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집 가까운 곳에서 자주 만나 놀 만한 친구가 있습니까?''
서울같은 대도시에 사는 사람치고 이 물음에 ''예''라고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사람, 특히 타지에서 살다가 은퇴하여 새로운 곳에 정착한 사람이라면 더 심하리라.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그리고 요즘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내가 현직에서 은퇴할 무렵, 주위의 여러 사람들에게서 지금 들어 있는 모임에서는 절대로 빠지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다. 그만큼 나이가 들면 친구 관계를 맺기가 어려우니, 지금 가지고 있는 관계망이라도 계속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리라.
어린 시절이 너무 먼 과거의 일인지라, 내가 어릴 때 친구를 쉽게 사귀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요즘도 주위에서 어린아이들이 만난지 잠깐만에 서로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면, 나도 그때는 그러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친구 관계를 맺기가 더 어려워질까? 그건 어른이 되면서 각자가 살아온 환경이나 경험, 사고방식, 등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서, 서로간의 공통분모가 어린아이일 때보다는 훨씬 적어지기 때문에 함께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우리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매체들이 무지막지하게 생산해내는 부정적인 정보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직접적인 소통을 꺼리도록 만들고 있는 탓도 커다란 원인 중의 하나로 보인다.
옛날에는 거의 모든 정보가 사람들의 입과 귀를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개인과 개인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직접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그리고 필요한 의사소통을 시작하기 전에 인사를 나누고, 상대방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신상정보를 파악해야 하니, 그런 과정 중에서 자연스럽게 친밀감 같은 것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이런 경험이 계속 쌓이면서, 사람들은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자연스럽게 기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자매체가 우리 사회의 관계망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직접적인 대면을 꺼리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는 곳을 찾아 갈 때, 주위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경우가 많은데, 아내는 그런 걸 질색한다. 그보다는 차라리 자기도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네이버 길찾기 기능을 켜서, 이리저리 헤매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하곤 하는 것이다.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티비나 인터넷 같은 매체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그리고 시청률을 높여야 살아남는 대중매체의 속성상 사회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는 자극적인 내용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위의 사람들을 점점 더 믿지 못하고, 서로 마주칠 경우에는 일단 경계심을 품고 대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산업 사회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버린 어릴 적 고향 친구들, 저출산 풍조로 고작 한두 명뿐인 형제자매로 인해,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진 현대인들은, 거의 모두가 외롭고 쓸쓸한 삶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나 또한 친하게 지내던 친구나 형제자매들이 부산이나 강원도 등지로 흩어져서 살고 있고, 같은 서울이라도 지하철로 1시간도 넘게 걸리는 곳에 있으니 자주 만나서 놀기가 어렵다. 특히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하던 곳에서 퇴직을 한 다음, 새로운 지역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나같은 사람은, 여가 생활을 함께할 만한 친구를 만나기가 훨씬 더 어렵다.
그러니 어쩔수없이, 가까운 곳에 사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서 친하게 지내는 것이, 아주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여러 차례 시도해 보았는데, 이게 정말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삼십 년이 넘게 성장했던 강원도를 떠나, 직장 때문에 다시 삼십 년 정도 한반도의 남쪽 끝에 자리한 광양에서 살았고, 이제 낯선 서울에 정착한지 만 4년이 지나고 있지만, '새친구 사귀기' 프로젝트는 여간해서는 진척이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물론 서울에 거주하는 고향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서, 적절한 대상을 찾아 보았다. 카페에 등록된 고등학교 동창들의 주소를 조사해 보니, 조금이라도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은 다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1시간은 훨씬 더 걸리는 곳에 살고 있고, 더구나 나처럼 직장에서 은퇴해 한량으로 생활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두 해 동안은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나, 산에도 가고, 소주도 한잔 하면서 지냈다. 그리고 내가 서울에 생활 근거를 두기는 했지만, 광양에 있는 세컨 하우스에 가서 한두 달씩 머물면서, 예전의 직장 동료나 지인들과 자전거를 함께 타거나 막걸리 모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랫만에 만나는게 반갑기는 했지만, 서로 여유 시간이 잘 맞지 않는 문제가 있는데다가, 누구와 함께하느냐 하는 미묘한 선택의 어려움이 남았다. 더구나 내가 서울과 광양을 왔다 갔다 하니, '언제, 어디서, 뭘하고 노느냐?' 하는 제의는 항상 상대방이 아닌, 내가 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게다가 하는 일 없이 거의 매일 놀고 있는 나에게, 한 달에 한두 번씩 당구장이나 음식점에서 시간을 보내는 정도로는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았다. 나는 언제든 쉽게 만나서 산에도 같이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이웃사촌 같은 친구를 원했다.
