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의 이야기이다. 뻔한 클리셰일 수도 있는 문장을 가정해보고자 한다. 만약, 소행성이 충돌하여 지구가 멸망할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고고한 도덕주의자들과 파렴치한 사기꾼, 악독한 독재자들이 인류를 대표하는 위치에 섰을 때 그들은 자신이 걸어온 길에서 벗어나 무언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나의 의미가 단순히 살아남아야 할 개인이 아니라, 인류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다고 각인되는 순간. 과연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뒤로 하고, 가장 아름답고 옳다고 믿어온 가치관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인류의 생존을 위해 고귀한 복종을 선택할 수 있을까?
과거의 신념이 신의 가르침이었다면, 이단을 위해서도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 물질 자본주의를 신봉했다면, 끝내 손에 닿지 않을 명예와 부를 포기하고 희생할 수 있을까? 얼핏 어리석어 보이는 이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그들에게 기꺼이 복종하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
이런 담론들은 소설이나 영화, 철학적 사상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대중매체와 결합해 영웅의 형태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아이언맨과 배트맨 같은 인물들이 그렇다. 그들의 희생을 보며 우리는 개인의 초인적인 의지력에 감탄하고 존경을 표한다. 이처럼, 우리는 영웅의 이야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이러한 갈망은 그 이면에 방치된 문제들과 실패를 드러낸다. 우리를 이끄는 불빛의 온도는 따뜻함과 차가움 중 어느 쪽에 가까워야 할 것인가.
우리를 보다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부끄러움일 것이다. 먼지 쌓인 창고에서 꺼낸 철지난 신문처럼, 손으로 먼지를 털어내어 내용을 읽어보면 특색 없고 고리타분한 한자들이 쓰여 의미도 내용도 알기 어려운 말들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부끄러움은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며 타인의 흠을 찾고 깎아내리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는 보다 목가적이고 내면적인, 그리고 개인주의적인 부끄러움이어야 한다. 무언가의 의미는 남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야 한다. 부끄러움 역시 그렇다. 이는 고리타분한 전통이나 타인의 시선 속에서 발견되는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에게서 시작되어야 하며, 그 안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다시 이야기를 돌아가 보자. 만약 소행성의 충돌을 막을 기회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나는 어리석지만 고귀한 복종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고귀함은 오롯이 나의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비밀스럽고 고요한 곳에 남겨져야 하며, 다른 이들의 손에 의해 왜곡되거나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비루한 옷을 기워 사회적 깃발로 삼는 것은 고귀함에 대한 가장 큰 모독이다. 사회는 나로부터 성스러움을 빼앗을 권리가 없다. 오히려 그것은 인류 전체의 수치다. 개인의 희생 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우리의 무능함이자 역사의 실패이기 때문이다. 그날은 성스러운 희생을 기리는 날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가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실패를 자각하고, 깊고 조용한 성찰을 시작해야 하는 날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