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복이를 죽였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친구 복이를 내 손으로 죽였다
<그토록 좋아하는 친구 복이를 내 손으로 죽였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어쩌면 그건 필연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복이가 죽기 직전에 한 말은, “네 손에 죽어서 행복해”였다. 나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완전범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건 아니다. 복이가 죽은 이후, 복이와의 만남과 이별, 복이가 바라는 세상을 위해 나는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휴일이다. 최대한 편안한 차림과 자세로 유튜브를 보고 있다. 여기저기 클릭하다가 어떤 영상이 내 손을 멈추게 했다. 검은색 옷차림의 30대 남성이 바쁘게 왔다 갔다 한다. 그 모습이 재밌다. 뭔가를 얻어내려고 다른 나라까지 가서 사람을 만난다.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고, 웃음은 많이 어색하다. 걸음은 팔자다. 우리 복이는 이 사람을 이렇게 평가했다.
권력이 있으면 뭐해. 사는 게 힘들어 보이는 데. 자기 몸도 버거워 하면서 여기저기 왔다다하는 모습이 많이 피곤해 보여. 그리고 왜 저렇게 웃는 거야. 저런 웃음은 초조와 긴장을 감추고 있는 웃음이야. 불길한 웃음이야.
복이는 나이 들어갈수록 입 꼬리가 예뻐진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여주인공 레이첼 맥 아담스처럼 미소가 예쁘다. 미소천사로 불린다. 어떤 상황에서도 복이는 웃음을 잃은 적이 없다. 그 정도로 내공이 장난 아니다. 억지웃음, 자연스럽지 않은 웃음을 싫어한다. 조용한 성격의 복이는 나대고 시끄러운 것도 싫어한다. 복이가 나에게 귀띔 했다.
이 남자는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지만 엄청나게 힘든 삶을 살고 있어. 행복해 보이지 않아. 나는 이 남자가 전혀 부럽지 않아.
복이야, 그 누구도 이 남자를 건드리지 못하잖아. 이 사람이야 말로 실세 중의 실세가 아닐까.
아니지. 매일 매일이 불안하잖아. 잠도 편안하게 자지 못할걸. 그게 무슨 삶이야.
나는 복이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래. 무언가 있으면 다른 걸 없게 하고, 무언가 없으면 다른 걸 있게 하는 구나. 신은 공평하게 인간을 만들어 놓았어.
그럼 이 순간 내가 저 남자보다 행복한 거 맞지? 나 스스로 위안해보았다. 이 남자는 북한 최고 권력자, 김정은 위원장이다.
2018년 4월 27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대한민국 대통령과 만났다. 그해 6월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났고, 다음 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다시 트럼프를 만났다. 몇 개월 후에 판문점에서 대한만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을 동시에 만났다. 둔해 보이는 몸으로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김정은의 모습이 안쓰럽고 불쌍해 보였다. 지금 나는 이렇게 편안한데 말이다. 검정색 인민복을 입고, 부자연스럽게 웃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통쾌했다. 그의 지위가 전혀 부럽지 않았다. 내가 더 행복하니까.
우리는 살면서 친구를 만난다. 소꿉친구도 있고 학창 시절 친구도 있다. 직장에서 만난 친구도 있고, 모임이나 동네에서 알게 된 친구도 있다. 친구가 꼭 나이가 같아야 하거나, 동성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래도록 변함없이 만나는 친구도 있지만, 스쳐가는 친구도 많다. 좋게 헤어진 친구나 좋지 않게 헤어진 친구나, 지나고 생각하면 미련과 아쉬움이 남는다. 나하고 맞는 친구를 만나면 즐겁고 유쾌하다. 인생에서 거울 같은 친구를 만난다면 그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내가 지금 만나는 친구 중에 복이가 있다. 복이가 없었다면, 아마도 내 삶은 훨씬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삶이 힘들다고 매일 막순이를 먹고, 목표도 희망도 없이 세월을 보냈을 것이 다. 복이는 일반적인 친구와는 달랐다. 이렇게 비교해 보고 싶다. 예컨대, 오랜만에 연락이 온 친구와 만나 점심을 먹었다. 이 친구는 돈에 욕심이 없다. 돈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부모 잘 만나서 돈 걱정을 안 한다. 이 친구가 가지고 있는 오피스텔과 자동차는 최고급이다. 이 친구와는 일 년에 한두 번 밥 먹고 술 한 잔 하는 게 전부다. 이 친구와 정서가 안 맞거나, 말이 안 통하는 건 아니다. 대화가 늘 거기서 거기지만 즐겁게 만난다.
