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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photo Nov 21. 2024

한 마디만 하려고 했는데요

이번엔 진짜 망한 것 같은 이들에게

This is not a “Soo-Neung” story.
이건 수능 이야기가 아닙니다.

수능을 망친 건 벌써 17년 전의 일이다. 그래도 집 근처의 웬만한 지역 국립대는 장학생으로 갈 수 있었고, 결론적으로는 엄마가 권했던 교대를 가는 데에도 성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뭐 그리 슬퍼할 일이었나 싶다. 수능 망한 사람이 한둘이던가. 하지만 고1 때 내 장래희망은 “박대기” 기자처럼 되는, 아니 어쩌면 그 자리를 빼앗는 것이었다. 폭설 속에서 인간 눈사람이 되어서도 위축되지 않고 시청자에게 끝까지 속보를 알리는 그 짧은 영상이 뇌리에 깊게 쏙 와 박혀서였다. 멋진 일에 가까워지겠다는 이유 하나로 학교 곳곳을 뛰어다니며 아낀 시간을 몽땅 공부에 쏟았다. 최상위권 학생의 이름만 다정히 불러주던 선생님들은 학업 성과의 지표로 삼기에 좋았다. 어느 즈음부터는 내 이름도 곧잘 불리게 되었다. 학원이나 과외 없이 혼자 하는 공부는 돛 없이 손수 노를 저어 가는 배 같았다. 어떻게 올린 성적인데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수능달인 11월엔 기진맥진했다.

수능이 끝나고 가채점을 해보니 평소 원점수보다 50점도 더 낮게 나왔다. 목표하던 곳에 원서를 내보는 건 돈을 버리는 일이었다. 어느 국립대 국어국문학과의 전액 장학생으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아마 신입생을 위한 설명회에도 다녀왔을 거다. 고등학교랑 비교도 할 수 없게 대학교는 얼마나 크던지. 이동 시간이라도 아껴 더 공부하겠다고 건물 사이를 뛰어다닐 수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내가 글을 빼어나게 잘 쓰는 것도 아니라 작가로 먹고살지는 못할 것 같아 국문과는 어떻게 취업을 하나 인터넷에 찾아봤다. 개중에 좋은 평균 학점을 받아서 교직 이수를 하고 또 임용고사에 합격해 중등교사가 되는 방법이 도식화된 블로그 글을 읽게 되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꾸준히 잘하는 건 내가 진짜 못하는 거였다. 작가도 교사도 안될 거라면 재미라도 있어야 여길 다닐 텐데. 내가 국어를 아주 사랑하는가? 자문했다. 제발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아 떠올라줘, 바랐지만.

진정 아니어서 한숨만 나왔다. 이것도 아니면 어떻게 이 넓은 학교를 내 의지로 다니지. 대학 꼭 다녀야 하나. 꼭 살아야 하나. 왜 살지. 왜 태어났지. 그 많은 “올챙이” 중에 하필 겨우 내가 될 것이었지. 그렇게 태초의 나를 떠올리기까지 했던 그 순간엔 캠퍼스를 품은 허공에 대고 악악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곧 봄을 맞이할 대학교의 푸릇푸릇한 기운을 맛보고 왔음에도 나는 우스꽝스러운 생각들의 악순환에 갇혀버렸다. 집 안에서 시간만 허비하는 허깨비가 된 채로 추가합격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떨어질 거라 생각하고 지원했던 강원도의 교대에서 온 전화였다. 초등교사가 되는 일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따로 교직 이수를 하지 않아도 임용고사를 치를 수 있다니 다행인 소식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때늦은 부끄러움이 검게 몰려왔다. 면접시험 날 간사하게 뱉어놓은 말들이 떠올라서였다. 그건 예상 질문에 준비했던 가짜 대답이었다.

면접관 교수님: 경남에서 강원도 대학까지 지원했다는 게 참 특이한데요. 학생만의 지원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나: 그 질문을 마침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태어난 곳이 강원도입니다. 교사가 어릴 적 꿈이었던 어머님께서는 제가 교편을 잡게 된다면 꼭 강원도의 아이들을 가르치면 좋겠다고 종종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이제 제가 그 말씀을 따를 차례라고 생각합니다. (능청스레) 강원도의 교육을 제가 일으켜보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다. 뻔뻔히도. 이 글 앞부분만 봐도 알 거다.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배경으로 나 자체로 빛나고 싶어 한 사람이었다는 걸. 그러니 이거 큰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찌어찌 마모되며 둥글어진 건지 나는 여태 교사를 하고 있다. 돛 없이 혼자 노를 젓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은 여전하다. 오히려 더 거센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것도 같다. 그래도 내가 잡아준 학생들, 나를 잡아준 학생들(특히 G, H, Y), 생사를 확인해 주는 이들을 떠올리면 기진맥진해도 두 손에 쥐인 노만은 꼭 쥘 수 있다. 다행이다. 심지어 요즘엔 내가 선생님인 주제에 멋져지기까지 할 것 같다는 예감이 세게 든다. 멋짐을 습득하는 일환으로 풋살을 배우는 중인데, 연습을 하다 보면 미래의 한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아마 어느 오후 학교 안 운동장에서일 거다. 내가 인솔하던 아이들 쪽으로 급히 공이 날아온다. 나는 이거 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가벼이 트래핑한다. 그러고선 공을 차던 아이의 발끝으로 택배 쓰루 패스를 한다. 마무리는 윙크 및 덴티큐. 크. 멋지다. 이쯤에서 이걸 읽고 있는 당신은 필자가 대체 뭔 소리를 하는 산만한 사람인가 싶을 거다. 결국엔 지금까지 한 모든 말들은 이 비루한 한 마디의 응원 깃발을 꽂으려 만든 모래성에 불과하다.

“진짜진짜로, 애쓴 당신, 짱이야.”

+  오늘의 추천곡

’시작할 수 있는 사람‘, 옥상달빛

나무가 바람에 흔들릴 때 나무는 살아있다 느끼지

너도 조금은 흔들리고 있다면 네가 살아있다는 이유일 거야

너는 떠날 수 있고 움직일 수도 있고 생각할 수도 있지

이 중 하나만 돼도 뭐든 시작할 수 있는 사람 너는 시작할 수 있는 사람

때론 누군가를 위해 살아 어쩌면 살아야 할 이유가 필요해

어떤 이유보다 더 넌 중요한 그런 사람 분명히 그런 사람

다시 일어날 수도 다시 한번 더 시작할 수 있는

너는 그럴 수 있는 사람 뭐든 시작할 수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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