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비하게 말풍선을 삭제했다.
우리가 했던 대화는 되돌릴 수 없지만 대화창에 남겨진 문자들은 선택하여 삭제할 수 있다. 몇 개월을 통으로 없던 셈 치고 싶다면 대화방을 나가버리는 방법도 있겠으나, 나는 야비하게 골라 지우는 방법을 선택한다. (내가 지워버린 메시지는 덮어버리고 싶은 나의 실수일 수도 있고, 외면하고 싶은 상대의 애원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천진하게 다정했던 말들일 수도.) 몇 개월간의 대화를 하나씩 삭제하다 보니 어느새 채팅방의 날짜는 처음 연락하던 날로 돌아갔다. 깨끗해진 화면에는 '안녕' 첫인사만 남아있다. 서로를 몰랐던 직전으로 돌아왔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직전으로 돌아왔다. 사실 그렇게 지운다 한들 그것은 내 휴대전화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가 했던 대화도, 난폭하게 주고받은 상처도 달라지지 않는다. 되돌리고 싶은 일, 주어 담고 싶은 말일수록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는다. 상대의 전화기에는 우리가 했던 대화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아니다. 그도 나처럼 말풍선 몇 개를 골라 삭제했다면 우리는 서로 다른 대화 목록을 갖고 있을 수도 있겠다. 각자의 의도대로 편집된 대화창에서는 이제 우리 둘 중 누가 더 잘못했는지 알 수 없다.
같은 대화 기록을 갖고 있다 해도 어차피 우리는 서로의 입장대로 기억하며 살아갈 테니까
이렇게 다른 기록을 갖고 있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