복이는 어떨까. 부모도 모르고, 돈도 없고 부동산도 없는 복이는 달랐다. 나에게 각별한 친구로 쫀득하게 다가왔다. 매일 만나고 싶었다. 복이가 내 삶의 고민을 들어준 그날부터, 나는 복이와 친구가 되었다. 복이의 생활을 옆에서 보고, 복이가 나에게 해주는 말을 통해서,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다. 정신 차려서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했다. 좋은 친구를 만났다고 나는 생각했다.
채식 위주로 먹는 복이는 체구가 작고 약해보이지만 건강미인이라는 수식어도 달고 다닌다. 가진 게 없어도 부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봉사도 잘한다. 죽을 때는 남김없이 다 기부하고 떠날 거라고 말한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사는 내 친구 복이를 소개하고 싶은 거다.
사람들은 이름이 정말 복이냐고 물어본다. 이름의 끝 글자가 복이라, 그냥 복이라고 부른다고 말해준다. 복이는 잘 웃을 뿐만 아니라 심성이 어질다. 외모는 요염한 몸매를 가졌다. 내 마음과 몸을 즐겁게 해준다. 물론 나도 복이에게 듬뿍 사랑을 준다.
때가 되어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복이를 소개시켜 주었다. 모두 나만큼이나 복이를 좋아했다. 주위의 축복 속에 복이와 나는 애틋한 만남을 이어 갔다. 복이를 자주 만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도 복이가 좋은걸 어쩌나.
복이는 내가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가 되었다. 내 휴대폰 바탕화면도 복이로 해놓았다. 힘든 일을 마치고 일주일에 한두 번 복이와 함께 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 행복하다. 복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밤이기 때문이다. 복이의 허락 하에, 적당한 알코올도 빠지지 않는다. 와인이나 소주를 좋아하는 복이 때문에 이 날만은 나도 막순이 대신 와인을 가볍게 들이킨다.
복이의 고향은 전라남도 완도다. 유채꽃 아름다운 청산도에도 몇 년 살았다. 산보다 바다를 좋아하는 복이는 조용하고 말이 없다. 친하기 전까지 낮을 가린다. 동작도 많이 느린 편이다. 하지만 애교는 장난 아니다. 가끔 내 앞에서 몸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춤을 춘다. 미친 매력을 뽐낸다. 그 움직이는 모습이 관능미가 넘친다. 낮에는 요조숙녀처럼 있다가도 불 꺼진 밤에 야릇하게 움직인다. 어제 만났을 때, 나는 복이의 몸을 살짝 건드려 보았다.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부끄러운 듯, 몸을 움츠렸다. 나는 그 모습에 흥분되었다. 자태가 어찌나 매혹적인지, 복이를 대적할 상대가 없다. 동서고금의 어떤 경국지색도 복이 앞에서는 울고 갈 것이다. 그러고 보면 미소천사, 건강미인, 경국지색 소리를 듣는 복이가 내 옆에 있는 건 정말 큰 행운이다.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하다.
사실 복이와 나는 첫날부터 눈이 맞아 진도를 나갔음을 고백한다. 복이를 처음 소개 받아 만나던 날을 떠올려 본다. 나는 옷을 깔끔하게 차려 입고 복이를 만나러 갔다. 조용한 장소로 안내 되었다. 잠시 기다리자 복이가 도착 했다. 와우,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내 얼굴이 환해졌다. 복이도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이성을 볼 때 피부를 본다. 그것이 내가 보는 미인의 조건이다. 복이의 피부에 내 두 눈이 꽂혔다. 복이의 엷게 빛나는 황금빛 피부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행동에 들어갔다. 복이의 몸에 코를 들이댔다. 깊이 냄새를 맡아봤다. 부끄럽다고 하면서도, 복이는 나에게 몸을 맡겼다. 뭐랄까, 코끝으로 들어오는 이 냄새는 비누냄새가 아니다. 그렇다고 향수도 아니다. 그러면 뭐지. 그렇다. 자연 그대로의 냄새다. 천연의 향기다. 비리지 않았다. 내 눈에 뽀얗게 오른 복이의 살이 너무 탐스럽게 보였다. 나는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었다. 복이의 몸을 맛보았다. 짜릿했다. 서두르지 않고 음미하며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맛이 기가 막혔다. 오독오독 황홀할 정도로 맛있었다. 그렇게 복이를 맛있게 먹은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더욱 쫄깃한 관계가 됐다. 이 친구의 온전한 이름은 전복이다.
