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긴 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세히 Jul 10. 2022

배달현황 지켜보기

나는 어떤 마음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지금 배달 음식이 픽업되어 내게 오는 길을 지켜보고 있다. 이 작은 화면에서는 1분에 1센치씩 내 음식을 실은 오토바이가 움직인다. 건널목 신호에 걸렸는지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는 몇 초가 참 길게도 느껴진다. 내가 지켜본다고 길을 헤매지 않고 더 빨리 오는 것도 아닌데 나는 이 경로를 무심한 표정으로 내내 바라본다. 우리집 코너에 가까워질 때까지. 배고픔에 애가 탄 건 아니었다. 그냥 내 음식이 헤매지 않고 어디에도 들리지 않고 곧장 내게로 오기를 원했다. 기다리는 물건이 아니더라도 '택배 배송 추적'을 한 번씩은 눌러본다. 꼭 오늘 도착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어제 발송된 택배가 도착하지 않은 채 저녁이 되면 불안해진다. 내 물건이 어디까지 와있는지, 어느 버뮤다에 갇혀 움직이지 않는지 찾아본다. 찾아본다한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냥 그곳에 있구나. 늦어지는구나. 알게 될 뿐이다.


내게 오는 것들이 어디쯤에 있는지 나는 열어볼 수 있다. 그런데 배달 현황을 지켜볼수록 오히려 나는 기다림에 취약한 사람이 된다. 내게 오는 것들 중에선 지도 위에 좌표가 찍히지 않는 것도 있다. 


남자친구와 싸우고 돌아온 밤에 그의 마음은 어디쯤에 있나 생각한다. 어디에도 없는 지도를 그려보는 것이다. 그의 행동 때문에? 아니면 나의 말 때문에? 우리는 방향을 잃고 헤매기 시작한다. 도착해야 할 곳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마음의 현황. 얼마나 먼지, 가까운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종적을 감춘 마음들은 오래전에도 있었다. 


코앞까지 왔다가 받기 직전에 무슨 이유인지 되돌아가기도 했고, 보낸 지 몇 개월이 지나도 영 닿지 않는 마음도 있었다. 도착은 했으나 반환된 마음도 있다. 내 것이 아닌 것 같다며 돌려보냈으나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도착하지 않은 그 마음은 우리 둘 사이 어디쯤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마음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오랜 시간 헤매는 중이라고, 분명히 내게 오는 중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파트는 보편적인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