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왔다 율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okphoto Jun 12. 2024

반려묘의 고양이 자세

변비에 걸렸다. 나 말고, 반려묘 율무가.



분명 전날 밤까지만 해도 사냥놀이도 날래게 하고 츄르도 맛있게 해치웠던 율무였다. 이튿날 아침부터 영 활력이 떨어져 보이더니 화장실에 들어가서 요가 자세 중 하나인 “고양이 자세”를 하는 게 아닌가. 무척 기분이 좋아서 궁디 팡팡을 해달라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마치 하이힐을 신듯 발끝을 세우고는 엉덩이를 하늘로 쭉 치켜든 자세로 분명 요가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을 화장실 안에서 끙끙 앓고 있기에 평소에 사냥놀이라면 환장을 하는 걸 알고는 사냥 놀이용 낚싯대를 꺼내었다. 낚싯대를 고양이 면전에서 마구 흔들며 화장실 밖으로 유인하려 해 보았지만, 실패였다. 눈동자만 말똥말똥 커질 뿐이고 전혀 움직일 기색이 없었다. 결국은 율무를 조심스레 들어 화장실 밖으로 억지로 꺼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율무 몸 여기저기를 만져보았다. 작년에 6개의 유선종양이 발견되어 전적출 수술을 했기에 율무 몸 어디가 허약해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입이 바싹 말랐다. 그때 조직검사 결과 양성 판정이 나오긴 했지만 3.5kg이 겨우 넘는 고양이의 가슴 면을 모두 도려내고 양옆 가죽을 몸 한가운데로 당겨와 봉합하는 수술은 너무나 큰 수술임에 틀림없었다. 수술 부위를 건드리면 율무가 아파할까 봐 작년 9월 이후로는 손을 대지 않으려 했는데. 오늘은 어쩔 수 없었다. 앞발 주변의 몸 윗부분을 만질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뒷발 주변의 사타구니를 주무를 때였다. 율무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었다. 병원 진료 예약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묻혔다 깨물며 초조히 기다렸다.



아파하는 율무를 어르고 얼러 고양이 이동장에 넣었다. 이미 둘 다 지친 채로 집 밖으로 비장하게 향했다. 택시를 타고 가기엔 절대 가깝지 않은 거리였다. 환묘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탈 수는 없었다. 작은 동물이 2차 동물병원(사람으로 치면 대학병원)에 갈 정도로 오래간 아프다는 건 분초를 다투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율무는 나에게 입양을 오기 전 임시 보호를 받는 동안에는 병원에 갈 때마다 잔뜩 겁을 먹어서 오줌을 이동장에 잔뜩 지렸다고 했다. 그래도 나랑 병원 가면서는 늘 차분하게 진료를 잘 받고 이동까지 능숙히 했다. 우리 집 고양이가 꽤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근처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L 타워가 있었다. L 타워에 가까워질 때면 자연스레 어느 정도 최악의 상황을 준비하는 마음이 들었다. 작년, 율무가 위급했던 상황에서 병원 근처의 타워가 각인되면서부터였다. 타워를 보거나 혹은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속 여유가 핍진해지던 초가을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그때보다 더 나은 상황일 거라는 이유 모를 자신감이 들어서인지, 타워를 오랫동안 편안히 바라볼 수 있었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 타워를 자주 볼 일은 없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만은 같았다. 드넓은 호수를 끼고 있는 가장 높은 타워일지언정, 내겐 그저 율무가 또 크게 아프다는 표식에 불과했으니까.



수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은 율무의 이동장을 보자마자 나를 알아보셨다.



“율무 보호자님?”


“네, 율무 또 아파서 왔어요. 흡.”



수의사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진료실에 들어가서는 습관처럼 두 손을 모으고 선생님의 촉진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특히 허리 부분이 선생님 손에 닿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는 율무의 모습에 선생님께서는 디스크 증상이 의심된다고 하셨다. 내가 율무를 관찰하며 메모해 온 것을 쭉 읊어드리자, 선생님께서는 율무가 심각한 변비일 수도 있다고 하셨다. 한 번에 하나의 질병만 오는 것은 아니니, 우선 엑스레이부터 찍어 알아보기로 했다. 잠시를 기다린 후 알게 된 결과는 의아했다.



“심각한 변비예요.”



