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먼츠필름 Sep 20. 2018

당신에게만 들려주는 이야기 : 방황하는 청소년에 대해

영화 <여름의 잔해>(2012)

여름의 잔해(Debris, 2012)

감독 : 유수민 

출연 : 김최용준(창완), 김꽃비(혜정역), 남태부(상규), 이준혁(아저씨)

러닝타임 : 25분

<시놉시스>

가출청소년 상규, 창완, 혜정은 성매매를 빙자한 강도탈취 행위로써 생계를 해결한다.

배우 김최용준이 들려주는 <여름의 잔해>(2012)

  부평이라는 곳, 감독님께서 사시는 곳이었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과 굉장히 흡사한 장소에서 촬영했어요. 물론 모든 부평이 그런 건 아니지만, 저희가 촬영했던 뒷골목은 다소 거친 느낌의 환락가 같은 느낌이었어요. 실제의 창완이 있었다면 정말 이곳에 있었을 것 같아요.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청소년의 느낌이 부평의 이곳과 느낌이 비슷해요. 촬영 당시에 이런 일도 있었어요. 스탭분들과 다 같이 식사를 하고 나오는 길이었어요. 일곱여덟 명의 고등학생이 구석도 아닌 곳에 모여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어요. 근데 저희를 정말 때릴 것처럼 뚫어져라 쳐다보더라고요. 완벽한 분위기의 촬영장이었어요.

   <여름의 잔해> 쉽지 않았어요. 전반적인 창완의 감정선이 무거웠기 때문에, 그 무거운 감정과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어요. 근데 이준혁 선배님을 현장에서 뵈니 엄청 유쾌하신 거예요! 그걸 보면서 뭔가를 깨달았어요.

'그렇구나. 내가 이걸 가지고 있다고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부정적 에너지를 전파할 필요는 없겠구나. 이런 감정을 잘 가지고 있다가 슛 전에 잘 가져오면 되겠구나.’ 


  그런 생각들이요. 뭔가 배운 것 같았어요. 감정을 끌고 간다고 해서 계속 모든 감정을 짊어지고 가면 지치고, 정작 해야 할 때 못하게 되더라고요. 감정을 찾고, 잡는 건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유동적으로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면 뿐 아니라 저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이 많이 됐던 작품이에요.

  방황하는 청소년들과 잘못된 일의 세습은 어른들로부터 나온다는 이야기예요.  첫 장면에 창완(김최용준)이 향락가의 밤을 방황하는 듯 걸어 다니는 장면이 있어요. 저는 이 장면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창완의 심리를 잘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아요. 판단과 선택에 미숙하고,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술, 담배를 하는 장면이 많이 나와요. 근데 그 당시에 남태부 배우가 담배를 피운 지 얼마 안 됬었어요. 담배 피우는 신이 많았어서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저도 아마 일 년 치 담배를 촬영하면서 다 피운 것 같아요.(웃음)


  시나리오 상 창완과 상규의 나이가 고등학생이에요. 그래서 다소 어수룩한 부분들이 있죠. 그때는 그렇잖아요. 어리니까요. 어른처럼 굴지만 당황하거나 큰일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죠. 

유수민 감독에 대하여,

  우리 주변에 흔히 있을 수 있는, 무심히 지나치거나 일부러 외면하려고 하는 어두운 부분들을 직관적으로 잘 표현하시는 감독님이세요.

  <여름의 잔해>의 다음 작품인 <실버벨>(2014)이라는 작품도, 유쾌하지만 슬픈 메시지가 있어요. ‘노인 또한 사람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어르신들은 또 그들만의 사회가 있잖아요. 그런데 왜 그들만의 사회가 생기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해요. 이처럼 사회가 외면하려고 하는 부분들에 관심이 많으시고, 저도 그에 많이 공감해요. 감독님과의 인연은 <최초의 남매>(2011)의 촬영감독님이 소개를 해주셔서 오디션 겸 미팅을 했어요. 근데 그 미팅도 재밌는 일화인게, 제가 스케줄을 감독님과 맞추다가 아르바이트하는 시간과 겹쳐졌어요. 그 당시 제가 바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감독님이 오셨어요. 그래서 거기서 즉흥 연기랑 상황 극을 했었던 일이 생각나요.(웃음) 재밌었어요.