전복을 입안에서 깨물고 돌리다가 넘기는 그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워낙 해산물을 좋아하지만, 전복은 왕 중에 왕이었다. 맛, 식감, 영양 모두가 나를 감탄시켰다. 굴, 홍합, 해삼, 조개, 새우, 개불, 연어, 게, 소라와는 다른 맛과 식감이었다. 거기다가 내장까지 바로 먹을 수 있다는데, 경이롭기까지 했다. 살아 있는 전복을 보고 나서는 해양생물 중, 외모로도 으뜸이었다. 어찌 이렇게 생김새가 요상하고 자극적일 수 있을까.
한편으론 슬퍼보였다. 얘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모습이 되었을까. 전복 껍데기가 몸을 보호하는 갑옷이 아니라 온몸을 짓누르는 형벌처럼 보였다. 바위 밀어올리기를 영원히 반복하는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말이다. 맛과 영양은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바다의 죄인처럼 살아가는 모습에 안쓰럽고 불상해보였다. 몸을 누르고 있는 껍데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지도 못한다. 헤엄도 못 친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야 하는 모진 운명처럼 보였다.
반은 남자 반은 여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껍데기는 무엇인가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형제를 알아볼 수 없게 변장한 늠름한 군인의 모습 같았다. 껍데기만 보면 그 안에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렇게 껍데기를 돌려 안쪽을 보면 거기엔, 요염하게 살아 움직이는 여인의 모습이 있었다. 아,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을 숨겨놓고 있었구나. 이것이 평범하지도, 징그럽지도 않은 전복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가금씩 복이와 만나다가, 3년 전부터 아예 복이와 함께 살고 있다. 복이를 자주 만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필요한데, 이것을 해결할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6일을 복이와 함께 지낸다. 거의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복이의 몸에 칼을 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복이를 죽이는 일이 내 직업이 된 것이다. 이것이 최선이었다. 복이를 내 손으로 하늘나라로 보낼 때는 괴로운 적도 많았다. 아프지? 미안해. 좋은 곳으로 가. 이렇게 말해준다.
친구가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우리는 집에서 가꾸는 꽃을 보면서, 예쁘다, 예쁘다 하면 꽃도 쑥쑥 잘 자란다. 물 먹고 싶어 그러는 구나. 여기 있어. 이렇게 대화를 나눈다. 강아지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낑낑거리며 나를 반겨주고, 내가 속상하면 강아지도 밥을 안 먹는다. 오래 같이 있으면 주인의 마음을 읽는다. 어떤 사람은 어항의 물고기하고도 대화를 한다. 자신이 운전하는 차와 대화를 하기도 한다. 목욕하니까 시원하지? 이렇게 말한다. 지나가다가 구름이 예쁘면 구름하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것처럼 나는 복이와 매일 대화를 한다. 내 얘기를 아주 잘 들어준다. 복이는 아직 말이 없지만,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친구다. 밤에는 꿈속에서 만나기까지 한다. 둘이서 바다 여행을 원 없이 한다. 바다는 아름답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불행한 진실과 마주해야 했다. 복이를 포함한 바다생물들이 기후온난화와 해양쓰레기로 심각하게 고통 받고 있었다. 인간의 욕심이 더 이상 바다를 오염시켜서는 안 돼, 소리를 지르며 나는 꿈에서 깨어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복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내 진심이 수족관 유리 건너편 그들에게 전달된 것일까. 이제부터 복이와 나의 벽은 없었다. 로또가 꼭 돈일 이유가 있을까. 나는 나만의 로또에 당첨되었다. 처음 복이가 나에게 건넨 말은, 네 손에 죽어서 행복해 였다.
복이와 대화 하다보면 내가 신화와 역사를 통해 만나고 싶었던 인물들이 복이로 환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복이를 좋아했거나 복이가 살아가는 철학에 공감했던 인물들과의 만남은 더욱 뜻 깊었다. 나는 복이와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내 삶을 돌아보았다. 또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복이는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라고 했다. 나는 복이가 얘기해 주었던 삶의 교훈을 몇 가지 정리해 보았다.
