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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Oct 23. 2021

살리는 마음이 살리는 삶

제4회 카라동물영화제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

※ 제4회 카라동물영화제 관객리뷰단으로 영화를 미리 보고 작성한 글입니다. 



[동물, 신작] 지금 할 수 있는 우리의 응답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 Don't Feed the Stray Cats

정주희, 김희주 | 한국 | 2020 | 79분 | 다큐멘터리 | 전체관람가


https://youtu.be/ZFnrX1DKfag


믿기 힘들겠지만, 누군가는 대가 없이 다른 생명을 돕는다.


생명의 무게를 한번이라도 마음 속 저울 위에 올려 본 사람들에게


어린이가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배가 고픈데 돈이 없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한 유튜브 채널에서 진행한 이 작은 실험에서, 식당 주인 대부분이 아이를 자리에 앉히고 배불리 먹였다. 가격은 신경 쓰지 말라며, 정말 먹고 싶은 걸 먹으라며, 조금도 눈치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마음도 보였다.


모르는 아이일지라도 배를 곯고 다닌다면 일단은 뭐라도 먹이고 보는 밥심의 민족.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신기하게도 고양이는 건드린다. 유독 고양이가 밥 먹는 걸 못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고양이뿐 아니라 밥을 주는 사람도 건드린다. 캣맘은 언제부턴가 혐오 폭력을 조심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길고양이들이 밥을 먹으러 오는 장소에는 이런 글이 붙어있곤 한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



영화의 주인공 나영씨는 밤낮으로 수많은 고양이의 끼니를 책임지는 캣맘이다. 뇌 병변 2급 장애로 일주일에 세 번씩 혈액 투석을 받는 몸이면서도,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동네 구석구석에서 고양이를 챙긴다. 현금이 부족할 땐 휴대전화 요금을 당겨서 고양이 밥을 사기도 한다. 아프거나 다친 고양이가 보이면 어떻게든 구조해 단골 병원에 데려간다. 나영씨 이름 앞으로 외상이 쌓여간다. 그래도 멈출 수가 없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잠깐 보고 말 사이인 택시 기사님조차 "아줌마부터 챙기라"고 잔소리를 한다. 하지만 나영씨에게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 길고양이가 눈에 밟히는 족족 집으로 데려가 방치하는 호더가 아니다. 고양이들이 도심 속에서 자기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 먹이를 놓아줄 뿐이다. 그러다 당장 병원에 데려가야 할 아이가 보일 때만 결단을 내려 구조한다. SNS를 활발히 이용하며 도움의 손길을 모으고, 백방으로 입양처를 찾는다.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에도 여러 마리가 나영씨 덕분에 새 가족을 만났다.




주변의 걱정과 경제적인 어려움보다도 나영씨를 힘들게 하는 건, 고양이들에게 작은 공간도 내어주기 싫어하는 혐오의 목소리다. 카메라가 따라붙은 상황임에도 나영씨에게 ‘한소리 하는’ 이들이 어김없이 나타났다. 이들은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일이 주민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언성을 높인다. 구청에 신고하겠다며 윽박지르기도 한다. 이유를 물으면 “고양이가 병을 옮긴다”고 말한다. 무슨 병이냐고 되물으면 대답하지 않는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이들이 꺼리는 대상은 실체가 없다. 고양이가 퍼뜨릴지도 모를 어떤 전염병 또는 고양이의 ‘음산한’ 기운. 심지어 아무 데나 똥오줌을 싼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고양이 똥이 어떻게 생겼는지, 고양이 오줌 냄새가 어떤지도 모를 거다. 반면 나영씨를 눈물짓게 하는, 고양이들의 아픔은 실재한다. 당장 구해주지 않으면 이내 끊어져 버릴 생명줄이 눈에 보인다. 그래서 나영씨는 외면할 수가 없다. 그는 습관처럼 중얼거린다. “얘들도 똑같은 생명인데...”



고양이들은 나영씨를 움직인다. 지팡이 없인 걷기도 힘든 몸을 쉴 수 없게 만든다. 고양이들 눈엔 나영씨의 장애가 보이지 않는다. 편견 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기다려주는 존재들을 위해 나영씨는 힘이든 용기든 무엇이든 낸다. 밥을 주지 말라는 일침에 답변을 하듯 글귀를 써 붙인다. 많이 남지 않은 삶, 좋은 일 하나는 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부디 이해해달라고.


해가 저문 골목길, 길고양이를 챙기는 나영씨의 손길을 연이어 보여주며 영화는 끝나간다. 나영씨는 누구도 시킨 적 없는, 본인이 자처한 책임을 묵묵히 다한다. 길에 사는 고양이들의 숨이, 나영씨를 의지하는 마음이, 인연의 끈이 되어 나영씨와 연결된다. 그 가느다란 실들이 엉키거나 끊어지지 않게 나영씨는 같은 속도로 같은 마음으로 움직인다. 전동휠체어의 불빛이 그 실들을 따라 퍼져나간다. 도시가 조금은 더 밝아진다.




제4회 카라동물영화제

온라인 상영 기간 : 10/23(토) 10:00 ~ 10/31(일) 23:59

온라인 상영관 : purplay.co.kr/kaff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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