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살 수업을 다녀온 밤이었다. 6개월을 쉬고 다시 시작한 풋살인데, 그날따라 몸 움직임이 가벼워서 경기 내용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경기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왕창 흥이 올라버렸다. 그런데 혼자였다. 동네에 사는 동료 선생님께 같이 어묵바(Bar)에 가서 맥주 한 잔 같이 하자고 연락하기엔 벌써 밤 열 시, 늦은 시각이다. 나 혼자 휴직한 와중에 어느 날 갑자기 기분이 좋다고 당장 내일 출근해야 하는 분께 연락을 하는 건 실례다. 집 앞을 어슬렁거리다가 큰맘 먹고 혼자 바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혼술을 하는 게 특이하게 여겨졌는지 나를 기억한 아르바이트생 분이 극진히 반겨주시는 게 영 민망해서 일 년에 두 번 정도 들르는 가게였다. 들어가 보니 막상 그분은 이제 일을 그만두셨는지 없다. 아는 얼굴이 사라져 아쉬우면서도 새로운 직원 분께는 내가 낯선 얼굴일 거라 안도감이 들었다.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나 홀로 맥주를 마실 수 있을 거였으니까.
여느 카페의 1인 1음료 규칙과 비슷하게 여기 어묵바에서는 1인당 어묵 3개는 시켜야 한다. 거기에다 ‘부산어묵’이 아닌 술집이니 맥주 한 잔까지 시키는 게 손님의 기본 소양이 되겠다. 혼자 테이블을 차지하는 게 죄송해 얼른 마시고 나가겠다고 직원 분께 말씀을 드리니 천천히 먹고 가도 된다고 한다. 그러고는 과장을 더해 달랑 어묵 3개를 시킨 나에게 거의 곰탕 같은 규모의 어묵 국물을 담은 냄비를 가져다주셨다. 이 양이면 맥주 500cc 3잔도 거뜬할 거다. 국물만큼 술을 마셔달라는 건가. 의뭉스러움을 품은 채로 국물이 끓는지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테이블 이야기가 선명하게 들렸다. 뒤 테이블에서는 신도시에 사는 대학생들이 뒤풀이 모임을 하고 있나 보다. 진심이 없는 떠보기 식의 질문만 가득해서 들을 알맹이가 없는 대화였다. 하긴 저 나이 땐 들리는 말보다도 화장실이나 산책을 가는 척 사라지는 사람들을 포착하는 것이 더 흥미롭긴 하다. 앞 테이블엔 이별을 앞둔 커플이 보인다. 하필 헤어져도 내 앞에서 헤어지는 걸까. 최대한 관심 없음을 내보이려 내 머리 위에 놓인 인테리어 등을 응시해 본다. 빨강, 초록 점의 향연이 교통신호 같다. 얼른 먹고 집에 가라고, 다른 사람 일에 신경 끄라고, 계시로 해석하며 남은 맥주를 꼴깍꼴깍 삼켰다. 금세 배가 불러오는지도 모르고 사장님이 푸지게 주신 어묵 국물을 호호 불어 마시면서.
이제 집이다. 시끄러운 술집에서 소리 없는 집으로 얼른 돌아오는 게 과거에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혼자 있는 방에선 입에 남은 술의 뒷향이 쓰고 다 먹은 안주 냄새가 더욱 비릿하게 느껴져서였다. 집에 돌아오면 느낄 수 있는 게 겨우 구취밖에 없어서 얼른 양치질을 하고 이부자리에 털썩 누워 핸드폰을 하며 최대한 정신없이 침잠을 물리치는 게 그때의 일과였다. 그런데 요즘엔 희한하게 그 갑작스러운 고요가 너무 좋다. 바깥 흔적을 잔뜩 데려온 나를 보며 소심하게 야옹- 우는 반려묘 ‘율무’의 온몸에 얼굴을 파묻으며 냄새를 묻히는 게 귀가 후 일과의 전부지만. 시끄러운 바깥에서 내 속의 요란함을 잊고 돌아온 집에선 조용한 소란을 피우며 우리 고양이와 함께 있는 게 꿈만 같다. 늘 바르게 조용히 착실하게 참으며 지내왔던 내가 작은 고양이 앞에서만큼은 아무런들 좋아지고 만다. 3킬로그램 남짓의 동물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소심한 난리를 치고선, 감히 고양이를 성가시게 한 대가를 잊지 않고 꼭 치른다.
[뽀시락, 뽀시락]
“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