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줄이는 출발점은 관점 알아차리기
방콕, 치앙마이, 발리, 파리,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이탈리아, 뉴욕, 요가, 클라이밍, 로드바이크, 스쿠버다이빙, 테니스. 지금까지 회사생활을 하며 갔던 여행지와 배웠던 운동을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봤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지금 여기를 탈출하기 위한 방법으로 택한 나의 취미는 여행과 운동이었다. 여행지에서 만큼은 또는 운동을 할 때만큼은 다가올 내일에 대한 걱정도 지나간 시간의 후회도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여행지에서는 오늘 갈 곳과 저녁에 먹을 음식을 생각하고, 길을 잃지 않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에 집중해야한다. 자전거를 탈 때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핸들을 잡은 손, 페달을 돌리는 발에 집중한다. 익숙하게 자전거가 굴러가면 바람과 햇살을 만끽한다. 다이빙을 할 때는 부력을 조절해야했기에 내 호흡에만 온 신경을 쏟아야 한다. 테니스는 어떤가, 공과 라켓을 휘두르는 내 몸의 움직임에 초집중하지 않으면 공이 빗맞으니 집중할 수 밖에 없다.
반면, 일을 할 때는 집중하지 못했다. 오늘까지 급하게 필요한 상사의 자료 요청, 컨펌을 기다리는 팀원의 메일, 유관 부서의 문의 메일과 메신저에 대응을 하다보면 일의 우선순위도, 오늘의 나의 계획도 온데간데 없어져버렸다. 퇴근 이후 시간이 되어서야 오늘 계획했던 내 일을 하고 나면 어느새 늦은 밤이 되어버리기 일수다. 이런 날들이 이어지다보면 휴가를 내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휴가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꼴이 된다.
타인의 시간에 맞추기 보다 주도적으로 내 업무 시간을 쓰기 위해 몇 가지 원칙을 세워보기도 했다. 오전 11시까지는 나만의 집중근무 시간으로 삼고 그 시간에는 메일과 메신저는 보지 않기, 팀원에게 일임하여 불필요한 확인 단계 생략하기, 여유있게 보고 시점 잡기 등 끌려가는 쪽 보다 끌고가는 쪽이 되기 위해 소위 일잘러들이 떠드는 룰을 적용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임원진이 언제까지 어떤 보고를 해달라는 지령이 떨어지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시간 관리를 잘 못하는 사람인가라는 자책, 일 못하는 사람으로 비춰지면 어떡하지하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스트레스는 시작된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일상의 소소한 취미활동은 모두 접고 나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모니터 앞 붙박이가 되는 것이다.
감정과 스트레스 연구 분야의 심리학자 리처드 라자루스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주는 자극제보다 관점과 자원이 적으면 스트레스를 느끼고, 자극보다 관점과 자원이 크면 스트레스는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가족 중 누군가가 아파서 당장 병원비 2천만원이 필요한 상황(스트레스 자극제)이라고 가정해보자. 돈이 없고(외적 자원),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라고 두려움하고(내적 자원), 이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관점)한다면 가족이 아픈 상황은 스트레스가 된다. 반대로 2천만원을 감당할 여력이 있고, 잘 아는 의사가 있으며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다면 외적 내적 자원은 물론 다시 건강해질 것이라는 관점까지 더해져 스트레스로 인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를 다니며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자원과 관점을 이렇게 정리해볼수 있겠다.
스트레스 상황: 강도높은 업무로 연이은 야근, 급한 보고 자료 작성
외적자원: 일을 함께 할 팀원이 부족함, 도움을 줄 사람 없음
내적자원: 내 능력으로는 이 일을 잘 처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내일까지 끝내야 한다는 조급함
관점: 부족한 리소스와 빨리 보고자료를 만들어야 하는 이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관점
결국 스트레스는 회사가 준 것이 아니라 내가 준 것이었다. 이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그 생각을 하는 내가. 일로 스트레스가 쌓이면 여행을 떠나고 운동에 매진했다. 일터에서 느끼는 불안하고 조급한 감정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 여행과 운동만 하고 살수는 없는 것이 삶이다. 삶은 고통이라고 니체가 말했던가. 니체의 말대로 고통을 긍정하고, 스트레스 프루프가 되기 위해 일상 속 마음챙김이 필요하다. 내 마음 속 여행 혹은 마음 운동처럼 매일 마음챙김 명상이 스트레스 프루프 인간이 되기 위한 내가 찾은 해법이다.
“어떤 부분에서 자원이 부족하지? 이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은 뭐지? 무슨 감정이 일어나고 있지? 신체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지?” 나에게 물어보자. 스트레스를 줄이는 출발점은 ‘인지’다.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 있구나하고 신체 반응과 감정을 알아차리고,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들거나 휴가지로 탈출할 생각 대신 관점을 변화시키는 것이 먼저다.
실제로 휴직을 결심한 후 약 4개월 후에는 팀원이 3명이 늘어났고 조직개편이 되었다.
상황은 바뀌었다. 상황은 바뀐다. 내 관점도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