조그맣고 거기에 아마도 딱딱하기까지 할 똥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뒤엉켜있는 율무의 뱃속 사진을 보니 더욱 기가 막혔다. 분명 내가 먹는 것보다 율무 밥을 더 잘 챙겨줬더랬다. 소화가 잘되는 사료에, 프리미엄 생살 고기 간식에, 사냥놀이도 열심히 했는데. 겨우 변비라니. 내가 아는 그 변비라는 것 때문에 그렇게 아파했다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변비로 아파하는 것 치고는 등 가운데를 너무 아파해서요. 비교적 어린 나이를 고려했을 땐 디스크가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혈액검사랑 신경계 검사 그리고 MRI도 해보는 게 좋긴 해요. MRI 찍으려면 수면마취 할 몸 상태가 되는지 마취 사전 검사도 해야 하고요.”


“네. 똥을 못 싼다고 화장실에 가서 두 시간 동안 엉덩이를 들고 있으려나요. 저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요. 율무가 작년에 큰 수술을 해서 그 후유증일까요? 변비 말고 다른 병이 또 있으면 어떡하죠?”


“보호자님 선택에 맡길게요. 변비 치료 약을 먹으면서 경과를 지켜보는 것도 좋고요.”



디스크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는데, 어떻게 검사를 안 할 수가 있나. 집사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찾아보니 검사를 미루었다가 결국엔 1,000만 원도 넘는 디스크 수술을 뒤늦게 해서 고양이별로 떠난(세상을 떠난) 고양이도 있다고 하더라. 만약 우리 율무도 그런 거라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서 율무 통증의 뿌리를 통째로 뽑아 없애주고 싶었다. 지금 바로 검사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율무와 함께 병원에 온 건 오후 3시, 마취과의 수술 스케줄에 맞춰야 해서 순서에 따라 율무의 마취는 저녁 7시에 진행될 거라고 했다. 작년처럼 병원에 앉아 엉엉 울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후줄근한 복장으로 꿋꿋이 병원 근처 송리단길 산책을 나섰다. 석촌호수 뷰가 보이는 예쁜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다가, 요즘 뜨는 곳이라는 우육면 집에 가서 식사도 마쳤더니 어느새 저녁 6시 30분쯤이었다. 숨을 크게 내쉬며 병원 로비에 앉아선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SNS 앱을 종류별로 돌아가며 구경했다. 물론 다리를 달달 떨면서. 율무는 막 마취에서 깼고 아직 수액을 맞는 중이라 좀 더 회복한 뒤에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검사 결과부터 곧 알려주신다기에 평온한 척 짓고 있던 표정과는 어울리지 않게 더욱 거친 바운스를 주며 다리를 떨게 되었다.



“집사님,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기도하듯 잔뜩 조아린 상태로) 넵!”


“율무는요….”


“네엡…?”


“변비네요. 다른 검사에서 아무 이상이 없다고 나왔어요.”


“아…. 똥을 못 싸는 게 그렇게 큰 통증을…. 유발하는 거군요…?”


“그, 그렇죠?”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표정으로) 얘가 엄살이 심한 걸까요? 흑흑…. 흫흫흫ㅎㅎ…….”



현실을 자각해야 했다. 큰 병이 아니면 다행인 거지 뭐. 율무가 온종일 내비쳤던 증상에 대한 의뭉스러운 의문들은 일단 내려놓고선, 수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으로부터 집사로서 고양이의 쾌변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배웠다. 자라 보듯 놀란 마음과 그것이 솥뚜껑임을 확인했음에도 놀란 마음을 다스리기란 영 쉽지 않았다. 그래도 무조건 다스렸다. 그래. 똥을 오래 못 싸면 그만치 아플 수 있지. 나 역시 변비를 지독하게 겪어보아 알지 않는가. 아래로 나올 게 나와야 위로 들어갈 게 들어갈 수 있는 법. 그래, 내가 요새 율무의 볼일에 소홀하긴 했다. 감자(고양이 오줌이 고양이 화장실 안 모래와 합쳐져 굳은 덩어리)가 몇 덩이인지, 고구마(고양이 똥)가 몇 개인지 착실히 세는 일을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금 시작하겠노라고. 사람도 고양이도 똥이 마려운데 마음대로 누지 못할 때 “고양이 자세”로 요가를 하면 좋은 이유를 우리 집 고양이를 통해 진실로 깨달았노라고. 비장한 마음으로 밤 택시를 타고 율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엔 변비에 좋다는 고양이 전용 배변 마사지와 쾌변에 직방이라는 고양이 혈 자리도 찾아보았다. 율무가 말만 할 수 있다면 어느 광고 문구로 쓰였던 이 말을 아주 크게 함께 외치고 싶은 밤이다.



“변!! 비!! 비!! 켜!!!!!”


매거진의 이전글 9월 어느 날의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