소위 죽마고우란, 어릴 때부터 비슷한 환경에서 놀이를 함께 하면서 맺어진 친구를 일컫는 말이다. 죽마 놀이는 대나무 막대기를 둘이서 들고 한 명이 그 위에 올라타서 노는 아주 단순한 오락으로, 최소한 세 명이 모여야 놀이를 진행할 수 있다. 몇 명이 모여서 같은 놀이를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즐겨야 좋은 친구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나이가 좀 지긋한 남자라면, 거의 다 성격이라든가 생활 방식은 물론 좋아하는 놀이나 정치적 성향마저도 거의 고착되어 있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자라온 환경이나 향유했던 놀이가 같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어떻게 쉽게 친구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들이 서로 만나면, 같이 있어도 따로 놀게 되고,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한 게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운 것이 되기 십상이다.
친구 문제라면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내가, 몇 해 전에 산책을 다녀오더니, 친구를 한 명 사귀었다고 좋아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내는 그 당시 거의 날마다 집 바로 뒤에 있는 백련산으로 올라가 한 시간 반 정도 산길을 걸었는데, 길가에서 잠시 앉아 쉬다가 옆자리에 있는 비슷한 나이의 여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에게 뭔가 끌리는 게 있어서였던지, 날마다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해 함께 산책을 하기로 한 거였다.
아내도 가까운 곳에는 친구나 형제들이 없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들이랑 보내다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니, 얼마 동안은 다소 들뜬 기분으로 지내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비가 내리는 통에, 또는 한 쪽이 지방에 내려갈 일이 생기는, 등, 여러 요인이 발생해서 만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몇 달 후에는 아예 연락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만난지 얼마 안 되는 사람과는, 그 인연이 끊어지는 시간도 그만큼 짧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술과 친구는 오래 묵을수록 좋다.''는 말이 아무렇게나 생겨난 게 아니라는 걸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있을까?' 여러모로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친구는 '놀이'를 통해 얻어야 한다는 논리로 접근했다. 사실상 남자들이 카페에 앉아서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건 좀 어색한 일 아닌가?
내 취미는 독서, 테니스, 바둑, 등산, 자전거, 당구, 등이다.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취미생활을 함께 하기로 가장 좋은 상대가 자기 아내라고 하는데, 독서나 좀 할까, 다른 것들은 아무리 권해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산악회나 단체카톡을 통해 친교 활동을 하기에는 내 성격상 영 내키지 않았다. 나는 열 명 정도 되는 단체 모임에 참석해도 괜히 마음에 부담이 오고, 신경이 피곤해지는 타입이다.
독서나 바둑은 거의 혼자 하는 놀이니 친구 사귀는데 별 소용이 없고, 자전거나 등산도 누군가를 잠시 만났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형국이 되기 쉽다. 나는 30년이 넘도록 테니스를 쳤지만, 서울에서는 여건상 테니스장에 왔다 갔다 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그래서 나는 가장 쉽게 찾아갈 수 있고, 같이 게임할 상대를 구하기도 용이한 놀이로 당구를 선택하고, 집 가까운 당구장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나는 광양에 있을 때도 자주 당구를 치러 다녔다.
당구장에는 보통 그룹을 지어 오지만, 혼자 와서 연습을 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그런 사람과 게임을 함께 하고, 한두 마디 인사를 나누며 친분을 쌓아가자는 생각이었다. 그런 상대를 몇 번 만나기는 했는데,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여러 차례 게임을 같이 하면서, '이 사람하고는 그런대로 친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되어, 식사라도 함께하자고 나름 어렵게 말을 걸어 보았는데, 하나같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사양했다. 최소한 식사라도 함께 하고, 전화 번호를 교환해서, 주 1회 정도는 만나야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다가 몇 달 전, 당구장에서 내가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던 사람들이, 자기들 모임에 들어오는게 어떻겠냐는 제의를 해 왔다. 나는 아주 반가운 마음으로 받아 들였다.
