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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유선생 Jul 27. 2023

동강, 내 여름날의 그리움

7월로 접어들면서 태양이 내뿜는 열기가 점점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이런 때는 바깥에 나가기보다 집안에 들어앉아 에어콘 틀어 놓고, 티비나 보며 지내는 게 제일 편하다.



오래 전부터 내가 자주 시청하는 티비 프로그램 중에 '동물의 왕국'이 있는데, 특히 끝없이 펼쳐진 아프리카 초원에서 수많은 동물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동물의 왕국'에 등장하는 아프리카는 항상 뜨거운 여름이다. 게다가 건기에는 태양의 열기에 모든 게 불구덩이에 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코끼리들이 물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목도 바싹바싹 타들어간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쏟아지는 빗줄기와 마른 땅을 적시며 흘러가는 냇물의 모습. 커다란 귀를 흔들며 물 웅덩이에서 첨벙대는 코끼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역경을 견디고 얻어낸 삶의 환희가 그대로 느껴진다. 물은 살아 숨쉬는 생명, 그 자체다.



요즘처럼 후덥지근한 여름의 열기 속에서는 누구나 대지를 식혀줄 소나기를 기다리게 되고, 사정이 허락한다면 강이나 바다에 온몸을 풍덩 담그고 싶을 게다.



그러고 보면, 내 어린 시절은 집 아주 가까운 곳에 동강이 있었기에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도 풍부한 수량에, 아주 깨끗하고 아름다운 강, 바로 남한강의 상류인 영월의 동강이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네 계절 중에서 여름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건 어린 시절 이 강에서 뛰놀던 아름다운 추억들이 많기 때문이다.



강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 사이로 구비구비 흐르면서,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평평한 곳에서는 아득히 넓은 폭으로 잔잔하게 흐르고, 경사가 심한 곳에서는 아주 좁은 여울이 되어 세차게 넘실댔다. 나는 강의 이쪽 저쪽으로 헤엄쳐 건너다니는 걸 좋아했다. 강의 한가운데에 누워서 느긋하게 손발을 움직이면서, 짙푸른 녹음과 하늘의 뭉게구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공중에 둥둥 떠있는 신선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하루종일 물 속에 있다 보면 좀 추워서, 햇살에 달구어진 큰 바위에 한참동안 붙어 있다가, 다시 여울을 타기도 하고, 물속으로 잠수해서 바닥의 예쁜 돌이나 물고기들을 찾다 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훌쩍 저물어버리는 것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읍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강이 있어서, 여름철이 오기가 무섭게 물놀이를 하러 다녔다. 그때 아주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세 명이 함께 강으로 놀러 다니곤 했는데, 수영 실력이 비슷해서 자주 시합을 벌이곤 했다. 좀 무모한 객기를 부려서, 홍수로 물이 불어나 흙탕물이 거세게 넘실대는 강을 헤엄쳐 건너갔다 오기도 했다. 어머니는 자주 물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으나, 내 귀에는 잠시 스쳐지나가는 바람소리일 뿐이었다.



강 저편에 무엇이 있기에 우리는 기를 쓰고 그쪽으로 건너갔을까? 울면서 만류하는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 기어이 강을 건너다가 빠져죽는 백수광부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사실상 거기는 이쪽과 다를 바가 없는 곳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미지의 세계로 가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강은 평상시에 우리의 즐거운 놀이터가 되어주었지만, 때로는 무서운 재앙을 불러오기도 했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던 1972년 여름, 영월에 대홍수가 났다. 그 당시 내가 살던 집은 좀 높은 언덕에 위치해서 피해를 면했지만, 오목한 분지에 자리잡은 읍내의 절반 이상이 물에 잠겼다. 바다처럼 아득하게 펼쳐진 시뻘건 황토색 강물 위로, 집이며, 나무, 그리고 소나 돼지 같은 가축들까지 둥둥 떠내려가고, 물에 잠긴 자기네 집을 바라보며 울부짖던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사나흘쯤 지나 물이 빠져나간 후, 나는 시장에서 부모님이 작은 국수가게를 하던 친구 집에, 며칠 동안 수해 복구를 도우러 다녔다. 무더위 속에서, 온통 진흙탕으로 범벅이 된 가구며 그릇 등을 씻고 말리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영월군에서는 그 후 제방을 튼튼하게 쌓고, 도로나 건물 등을 잘 정비해, 이전과 같은 재난이 반복되지 않았지만, 대홍수가 남긴 트라우마는 시민들의 마음 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나는 직장 때문에 지방에 있다가, 서울로 올라와 생활한 지 5년쯤 된다. 지금 생각해보니, 묘하게도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는 동강의 상류에서 살았고, 그 다음부터 30대 초반까지는 동강이 서강과 합류되어 남한강을 이루는 곳에서, 이제 그 남한강이 북한강과 합쳐져서 한강을 형성한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금 아쉬운 점 중의 하나는 한강이 집에서 가까워 자주 바라볼 수는 있지만, 거기에 직접 들어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거기서 수상 스키나 윈드 서핑 등, 레저 활동을 할 수는 있겠지만, 나는 온몸을 물속에 담그는 수영이나 잠수를 원했다. 여러 자료를 찾아 보니, 1960년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한강에서 강수욕을 했고, 광나루 건너기 수영 대회도 열렸다는 얘기가 있다. 나는 정말 밤늦게 몰래라도 한강을 헤엄쳐 건너가보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고향인 영월을 떠난 후에도, 가끔씩 내 어린 시절에 노닐던 동강을 찾아가 산책이나 수영도 하고, 래프팅도 했다. 직장 때문에 30 년 넘게 살았던 광양에서는 자주 섬진강을 찾아가 발이라도 담그곤 했고, 서울로 올라온 지금도 자주 한강을 보러 자전거를 타고 나간다.



하지만 물은 예측할 수 없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국이 가뭄으로 아우성이더니, 예천에서는 갑작스럽게 쏟아진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여러 명이 실종되었고, 청주에서는 지하차도에 들이닥친 물 때문에 십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 이변으로, 세계 곳곳이 가뭄이나 홍수로 몸살을 앓는다는 뉴스를 너무나 빈번하게 접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기에는 아무래도 따뜻한 여름이 좋기는 하다. 야외 활동을 하기에도 적절하고, 농작물을 재배하거나 가축을 기르는 데도 여름철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거기다가 일년 내내 마를 걱정이 없는 큰 강이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정말 강이 없는 여름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우리 모두가 지구 환경을, 특히 생명의 근원이 되는 강을 잘 관리해서, 오래도록 물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여름이 되면 나는 동강이 그립다. 그 강이 인간들의 무지와 이기심에 훼손되지 않고, 영원토록 순결하게 흐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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