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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Oct 24. 2021

마구 헤집어도 밉지 않은

제4회 카라동물영화제 <세이브 더 캣>

※ 제4회 카라동물영화제 관객리뷰단으로 영화를 미리 보고 작성한 글입니다. 



[동물, 단편] Short! Strong! AnimalS!

세이브 더 캣 Save the Cat

허지예 | 한국 | 2021 | 29분 | 드라마 | 전체관람가



고양이를 구하는 마음이 우리를 구할 때


마음속에 오래 닫아 둔 방문이 있는 사람에게


진희와 영우는 작업실을 공유한다. 한 방에 책상을 나란히 두고, 진희는 영화를 하고 영우는 글을 쓴다. 두 사람이 공유하는 건 작업실만은 아니다. 함께 작업실을 쓰던 친구 명진이 있었다. 이들은 명진을 잃은 경험도 나눠 갖고 있다. 명진의 기억을 작업실 굳게 닫힌 방 안에 넣어두었다. 누구도 섣불리 방문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변화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작업실 문 앞에 누군가 고양이를 두고 갔다. 정이 많은 진희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서 영우의 눈치를 살살 본다. 영우는 마냥 반기지는 못하면서도 반대하지 않는다. 아마도 진희가 자신을 거뒀던 날을 기억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흑백 화면으로 소환되는 과거 속에서, 진희는 일상에 지쳐있던 영우와 우연히 마주치고는 작업실을 같이 쓰자고 불쑥 제안한다. 그때 왜 그랬냐고 묻자 진희는 웃으며 대답한다. “네 글이 계속 보고 싶어서.” 영우가 이제껏 글을 쓰고 있는 건 어쩌면 진희의 즉흥적인 오지랖 덕분이었다.


그렇게, 명진을 떠나보내지도 못하는 작업실에 외려 식구가 더해졌다. 고양이 ‘매기’는 일상의 파동을 조금씩 바꿔 놓는다. 꿈에만 매달려 있던 진희는 일을 구했다. 영화가 너무 하고 싶어서 엉엉 울고, 뛰어버린 보증금에 작업실을 정리할까 고민하던 모습은 오간 데 없다. 책임질 고양이가 생기자 한 뼘은 어른이 됐다. 매기는 낮시간 작업실에 혼자 남은 영우의 조용한 일상도 헤집는다. 책상 위를 가로질러 뛰어다니며 훼방 놓는 매기 때문에 영우는 자꾸만 집중력을 잃는다. 잠시 외출한 사이 매기가 없어진 줄 알고, 온 골목을 애타게 헤매기도 한다. 진희가 병원에 데려갔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운다. 영화 초반 응석 부리듯 우는 진희를 차분하게 다독이던 영우가 이번엔 진희의 위로를 받는다. 매기가 뒤집어놓은 풍경이다.



심심한 고양이는 어디든 들어가고 무엇이든 깨부순다. 매기는 고양이의 본분에 충실하게, 명진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창가의 화분을 깨뜨린다. 무겁게 닫혀 있던 문이 예측할 수 없는 타이밍에 너무도 시시하게 열렸다. 진희와 영우가 자신의, 또 상대방의 상처가 덧날까 미루고만 있던 일을 매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버린다. 영우가 진희에게 명진의 방 이야기를 꺼내고, 방 안으로 들어가 깨진 화분을 치우게 만든다. 두 사람은 알게 된다. 이 문을 열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구나.


갑작스럽게 결정되는 것들이 일상을 흘러가게 하고 상처를 어루만진다. 서로의 절망을 보듬고 불안을 끌어안으며 지켜온 시간들. 그 사잇길을 고양이가 천연덕스럽게 휘젓고 다닌다. 천방지축 고양이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니 굳게 닫혔던 방문이 열리고 깨진 화분이 있던 자리를 파릇파릇한 새 화분이 채운다. 영우는 오른 보증금을 자신이 내겠다고 말한다. 너와 계속 함께하고 싶기 때문에. 명진의 방문은 이제 닫히지 않는다. 새 화분이 놓인 창가에서 매기가 햇살을 받으며 장난을 친다.



제4회 카라동물영화제

온라인 상영 기간 : 10/23(토) 10:00 ~ 10/31(일) 23:59

온라인 상영관 : purplay.co.kr/kaff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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