주 2회 함께 당구를 치고난 후 저녁식사를 하는 모임이었다. 육사를 나와서 준장으로 예편한 경상도 사람, 교대를 나와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한 전라도 사람, 대학 행정실에 있다가 퇴직한 서울 토박이로, 모두가 연금 수령자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나도 연금 수령자라는 걸 알고 있기에 영입 제의가 들어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당구도 테니스나 탁구처럼 두 명씩 편을 나눠서 게임을 하는 게 훨씬 재미있기 때문에, 한 명을 더 채우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다. 여하튼 나는 그 모임에 들어가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당구를 치고 저녁식사를 함께하면서 점차 친분을 쌓아 나갔다.
하지만 그 모임은 오래 가지 못했다.
모임이 출범한지 두어 달이 지났을 무렵, 약속된 시간에 당구장으로 갔더니, 한 사람밖에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겨서 못 나왔는가 보다 하고, 둘이서만 몇 차례 게임을 한 다음 식사를 하러 갔더니, 같이 간 그 사람이 모임이 깨질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오늘 나오지 않은 두 사람이 서로 크게 다투었다는 얘기였다. 무엇 때문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별것 아닌, 단순한 말다툼인 것 같다고 한다.
''아니, 이 나이에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왜 싸우는 거냐? 그리고 서로 감정이 있으면, 대화로 풀면 되는게 아닌가?''
나는 기분이 나빴지만, 싸움의 당사자 각각에게
''오늘 선배님이 당구장에 안 나오셔서 재미가 없었네요. 다음 모임에는 꼭 참석해 주세요.''
이렇게 문자를 보냈는데, 한 사람은 아예 대답이 없고, 한 사람에게서는 ''그 사람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답만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일 주일쯤 지난 어느날, 버스정류장 앞에서 다투었다는 당사자 중의 한 사람을 만났는데, 나를 보더니 못 본척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현장에 있지도 않았는데 왜 저한테까지 이러시는 겁니까?''
내가 물었더니 자기는 모임에 있었던 사람은 다 싫다는 것이었다.
그런 일을 겪고 나니, 예전에 광양에 있을 때 함께 당구를 치던 사람이 생각났다. 그 당구장은 오천 원만 내면 그날 오후 내내 게임을 하면서 놀 수 있는 곳이라, 사람들이 꽤나 많이 모였다. 그 사람은 나보다 대여섯 살 정도 위였는데, 당구 치수가 비슷해서 한 동안 게임을 함께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사람이 '그날 게임에서 더 많이 진 사람이 두 사람 몫의 게임비를 내도록 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나도 만원 정도는 별 부담이 없고, 재미도 있을 것 같아 동의해서, 또 한 동안 그렇게 함께 놀았다. 그런데 두 달쯤 지난 어느날부터인가, 그 사람이 내가 당구를 칠 때, 자주 시비를 걸어 왔다.
''너무 늦게 친다. 큐를 흔든다.'' 등.
그러다가 어느날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로 트집을 잡길래, 나는 '이 사람이 게임비 때문에 이러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부터 내기 당구는 하지 말자.''
고 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화를 내면서, 이제부터 나하고는 아예 당구를 하고 싶지 않다며 나가더니, 다른 곳으로 놀이터를 옮겼는지 그 후로는 그 당구장에 다시 오지 않았다.
물론 나도 분명히 잘못한 게 있었을테지만, 별것도 아닌 일로, 서로 화해하면 될 것을, 아예 인연을 끊어버리고 마니, 한 동안 기분이 아주 안 좋았다.
그러고보면, 오래된 옛친구는 어쩌다가 다툼이 생기더라도, 여간해서는 인연이 끊어지는 일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래된 친구는 함께해 온 세월이 길기 때문에 친구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있어서, 언젠가 어디선가 또 만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서로를 잘 알고 있기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정도의 선은 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힘인지도 모르는, 지금까지 각자가 기억의 창고에 쌓아 놓았던 좋은 추억들이 서로를 떨어지지 않도록 끌어당겨 주기 때문인 듯도 하다. 그것이 바로 오래 묵은 술의 깊은 맛처럼,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우정의 힘이 아닐까?
여하튼 나는 퇴직을 하고 나서 정착한지 4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이제 겨우 새로 사귀기 시작한 친구를 잃고 싶지 않다. 지금 만나고 있는 한 사람에게라도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모임에서 나간 두 사람에게는 시간을 두고 가끔씩 문자라도 보내서 다시 모일 수 있도록 하겠다.
그렇게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고, 함께하는 시간이 계속 늘어나다 보면, 그분들이 비록 죽마고우까지는 못될지라도 외롭고 쓸쓸한 노년기에,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앞을 지키고 서 있는 느티나무처럼, '누군가가 항상 내 곁에 있다.'는 위로가 될 수는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