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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Oct 23. 2021

동물을 위한다는 착각

제4회 카라동물영화제 <동물들>

제4회 카라동물영화제 관객리뷰단으로 영화를 미리 보고 작성한 글입니다.



[동물, 쟁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너머의 동물 윤리학

동물들 Animals

제니퍼 베이치월, 요나스 스프라이스터스바크 | 독일 | 2019 | 75분 | 다큐멘터리 | 15세이상 관람가 | 코리안 프리미어


https://youtu.be/vag9_P444Ho


차별은 때로 악의 없이, 무심하게 심지어 따뜻하게 행해진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알록달록한 동물 그림을 보며 이름을 맞힌다. 오리는 ‘꽥꽥’ 병아리는 ‘삐약삐약’, 울음소리를 흉내 낸다. 상어 가족 이야기를 노래하며 춤 춘다. 디즈니의 시작은 미키'마우스'였고, 전세계 어린이들이 열광한 K-애니메이션의 대부는 펭귄 뽀로로다. 아이들은 동물을 친숙하게 느끼고 사랑하게끔 배우며 자란다. 나도 그랬다.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고 배운다. 동물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그 사회의 성숙도를 나타낸다는 말은 하도 들어서 익숙하다. 동물을 해치는 이들은 주의할 대상이다. 사람을 해치는 범죄자들이 동물을 상대로 폭력성을 먼저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서다. 우리는 생명의 가치를 저울질하지 않는 자세를 머리로 알고 있고, 웬만해선 동물을 학대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이거면 충분할까.





<동물들>은 인간이 동물과 한 앵글에 담길 수 있는 아주 보편적인 상황들을 그저 보여준다. 인간은 동물과 함께 살고, 동물을 사육하고 관찰하고 연구하고 흉내 내고 분류한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위안을 얻고 그리워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동물을 충분히 ‘안다’고 믿고, 이용하고, 숨이 끊어진 다음마저 제멋대로 한다.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지만 굳이 들여다볼 일 없던 장면들이 잔잔하게 나열된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가슴이 답답해진 이유는, 영화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동물을 적극적으로 싫어하거나 학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다만 영화 속 인간들은 놀랍도록 악의 없이, 놀랍도록 인간 중심적으로 동물을 이해하고 이용한다.



동물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는 절박한 반려인들의 마음을 이용해 돈을 번다. 회사의 관리자들은 말과 소통하는 경험을 통해 팀원들을 더 잘 이해하려고 한다. 품종견 콘테스트 주최자는 브리딩이 ‘가장 행복한 동물을 만드는 일’이라 믿는다. “행복하게 사는 두 사람을 모아서 아이를 낳게 했는데 아이가 불행하게 자라는 경우 드물다”며 “모든 요소가 맞아떨어져야 가장 행복한 피조물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새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강연을 하고, 치매 노인들은 아기 물범의 생김새와 움직임을 본뜬 인형을 옆에 두고 위안을 얻는다. 이렇게 동물은 인간에 의해 일상적으로 타자화되고 대상화되고, 인간을 위해 기능한다.


도살장에선 트럭에 실려 온 동물 사체가 물건처럼 쏟아져 내린다. 죽은 곤충을 분류하는 이는 섬세한 손길로 몸통에 침을 꽂는다. 새의 가죽과 내장을 분리하는 박제사의 손은 거침이 없다. 또 다른 이는 그 작업이 진행되는 앞에서 태연하게 스마트폰을 만지며 담배를 피운다. 이 직업 현장에 대단한 비윤리는 없다. 모두가 무뎌져 있을 뿐이다.


인간의 무심함에 어지럼증이 느껴질 무렵, 영화 후반부에 한 도살장 직원이 “요즘은 환경이 많이 나아졌다”고 말한다. 윤리적인 죽임이란 있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해선 동물권을 생각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살균, 건조기, 프레스, 그라인더 얘기였다. 그는 작업자들의 업무 강도와 안도감을 이야기했다. 쾌적한 시스템과 운영체계를 자랑했다.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사고다.




강아지가 너무 좋아서 부모님께 “사달라”고 말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 초등학교 정문 앞에선 병아리를 팔았다. 아이들은 너도나도 떨리는 가슴으로 병아리를 ‘사갔지만’, 닭이 된 병아리의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우린 동물을 열렬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종 차별을 행했다. 사랑하는 마음이 다가 아니다. 때리지 않고, 죽이지 않는 마음으로는 부족하다. 동물의 입장에서 충분히 배려했다고 믿는 것조차 인간의 생각일 뿐이다.


기울어진 관계를 기억해야 한다. 이 불평등을 한순간에 바로잡을 순 없겠지만 감히 동물을 위하고 있다는 착각에선 벗어날 수 있다. <동물들>은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않으면서, 무겁게 우리 모두를 꾸짖는다.




제4회 카라동물영화제

온라인 상영 기간 : 10/23(토) 10:00 ~ 10/31(일) 23:59

온라인 상영관 : purplay.co.kr/kaff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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