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용태>(2010)
감독 : 이건욱
출연 : 문종훈(용태), 강말금(콜걸)
러닝타임 : 21분
<시놉시스>
용태는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한다. 같이 전역한 병사들이 곧바로 집으로 가지만 용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용태는 부대 근처에서 하루를 더 머물기로 한다.
저는 2009년부터 단편을 찍기 시작하여, 스물서너 편 정도 촬영했지만, 완성본 10편 만을 받아보았습니다. 촬영이 끝나고 나면 아르바이트와 새로운 작업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일에 휩쓸려 촬영에 대해 곧 잊었습니다만, 때때로 그 영화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이 났습니다. 나처럼 감독님들도 먹고 사는 문제와 또 다른 문제들 속에서 영화를 완성하지 못한 채 살아갈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또 잊곤 했습니다.
그 10편 중 저에게 여러 사람의 인사를 받게 한 작품이 작년에 촬영한 <자유연기> (2017/김도영 감독) 입니다. 나머지 아홉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남는 작품을 골라달라는 요청을받고 선택한 작품은 2009년 12월에 촬영한 <용태>입니다.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군요.
<용태>는 전역한 용태의 하루와 그날 밤의 꿈, 다음날 아침의 이야기입니다. 용태는 전역하고 나서 갈 데가 없지만 어딘가 가서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 합니다.
친구에게도 전화하고, 아버지께도 전화해서 내일 생일이라고, 어디냐고, 가도되냐고 물어 보지만 다들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용태는 꼬마들의 불장난을 지켜보다가 다가가지만 꼬마들도 도망갑니다. 불을 보던 용태는 모텔로 가서 콜걸을 부릅니다. 그 콜걸이 저입니다. 용태는 콜걸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고, 이야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녀는 더 꺼림칙하게 생각합니다. 콜걸이 시간이 되어 떠나려고 하자 용태는 위협을 합니다. 콜걸은 욕을 하고 나가버립니다. 용태는 소주와 우유와 약을 사 와서 입에 다 털어 넣지만 곧 토합니다.
다음 장면에서 콜걸은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웅크리고 자는 용태를 깨웁니다. 욕한 것을 사과하고, 생일 노래를 불러줍니다. 용태가 믿을 수 없는 행복에 그윽한 표정을 짓습니다. 콜걸이 다가가 꼭 안아줍니다. 서로 꼭 안습니다.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D959 2악장의 도입부가 흐릅니다.
꿈이었습니다. 용태가 한 줄기 햇살을 받으며 눈을 뜹니다.
영화의 마지막 컷은 파란 하늘입니다. 용태가 보는 하늘일까요. 거리의 소리도 들립니다.
앞서 나왔던 피아노 소나타의 뒷부분이 흐르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제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하나의 세계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관적이고 막연한 느낌이기에 설명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모든 작품은, 문학이든 미술이든 영화든,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의 삶이라는 세계속에 살아가면서 또 하나의 세계를 공상하는 일이 창작자의 일이라 생각하므로, 이 영화는 그것을 성공시킨 영화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두 장의 CD로 저에게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미팅, 리딩, 리허설, 촬영을 합쳐 5번 정도 만났는데, ‘만났다’ 싶은 순간들을 가졌어요. 이후 연락이 끊겼지만, 5년쯤 후에 감독님으로부터 메일이 왔습니다. 30대 초반이 된 감독님은 세계의 곳곳을 다니며 혼자서 무언가를 찍고 있었습니다. 이후 몇 차례 더 편지를 주고받으며 저는 가이드가 되는 말들을 얻었습니다. 지금은 ‘이미지의 힘’이라는 문구가 떠오릅니다. 작년에는 그의 독립 장편 <재재월드> (2017/이건욱 감독) 를 극장에서 보았습니다. 그의 작업에 대해 설명할 수 없지만, 그에게 추구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용태>는 외로움에 관한 영화입니다. 당시에는 제가 맡은 역할이 창녀와 어머니라는 두얼굴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었기에 마음의 벽도 조금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리뷰를 위해 오랜만에 영화를 보자,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요. 저는 남자의 외로움에 대해 잘 몰라요. 그리고 외로움을 그리는 젊은 남자 역시 (당시에 감독님이 26세였습니다) 여자에 대해 잘 모를 것입니다. 지금의 저는 모르면 모
르는 대로 자기답게 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나이가 들어서 일까요. '걍 좋네...'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외로운 용태가 그윽하게 안타까웠습니다. 성격적인 결함이 그를 외롭게 했을까요 아니면 외로움이 더 어리숙한 성격을 만들었을까요. 저는 마흔이 되면서 내가 외롭지 않은 운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래서 나는 외로움을 모른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어떤 사람이 미운 짓을 할 때, 그는 몹시 외로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잘 보아야 합니다. 사람을.
그리고 음악도 제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이 영화에 두 차례 나오는 소나타는 슈베르트가 죽음이 가까워왔을 때 써졌습니다. 죽음을 앞둔 젊은 슈베르트의 아우라가 곡에서 느껴집니다. 두 사람의 포옹할 때의 부분은 삶의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행위처럼 느껴지고, 마지막 컷에서 흐르는 부분은 고통과 정념의 시간이 지난 뒤 조용히 차오르는 눈물의 시간처럼 느껴집니다.
이상 저의 소중한 작품 <용태>에 대한 제멋대로 리뷰였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없어 아쉽지만, 십여년 만에 작품에 대해서 다시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져서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