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담은 전화받는 사람?
엉겁결에 주담이, 또 혹은 IR 담당자가 되었다. 전임자가 불미스러운 일로 갑자기 퇴사를 했기 때문에 나를 가르쳐 줄 선임이나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 같은 건 없었다. 혼자 찾아내서 파악하고 혼자 터득하는 길 밖에는 없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의 본 업무였던 공연이 아직 무대 위에서 상연 중이었고, 그로 인해 공연장에서 주로 업무를 처리하느라 새로 맡은 주담과 IR이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저 회사 주식과 관련된 일이라는 막연한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팀장님, OOO운용사라고 미팅하자고 전화 왔어요. 뭐라고 해요?”
“팀장님, 주주가 전화 와서 IR 담당자 찾는데 어떻게 해요?”
공연장에 있는 나에게 사무실에 있는 팀원들의 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아, 나도 모른다고. 이제 업무 맡았는데 어떡하라고!’라는 대답이 혀끝까지 나오려고 했다. 주식과 IR 관련 업무에 대해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그럼에도 팀장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나는 어떻게든 팀원들의 메시지에 답을 해야 했다.
“일단 운용사 미팅은 최대한 뒤로 미뤄서 다음 달에 가능하다고 하고, 주주들 전화 오는 건 담당자 외근 중이라고 하고 이름이랑 전화번호 받아 놔.”
IR 담당자로서의 첫 오더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건 퇴사한 전임자가 내 옆자리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임자가 주주들과 했던 전화 통화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까지 내가 생각하고 있던 주담이나 IR 담당자의 역할은 회사의 주식과 관련된 업무 보다는그저 주주들의 전화를 받아서 대응하는 것이었다. 때로는 전임자가 언성을 높이고 싸우기까지도 했었다. 그래서 ‘주식 담당자/IR 담당자 = 주주 전화받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나뿐만이 아니라 팀원들 모두에게 자리 잡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시장’ – 여기서 시장이란 증권, 주식 시장을 말한다 –에 회사의 주식을 공개한 회사들을 상장사라고 한다. 회사의 주식을 공개하는 것을 Initial Public Offering, 즉 ‘IPO 한다’고 말한다. IPO를 거쳐서 회사의 주식을 공개하고 나면, 개인이나 증권사, 또는 '자산운용사'라 불리는 전문적으로 투자를 하는 외부 투자자들이 그 회사의 주식을 공개적으로 사고팔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 주식의 주인인 ‘주주’가 있는 것이고, 상장사들은 회사의 주식을 사준 주주들을 응대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즉 회사와 투자자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주식 담당자’, 혹은 ‘IR 담당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IR도 전문 영역이고 하나의 직무이기 때문에 IR 담당자라고 하는 것이 맞다.)
주주들의 예측할 수 없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회사’라는 상품에 대해 다방면으로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적어도 내가 파는 상품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장사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면에 있어서는 공연과 비슷했다. 내가 기획한 공연이 누구를 대상으로 한 공연인지, 내용은 무엇인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알아야 관객들을 대상으로 그 공연을 설명하고 홍보하고 마케팅을 할 수 있다.
IR 이란 업무에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내가 설명해야 할 회사는 공연 작품에 해당했고, 설명을 듣는 대상은 관객에서 주주로 바뀐 것뿐이었다. 회사라는 실체가 갖고 있는 정보는, 크게 회사가 돈을 버는 사업모델, 회사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주주들에게 가장 중요한 지금까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와 앞으로는 얼마나 벌 수 있지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를 알려주는 과거의 자료는 재무제표라는 양식으로 보여주고, 앞으로 얼마나 벌 수 있을 것인가는 미래 성장성으로 설명한다.
IR 업무를 담당했던 그해 초,- 이 때는 주담이 무엇인지, IR 담당자가 무엇인지 아무 것도 모르고 그 업무를 하지 않았던 때였다- 정말 우연히 회사 근처 문화센터에서 하는 전산회계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공연만 하던 내가 그 수업을 들었던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누가 들으라고 했던 것도 아니고 강요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막연하게 ‘알아두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회사 근처에서 퇴근하고 들을 수 있는 싼 강의를 찾아서 '내 돈 내산'으로 3개월 수강 신청을 했었다. 두 달 정도 수강하고는 공연 쟁이었던 내게 너무 어려운 강의였기에 마지막 한 달은 포기했다. 그래도 회계의 개념을 어렴풋이 이해하고, 회사의 히스토리를 설명해 주는 재무제표를 보는 법을 배웠다. 덕분에 내가 설명해야 할 우리 회사의 실적과 관련된 숫자를 비교적 빨리 파악할 수 있었다. 얻어걸린 선견지명이었다.
미국IR협회(NIRI: National Investor Relations Institue)에서는 IR에 대해 다음과 정의하고 있다.
“IR(Investor Relations)이란 기업가치를 공정하게 평가받기 위하여 상장법인과 투자 관계자(개인투자자나 기관투자자를 포함한 투자자와 애널리스트, 언론인 등 투자 관련 이해관계자를 통칭한다.) 사이에 가장 효과적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재무ᆞ커뮤니케이션ᆞ마케팅 그리고 법규 준수를 통합하는 전략적 경영 책무이다.”
IR 담당자는 IR의 정의를 실행하는 사람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공연쟁이에서 비전문가출신 IR 담당자가 되었던 내가 정한 기준은 딱 한 가지였다. 담당자인 나와 마찬가지로 주주들도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어려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전문가인 기관 투자자들이나 애널리스트들은 시장 전문가이지 우리 회사의 전문가는 아니다. 회사의 전문가는 바로 IR 담당자이다. 그래서 내가 실행했던 IR은 내가 팔아야 할 상품, 곧 회사를 스토리 화해서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서 회사에 관심을 갖게 하고 회사의 주식을 사도록(투자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공연쟁이 IR 담당자인 내가 생각하는 IR 담당자의 역할이다.
또한 회사를 알려야 하기 때문에 투자자와의 관계뿐 아니라 대중들과의 관계, PR(Public Relations)과 마케팅도 중요하다. IR 담당자들 모두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IR 담당자들 중에는 PR과 마케팅을 병행하기도 한다. 공연 업무를 하면서 익힌 마케팅과 PR 경력을 바탕으로 나는 IR 업무와 PR 업무를 같이 진행했으며, 공연 콘텐츠를 만들던 장점을 살려 스토리로 회사를 알리는 IPR(IR+PR) 담당자로 변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