1. 웃어라, 이빨이 보이도록 웃어라
나는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아. 야한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어. 그렇다고 다 그런 건 아니야. 이런 사람도 있어. 나를 보면 웃고 있는 입만 보인대. 어떤 때는 모나리자처럼 엷게 미소 짓고 있다는 거야. 어떤 때는 마릴린 먼로의 매혹적인 입술 같다고 하고. 아주 가끔은 남자의 입술로 보기도 한 댔어. 있잖아, 누구지? 그래. 조커. 조커의 입술처럼 음흉해 보인대. 그래도 보기 좋다지 뭐니. 너도 나처럼 웃으면서 살아. 어렵지 않아. 이왕이면 해맑게 말이지. 그러면 사람들이 다 좋아해. 그렇게 웃다 보면, 어느 순간 좋은 일이 생길 거야. 행운이 찾아와. 알았지?
웃으면 행운이 찾아온다. 좋은 말이다. 나도 너처럼 세월이 지나도 웃는 모습을 잃지 않았으면 해.
나를 계속 보고 있으면 너도 변할 거야. 좋잖아. 하루 종일 같이 있으니까.
너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확실해. 그런데 네 이름이 뭐야?
다들 웃음의철학자라고 부르지.
정말 멋진 이름인데.
2. 내 몸을 보려고만 하지마
오늘도 잘 지내고 있는지, 수족관 안에 있는 복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까, 유리에 붙어 입을 오므렸다, 폈다가를 반복하는 복이가 있었다. 자신의 이름이 아리아스라고 했다.
네가 앞으로 내 몸을 볼일은 절대 없을 거야.
무슨 말이야?
기분이 언짢아도 할 수 없어. 내 몸을 보려고 하지 마. 내 몸을 보면서 즐기려고 하지 마. 내 몸은 보는 게 아니야.
그럼 뭐야?
느끼는 거야. 그래줄 거지?
그래. 무슨 말인지 알았어.
복이의 얘기는 인간의 사랑에도 맞닿아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사이에 몸은 보여주려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 몸은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남녀관계에서 몸을 무턱대고 보려고만 할 때 마음은 식어가고, 몸을 진심으로 느끼려고 할 때 마음은 뜨거워진다. 복이는 나에게 이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였다.
3. 자연은 우리를 숨 쉬게 해주는 친구야.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살아라
우리가 갯바위나 암석에 붙어 있으면 우리를 전복이라고 생각 안 해. 그 정도로 갯바위나 암석 색깔하고 같다는 거야. 내 껍데기를 봐. 따개비, 석화, 해초 이런 것들로 붙어 있고, 흙도 묻어 있잖아. 그렇게 주변 환경과 하나가 되어서, 사람들이나 천적들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거야. 자연의 색깔에 빨리 적응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워 져. 우리 같이 힘도 없고 느린 전복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지.
그건,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야.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는 사람들이 뭐든 잘 하고 빠르더라고. 그런데 우리 인간은 어디 가서나 일보다 관계를 어려워 해.
그건 생각과 성향이 달라서 그래. 관계에 있어서 갈등과 충돌은 불가피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몰고 가지 마. 너무 세게 살지 말라는 뜻이야. 그렇다고 착하게만 살라는 것도 아니야. 때로는 관계에서 가면도 쓰고 연기도 해봐. 관계를 이롭게 하는 가면과 연기는 필요한 거야. 타인과의 관계에서 물 같은 사람은 물처럼 대하고, 칼 같은 사람은 칼처럼 대하면 크게 상처 입을 일은 없어. 궁극적으로 멘탈이 강해야 해.
그런 거 같아. 똑똑한 복이, 너는 바다에 있을 때, 유학까지 다녀온 애 같아. 너는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은 조금 길어. 변화하는종이살아남는다야.
너를 만나서 영광이었어.
4. 음식은 꼭 가려서 먹자
마스크를 처음 쓰고 복이를 마주한 날이다.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나는 복이에게 코로나19에 관해서 대략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자 복이가 다시 물었다.
내가 무엇을 먹고 사는지는 알지?
그럼. 주로 해조류를 먹잖아. 미역, 다시마 같은 영양이 풍부한 음식만 먹지.
잘 알고 있군. 아무거나 안 먹기 때문에, 내장이 신선해. 우리 내장이 얼마나 신선하고 영양가 있으면 조리하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겠어. 너희 인간은 우리 만난 것이 복 받은 거야.
그런가. 하하.
