠지게 되면 감정과 생각이 만나서 한편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왜 나 혼자 이 일을 다해야 하지?”와 같은 피해자 스토리로 드라마를 쓰는가 하면, “난 일을 못해. 실수 투성이야”같은 못난이 스토리가 펼쳐지기도 한다. 이때 멈추고 알아차려야 감정의 늪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마음속에 펼쳐지는 드라마의 플레이 버튼을 잠시 정지시키고 “지금 이 순간 내 감정이 뭐지?” 들여다보고 감정이 이름을 붙인다. 마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 처럼. 오늘은 버럭이가 찾아왔구나 하고. 이때 왜 나는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는거지? 라고 자신을 다그치거나 판단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이 감정은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유용한 정보를 주는 것이며, 치유가 필요하다는 신호인 것이다.
상담 선생님의 질문과 명상을 통한 알아차리기 연습으로 피해자가 주인공인 드라마에서 빠져나와 평정심을 갖고 현재 상황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됐다. 회사에서 설거지를 할 때 “곧 끝날거야. 조금만 더 하면 돼”라며 스스로 거짓 응원을 하며 분노의 거품질을 했다는 것을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어찌 보면 설거지를 해주었다는 상사의 말에 내가 분노하지 않았다면 계속 똑같이 설거지를 하며 지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버럭이가 나에게 쉬어야 할 타이밍이라는 중요한 정보를 주고, 치유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땡큐 나의 버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