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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유선생 Sep 25. 2023

내 머릿속의 블루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벌써 일주일이 넘도록 비가 내리고 있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창밖에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학 소년이던 중학생 시절, 홀로 있을 때 자주 읊조리던 베를레느의 '거리에 비오듯'이 떠오른다.



''거리에 비오듯 내 가슴 속 눈물이 흐른다. 이렇게 마음 속 스미어드는 이 슬픔은 무엇인가?



ㅡ하략ㅡ''



한창 미래에 대한 장미빛 꿈에 부풀어 있어야 할 겨우 열 다섯 정도 되는 나이에, 나는 왜 혼자서 청승맞은 시를 되뇌이면서 멜랑콜리에 빠져 있었을까? 그건 어쩌면 사춘기에 누구나 겪는 성장통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 그 시절을 되돌아 보면, 특별히 가정적으로나 친구 문제로 그다지 힘들었던 게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슬픈 감정 속에 빠져 있는 게 좋았고, 그러는 게 멋진 일이라 여겼던 것 같다. 다시 말하면 그건 내 가슴 속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블루'를 음미하는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내면에 슬픔이라는 감정을 간직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내면의 슬픔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해보게 된 계기는, 얼마 전에 앨릭스 코브가 쓴, '우울할 땐 뇌과학'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 책에서, 우울증은 전두-변연계의 의사소통 기능에 이상이 생긴 것이므로, 운동으로 도파민이나 배측 선조체를 변화시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조금씩은 우울증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 그것이 심하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무서운 병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본인의 의지에 의해서, 즉, 생활 습관을 바꾼다거나 마음 가짐을 새롭게 하는 것 같은 방법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러 심리학 서적을 보기 전에, 나는 내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슬픔의 덩어리는 심장에서부터 시작되는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별 생각 없이 무슨 일을 하고 있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글픈 감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그건 외로움이라는 감정과는 좀 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내가 나란 존재를 믿지 못한다는 불안감, 다시 말해서 자기를 형편 없는 존재로 인식하는, 즉 자존감을 잃어버린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나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슬픔의 덩어리는 가슴 속에서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즉 뇌가 작동한 인식의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 인생 행로에서 머릿속의 블루가 가장 많이 솟아났던 날들은 언제였고, 나는 거기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던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주 불안감에 휩싸이고, 자존감이 가장 바닥이었던 시기는 내가 50대로 접어들 즈음이었다고 생각된다. 그것이 밖으로 표출된 것 중의 하나가, 직장 동료 교사와의 심각한 갈등이었다. 업무상의 견해 차이로 시작된 섭섭한 감정이 격렬한 말다툼으로 이어졌고, 소주라도 한잔 하면서 조금씩 양보했으면 쉽게 풀어질 수도 있었겠지만, 미적대다가 결국은 수습이 불가능한 사태로 번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내게 닥친 어려움은 여러 요인이 겹친 탓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때 나는 교사 생활 20 년 차에 접어들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이 반복되는 나날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도 열정이 없이 시간만 때우는 식이었다. 그때의 나는 모든 것에 의욕이 없었다. 그런 무기력한 내 생활 자세가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 것 같다. 그럴 때는 누군가에게 마음 속에 있는 고민을 솔직히 털어놓고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거의 매일 잠을 설쳤고, 무슨 일을 해도 생각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렀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뛰어서, 그걸 가라앉히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그래서일까. 급기야 나에겐 건선이라는 무서운 피부병이 찾아왔다. 팔꿈치나 발가락 정도에 한정되어 있는 거라면 무시하고 살겠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거의 전신에 퍼진 병이었다.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처방을 받아, 약을 바르고, 먹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얻은 정보는 불치병, 즉,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할 병이었다. 병원에 몇 번 입원까지 해 가면서 온갖 방법을 다 썼지만, 일 년이 넘도록 차도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온 몸에서 비늘이 떨어지고, 항상 얼굴이 붉은 색으로 변해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정말 몇 번이나 빨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그 날도 요즘처럼 장마철이라 며칠째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나는 무엇에 홀린 듯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아직 살아야 할 날들이 많이 남았는데,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어떤 오기 같은 것이 가슴에 차오르는 것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비를 맞으며 천천히 거리를 달렸다. 그렇게 거의 한 시간쯤 달리기를 하고 나니, 온몸이 비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때부터 무언가 내 안에 있던 응어리가 조금씩 풀려나가기 시작한 것 같다. 그 날을 계기로 이틀에 한 번씩은 꼭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마라톤 클럽에 가입해, 월례 대회에 정기적으로 참가하여 풀코스까지 여러 차례 완주한 마라톤 마니아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병원 치료를 잘 받아서 그런지, 달리기의 효과 때문인지 잘 알 수 없지만, 거의 2년 만에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피부병이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한, 여러 사람들 앞에 서면 괜히 주눅이 들어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매우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대학 졸업반이 될 때까지도, 작가나 연구원 같은 혼자서도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인생이란 게 어디 제 뜻대로 되는 것이던가? 항상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야만 하는 교사가 되었으니..... 나는 오랜 기간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훌륭한 교사는 못될지라도,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다.



뇌 전체의 화학적 환경은 세계 경제 만큼이나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다고 한다. 내가 하강 나선을 타고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을 때, 함께 아파하고 도움을 준 아내와 여러 지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그리고 보기 흉한 모습이었지만, 밖으로 나가서, 달리기를 하고, 그래도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의 뇌를 상승 나선에 올라타도록 한, 지난 날의 내가 대견스럽다.



내 머릿속에 가라앉아 있는 블루는 언제 또 스멀스멀 피어오를지 모른다. 이성적으로는 그게 머릿속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가슴 속에 있다고 여겨지는, 그 아름다운 블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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