웃을 일이 아니야.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해. 너희들이 먹지 말아야할 동물에 손을 대고, 장난치는 걸 보면서 재앙이 올 줄 알았어. 계속 자연의 뜻을 거스르면 너희들이 등에 껍데기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지도 몰라.
장금아, 왜 내게 그래. 난 그런 사람 아니야.
네가 친구니까 대표로 말하는 거야. 그리고 바다물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도 알고 있지? 내가 더 화나는 걸 말해줄까. 너희들이 버린 방사능과 쓰레기를 우리가 먹고 살란 말이야? 이대로 가다가 어떻게 되는지 알지? 너희의 과한 욕심과 무책임한 태도가 또 다른 대재앙을 불러오게 될 거야. 바다생물들이 기형이 되어 살아가는 거 봤지? 돌연변이 인간이 출몰하지 않으란 법 없잖아.
나는 장금이가 하는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5. 사는 공간에 너무 집착하고 욕심 내지 마.
부동산 문제로 연일 나라가 시끄러울 때, 집과 땅에 대한 생각을 복이가 얘기했다.
나, 호수가옆통나무집이 말하는데, 정말 너희들의 욕심은 끝이 없어. 가진 게 많은 것들이 원래 욕심을 더 내는 법이야. 가진 게 없으면 뭘 할 게 없어서 욕심을 낼 수가 없어. 너희도 알다시피 나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곳에 살고 있지만, 집 욕심이 없어. 내 몸 하나 붙어 있는 곳이면 거기가 나의 행복한 집이야. 너희 하는 짓 보니까, 아파트와 건물 하나로 부자 만드는 세상 같아. 부동산 벼락거지라는 말까지 생겼다니, 너무 씁쓸하다. 너도 집 크기에 너무 욕심 내지마. 불필요한 공간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호수가옆통나무집아, 나는 옷 욕심은 조금 있어도 집 욕심은 크게 없어. 통풍 잘 되고 채광 좋으면 그것으로 만족해.
기특하군.
물론 방음도 돼야겠지. 층간 소음 때문에 문제가 많이 발생 하거든.
그러니까 우리들처럼 조용하게 살면 될 것을, 너희들은 너무 시끄러워. 조용한 삶이 무엇인지는 기회 되면 다른 친구가 말해줄 거야.
알았어.
6. 나는 고요한 삶이 너무 행복해
지난번 복이가 말한 조용한 삶을 알게 될 기회가 찾아 왔다. 수족관에서 꺼낸 전복이 오늘따라 키가 크고 잘 생겼다. 잠시 후면 이번 생을 마감하게 될 복이를 앞에 두고 말했다.
그동안 느리게 살았으니 다음 생은 반대로도 살아봐.
아니야. 느린 삶, 이게 행복이었어, 우리가 게으를 거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 게을러서 느린 게 아니야. 천천히 움직이는 거야. 여유롭게 말이지. 느려야 산다, 이게 우리의 절대행복이야. 나는 네가 너무 조급하고 시끄럽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중에 병 생겨. 그렇다고 행동이 느리고 가만히만 있으라는 얘기가 아니야. 조용한 삶을 즐겨보라는 거야. 혼자 즐길 줄 알아야해. 거기서 행복도 찾는 거야. 지금과 같이 전염병으로 인간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더욱 그래야해.
복이야, 내가 아는 인물과 어쩜 그렇게 똑같은 말을 하니. 네 이름이 뭐야?
나, 행복의정복이야.
그럼 그렇지. 내 생각이 맞았어,
나도 처음부터 이런 삶을 즐긴 건 아니야. 눈물이 나올 정도로 내가 싫었던 삶이 있었어. 셍긴 것도 동작도 다 마음에 들지 않았어.
정말?
그래. 잃어버린 것을 다시 가져오고 싶었어. 조만간 나는 최고의 바다생물이 될 거라면서, 기도도 하고 몸부림도 쳤어. 하지만 그게 다 헛된 꿈이라는 걸 알았어. 껍데기는 점점 커지고, 아무리 빨리 움직이려고 해도 몸은 항상 일정하게 움직이는 거야.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 멀리서보면 하늘, 육지, 바다가 모두 맞닿아 있는 것처럼, 불행도 행복과 맞닿아 있는 거야. 내가 생각했던 불행은 불행이 아닐지 몰라. 친구들이 말하는 행복이 뭘까, 뭐를 행복이라고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야. 그동안 내가 비현실적인 것을 꿈꾸고, 편안건만 보고 그렇게 살려고만 했구나. 생각과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어. 그랬더니 마음이 너무 편안해 지는 거야. 나만 이런 생각 했는지 알았는데 대부분의 친구들도 나와 같은 과정을 겪었더라고. 그렇게 우리는 자신의 삶을 철저히 치유하면서 살아 왔어.
