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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왔다 율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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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photo Sep 25. 2024

매일의 축복

율무의 아침의 축복을 받으세요, 율무 집사님

어제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다녀오는 날이었다. 진료 대기실에 앉아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핸드폰도 하고 안 보는 척 대기실에 앉은 사람들을 매직아이로 구경하며 멍 때리는 일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내 이름이 불린다. 나 다음에 호명될 다른 사람들의 찰나라도 절약해 보겠다고 진료실에 뛰어 들어가는 편이다. 나만큼이나 지쳐 보이는 의사 선생님은 내 안부를 묻는다.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네. 그런가요? 음. 네.”


2주마다 정기적으로 진료를 보기 때문에 진짜 오랜만은 아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그리 느끼신 데에는 지난한 진료 시간, 그리고 어쩌면 완쾌해서 만나기가 힘든 이 병원 환자들의 특성 탓도 있을 것이다. 나 말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안부를 물으며 돌보고 계시려나. 햇빛을 자주 쐬어야 비타민 D가 생겨 덜 우울할 거라는 조언을 건네시는 의사 선생님의 창백한 안색을 보고 있으면 의사 선생님이야말로 괜찮으신 거죠, 하고 물어보고 싶어진다. 저렇게 하루종일 진료실 안에서 자기만의 먹구름을 달고 온 사람들을 보시느라 본인은 병원 밖에 나가 햇볕에 우울을 말릴 시간이 있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우리 조상님은 왜 내게 우울과 함께 오지랖도 같이 주신 걸까. 두 조합은 극악이다. 방심했다가 선을 넘어선 아니 될 일이다.


“사람들은 좀 만나요? 쉴 때 뭐해요?”

“풋살 그만둔 이후로 운동을 새로 해야 할 거 같은데 뭘 할지 고민이에요. 데이트도 하고요. 집에 있을 땐 주로 티브이로 유튜브 보고요.”

“유튜브는 안 좋아요. 폰은 흑백 모드로 해놓자고요. 고향에 좀 내려가 있지 그래요.”

“흑, 흑백모드요? 그러면 귀여운 동물사진을 제대로 못 보는데요. 그리고 고양이가 영역 동물이라 엄마 집에 데리고 가면 스트레스 엄청 받을 거예요.”


진료 때마다 고향에 가는 것을 권하던 의사 선생님께 내가 너무 고양이 핑계를 많이 대어서였을까. 다음 한 마디는 아주 강렬한 것이었다.


“고양이를 괜히 데려왔나 봐요.”

“어, 어, 그래도요. 고양이가 저를 깨우고 재워가지고 제때 일어나고 또 자고요. 제가 안 먹으면 고양이도 밥을 안 먹어서 저도 밥 잘 챙겨 먹으려고 하는 건데요.”

“아, 그렇담 다행인데요. 그럼 또 2주 뒤에 봐요. 고향 좀 다녀오고요.”


정말이지 고양이 때문에 내가 칩거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선생님께 꼭 이 오해를 풀고 싶었다. 그러나 여긴 상담센터가 아닌 병원이다. 내 뒤에 진료 대기 환자들이 많다. 말을 줄이고 약을 받아 집에 간 후 다음 진료 때 말씀드리면 된다. 고양이가 외려 저를 살린 걸요, 얘는 게임으로 치면 제게 힐러 고양이예요,라고.


우울을 덜으려 병원에 간 건데, 왠지 젖은 솜이불이 된 기분으로 집에 가는 길에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극 중 ‘서완’(배우 노재원)은 오랜 고시 공부를 해온 현실을 부정하다 게임 속 세상을 진짜라고 믿게 된 망상 장애 환자이다. ’서완‘은 다정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간호사 ’다은‘(배우 박보영)을 “중재자님”이라고 부르며 잘 따른다. ’다은‘이 유독 지쳐 보이는 날에는 ‘서완’이 갈가리 찢어 만든 휴지 조각들을 꽃가루처럼 ‘다은’의 머리 위에 뿌려주며 이렇게 말한다.



[저의 아침의 축복을 받으세요, 중재자님.

오늘 하루 종일 체력이 떨어지실 일은 없을 겁니다.]


이 드라마에선 한 번만 나오는 장면이지만, 나는 이 장면을 매일 아침과 매일 밤으로 맞이한다. 물론 이 드라마에서처럼 아름답게는 아니다. 이른 새벽, 율무의 생각보다 내가 좀 더 오래 자고 있을 때면, 율무는 내 귀에다 바짝 입을 대고 빼액-에 가까운 냥- 울음소리를 지른다. 집에 들어갈 줄 모르게 고장 난 뻐꾸기시계처럼 말이다. 왜 깨우는지는 일단 정신을 차리고 볼 일이기에 어리둥절한 상태로 자리에서 겨우 일어나 거동을 한다. 내 눈이 뜨인 걸 확인한 율무는 다시 자러 간다. 예전엔 이런 행동이 율무의 심술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의심하기도 했지만.(물론 지금도 조금은 의심이 남아있음.) 이제는 율무가 내 바이오 리듬을 지켜주려고 깨우고, 또 잘 때가 되면 불을 끄라고 빼-액 울며 나를 재운다는 확신이 든다. 율무의 방식으로 내게 내리는 축복인 거다. 그 덕에 나는 휴직 중인 올해 내내 낮은 낮으로 밤은 밤으로 잘 지키며 살고 있다. 불명확한 우울 속에서 게을러질 때 나를 일으켜주는 확실한 행복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조금 시끄럽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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