  촬영 일정이 4박 5일이었는데, 데이-나잇-데이 스케줄이 있을 만큼 강행군 촬영이었어요. 하지만 그런 스케줄이 전혀 불편하거나 너무하다 생각이 들지는 않았어요. 보통 로케이션마다 정해진 시간이 있고, 짜인 스케줄대로 가야 해서 보통 무리해서 진행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감독님께서는 배우가 스케줄에 쫓겨서 몰입에 방해되는 상황을 용납하지 않으셨어요. 여유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자신이 의도한 것처럼 나오지 않아도 배우가 생각하고 있는 캐릭터가 가장 맞는 거라고 믿어주셨어요. 예를 들면 저에게 어떤 장면을 찍고 나면 '어떤 감정으로 연기를 했냐'라고 묻고, 앞뒤 상황을 생각하시곤 '그게 맞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 부분에서 전적인 믿음을 갖게 되죠. 하지만 진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게 차근차근히 설명해주셨어요. 후반부에 창완이 아저씨를 죽이고 어쩔 줄 몰라 울잖아요. 그러고 바로 다음 컷이 화장실에서 피 묻은 손을 씻는 장면인데, 저때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계속 울고 있었어요. 그 전 컷에서도 울고 여기서도 대성통곡을 했던 거죠. 그랬더니 감독님이 '일단 오케이 컷인데, 담배 하나 피울까요?'라고 말씀하시고 저를 데리고 비어있는 방으로 갔어요. 그러고선, '용준씨가 창완을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용준씨가 생각하는 감정이 가장 정확할 거예요. 하지만 전 컷과 다음 컷, 그리고 영화 전부를 시간을 갖고 고민하고, 생각해보고 다시 한번만 찍어 봐요'라고 말씀하시면서, <펄프픽션>(1994)의 존 트라볼타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님께 했던 얘기를 이야기해주셨어요. '감독님, 지금 제 연기가 마음에 안 드실 수 있겠지만, 편집할 때 감독님은 제게 고마울 거예요' 그런 식의 디렉션이 너무 좋았어요. 제가 오로지 그 역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셨던 것 같아요.

  편의점에서 창완과 상규가 혜정을 기다리면서 햄버거와 라면을 먹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 감독님이 남태부배우(상규역)에게 따로, 저(창 완역)를 화날 때까지 막 해보라고 요청을 하셨대요. 그래서 저 상황에서 저는 정말 진짜 화를 참고 있어요.(웃음) ‘얘가 왜 이렇게 까지 하지?’라고 생각했어요. 화가 너무 났지만 창완의 위치와 입장, 그리고 대본대로 가야지 라고 생각하며 참았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마지막에 햄버거를 한입 와구 먹는 장면이 훨씬 더 잘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우연히 얻은 좋은 장면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냥 찍은 인서트에서는 경찰차가 지나간다거나... 약간 거칠어 보이는 환경들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나 환경들을 조성해준 것 같아요. 이런 이유 때문에 로케이션 헌팅에 공을 많이 들이는 거겠죠! 또, 캐스팅에 있어서도 굉장히 신중하셨어요. 모든 배역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뚜렷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때문에 여느 현장들처럼 인원이 부족하면 스탭분들이나 지인분들의 도움을 통해 단역, 보조출연자 분들을 섭외하는 일이 없었죠.


  음악이 없어요. 상황이 날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요. 공간의 소리가 많아요.

제목에 대하여

  내용이 다소 잔혹하고 청소년들의 잘못된 선택들이 가져오는 여파만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다른 의미가 있어요. 부모들의 뜨거웠던 시절, 그들의 여름에 태어난 아이인데 사랑하고 원치 않은 잔해가 여기 나오는 아이들인 거죠. 다 타버리고 남은 잿더미처럼요. 악의 세습은 이런 어른들의 잘못된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거죠. 잘못된 교육, 아이를 대하는 잘못된 태도, 무관심, 책임전가 등등...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한참 잘못된 현재의 교육 체제나 매체를 통한 무분별한 행동의 학습들, 이런 것들이 악습인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계속되는 관행, 그 피해를 보는 것은 아이들이고, 그 아이들이 장차 사회를 구성하고, 뒤틀린 쪽은 계속 뒤틀려가는 거죠. 자기가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어른들에게 반증을 내놓게 하는 이야기인거죠.


  항상 최선을 다하는 편이지만 이 작품은 하얗게 불태운 최애 작품인 것 같아요. 연기할 때 그 당시 연기한 지가 그렇게 오래된 때가 아니라서, 김꽃비 선배님이나 이준혁 선배님을 처음 뵈었던 것도 감개무량하고 신기하기도 했어요. 연예인 처음 보는 기분?(웃음)

  열정이 가득했죠. 그래서 현장에서 스탭분들, 선배님들 모두에게 질문을 많이 했어요. 연출자는 확실히 큰 숲을 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작품을 연출하는 사람의 역할이 얼마큼 중요한지에 대해 실감하게 됐어요. 열정 넘치는 좋은 촬영 환경 속에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는 아직도 만나면 <여름의 잔해> 때의 ‘제 연기가 정말 좋았지’라고 말씀하세요. 저도 이렇게 다시 영화를 보니, 창피한 부분도 있지만, 제 영화, 다시금 좋네요.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을지 궁금해요.

작가의 이전글 [인터뷰] 그 사람이 연대하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