그랬구나. 참으로 대단하다.
너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한 곳에 고요히 자리 잡고 참선도 하고, 운동도 천천히 동작을 해봐. 아주 천천히 말이지. 색다를 거야. 조용하게 지내는 삶을 살아봐. 그리고 너에게 참 고마워.
무슨 말이야?
너도 같은 마음이겠지만, 누군가가 내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있다, 이게 중요한 거야. 행복한 일이 거든. 너와 대화하면 봇물 터지듯이 얘기가 나와. 너는 얘기를 잘 들어주는 장점이 있어. 그게 좋아. 자 이제 나를 보내줘. 잘 살아.
그렇게 나는, 다음 생은 더 멋지게 살라고 말하면서. 행복의정복이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었다.
7. 전부는 아니더라도 절반의 희생은 어때?
오늘도 변함없이 수족관의 복이들는 연인처럼 서로 붙어 있었다. 그 종에서 자신을 울지마톤즈라고 소개한 복이가 말했다.
우리들은 말이야, 다른 친구들이 내 등 껍데기에 붙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내어주고 그래. 그걸 귀찮아하지 않아. 서로들 그렇게 절반을 내어주면서 살아. 너희들 언어로 허그라고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허그 많이 해줘.
그래. 너희들 그 모습 너무 보기 좋아.
진심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너무 가지려고만 하지 말고, 네 것도 내어주며 살아. 가끔은 희생하면서 말이지. 많이 가져서 나누어 주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편 가르기 같은 거 하지 말고. 편 갈라서 서로 욕하고 싸우고, 너희 세상은 왜 그런 거야. 우리들 봐. 네가 보기에도 우리들이 얼마나 평화롭게 지내니. 서로서로 의지하면서 그렇게 살잖아.
복이야, 부끄럽다. 바람을 알아도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희생과 평화가 좋은 줄 알아도 그렇게 살기가 인간들은 참 힘들어, 나부터도 그래.
내가 보기에 너희들은 이기심이 문제인 거 같아. 동화는 아직 막을 내리지 않았어, 동심으로 돌아가서 세상을 다시 바라보기 해봐.
8. 죽을 때 남김없이 다 주고 가.
복이와의 가장 최근 대화는 죽음이었다. 모든거기부라는 이름의 복이는, 죽을 때 자신처럼 전부다 주고 떠나라는 당부를 했다.
우리는 너희를 기분 좋게 해주잖아. 시각적으로 뿐만 아니라, 맛과 영양에서도 말이야. 버릴게 없는 최고의 음식이야. 죽을 때, 우리는 모든 걸 사람과 자연에 환원해 주고 가. 내장도 껍데기도 말이지. 그게 진정한 기부 아니야. 너희들 중에는 나 쓰기도 아까운 돈, 왜 기부해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 불쌍한 사람인 거야. 너도 얼마나 벌어 놓았는지 모르지만, 죽을 때, 다 주고 가. 아낌없이 기부하고 가란 말이야. 아무 것도 남기지 마. 돈과 물건은 다 주고 너의 이야기만 남기고 가. 너의 육신까지도 기증하고가. 알았지?
알았어. 그건 꼭 실천할게.
*인생의 고비에서 친구 복이를 만났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친구였다. 복이는 부모도, 돈도, 건물도 없지만 너무도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복이는 나에게 인간 삶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고, 최선을 다해 사는 인생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었다. 인생이 힘든 게 없으면 무슨 재미야, 견뎌야할 고통에 주저앉지 마라고도 했다. 복이가 좋아하는 말은 ‘행복은 그냥 오지 않는다. 극북해서 행복이 온다.’였다. 나는 중대 결심을 했다. 복이와 오래 함께 있고 싶어서 복이를 죽였다. 눈물이 났다. 필연적인 선택이었기에 후회는 없었다. 시간이 흘러, 동창회에서 만난 여자 친구 모안에게 복이 얘기를 했다. 나만큼이나 복이를 좋아했다. 다음 생은 복이로 태어나고 싶다고 모안은 말했다. 모안과 온택트에서는 연인관계,, 콘택트에서는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 코로나19 시대에 복이, 모안, 나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