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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먼드 마운틴 Dec 30. 2021

콘택트 친구, 온택트 연인

평생 보자는 말이 모안의 프러포즈였다.

<모안아,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니?

무슨 소리를, 너는 매력이 넘쳐. 연산아, 온택트로는 사랑을 못한다고 생각해? 함께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술도 마시고, 산책도 하고, 영화도 보고, 다 할 수 있어.

그게... 아니라, 알았어. 온택트 사랑.>    

모안이 실직한 후에, 나는 모안과 더 자주 통화했다. 참으로 신기한 게, 모안과 나는 연인 관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서로 상대에게 관심이 있어 밀고 당기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저 얘기 나누면 편하고 좋은 그런 관계였다. 아무리 대화가 잘 통하는 사이라도, 통화 횟수가 증가하면서, 남녀 간의 감정이 파고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인가. 5월의 어느 날. 오늘도 어김없이 밤 10시 30분에 모안과 통화를 했다.   

   

나는 모안에게 물었다.  

모안아, 무인도에 무엇이건 하나만 가져간다면 너는 무엇을 가져갈래?

나는 너를 가지고 갈래.

혼자서도 행복을 즐길 줄 아는 모안의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마음에 없는 소리는 아닌데, 이건 내가 달콤함을 느끼라는 일종의 사탕 같았다.

정말이야?

그럼. 연산아. 물을 가져간들, 불을 가져간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 사람을 가져가야지. 고기를 잡아도, 둘이 잡아야 많을 거고, 생각해도 둘이 해야 더 잘 풀릴 거고. 안 그래?

와, 네 말 들으면 달아나던 희망도 돌아올 거 같아. 기운이 난다.


그런데 그걸 왜 물어?      

코로나 때문에 어디 돌아다니기도 겁나니까, 한 번 물어본 거야. 이참에 직장 사표 내고 자연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해. 하지만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내 성격상, 자연 속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는 해. 모안이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땅에 먹을거리 심고, 강아지와 손뼉 치며 놀고, 싱글벙글하며 나무, 새들과 장난도 치면서 잘 놀 거야.


네 말이 맞아. 나는 혼자서도 잘 놀기는 해. 그게 자연 속이라면 더 좋지. 지금이라도 자연으로 돌아갈 곳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가고 싶어. 하지만 갈 데가 없잖아.      


모안아, 사계절을 벗 삼아 즐기는 삶은 그 어떤 것도 짐스럽지 않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어. 이 사람은 자연에 파묻혀 혼자 살면서 외로움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고독감 때문에 조금이라도 위축된 적이 없었다고 했어. 혼자 보내는 시간이 심신에 좋다고 생각했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같이 있으면 곧 싫증이 나고 주의가 산만해진다는 거지.

연산아, 그거 월든 호수가 통나무집, 소로우 아저씨 얘기지?

맞아.


나는 소로우 아저씨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 알 거 같아.

나는 그렇게는 못 살 거 같은데, 혼자서도 행복을 얼마든지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가 봐. 너도 그렇고 말이야.

연산아, 꼭 사람을 만나야 행복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 전에도 말했지만, 혼자서도 행복한 시간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어, 너도 얼마든지 가능해. 코로나 시대에는 더더욱 필요하지.

정말 그럴까?     


그럼. 그건 그렇고... 연산아, 우리 지금 연애하는 건 아닌데 행복하잖아. 서너 시간 하루가 멀다고 통화하고. 이런 사이가 어디 있니.

그러게. 남자끼리는 10분 넘게 통화하는 게 정말 힘들어.

그렇지? 나도 가장 좋아하는 언니랑 통화해도 한 시간 이상 통화 잘 못 해. 이렇게 몇 시간 통화하는 건 연인들이랑 하는 건데, 우리는 참 뭔 사이인지.      

모안의 말에, 나는 며칠 고민했던 얘기를 어렵게 꺼냈다.


모안아, 그럼 이제부터 우리, 남자와 여자로 만나보는 건 어때?

모안은 시간을 달라는 말도 없이, 그래 그럼, 그랬다. 언제나 결정의 순간에 망설임 없이 참 빨라서 좋았다. 하지만 불길하다. 이렇게 결정이 빠를 때는 무언가 조건이 붙게 마련이다. 역시 내 예상은 맞았다.

조건이 있어.

그러면서 모안은 얘기했다.

온택트 사랑이라면 좋아.

그게 무슨 말이야?

온택트로 만나면 연인, 콘택트로 만나면 친구 사이로 돌아가는 거야. 어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조건이었다. 모안의 제안이, 사귀자는 건지, 사귀지 말자는 건지, 처음에는 종잡을 수 없었다. 통신상으로는 연인이지만, 대면으로 만났을 때는 친구 사이로 돌아간다는 말이었다. 친구 이상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거절의 표현을 이렇게 한 건가라는 생각에, 모안에게 물었다.


모안아,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니?

무슨 소리를, 너는 매력이 넘쳐. 연산아, 온택트로는 사랑을 못 한다고 생각해? 함께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술도 마시고, 산책도 하고, 영화도 보고, 다 할 수 있어.

그게... 아니라, 알았어. 온택트 사랑     


나는 기운이 반은 빠져 대답했다. 모안의 생각도 존중해줘야 한다. 모안은 온택트로도 얼마든지 연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정신적인 사랑만으로도 남녀 간의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일까. 모안의 의중이 정확히 무엇이든 간에, 나는 절반의 기대에 만족해야 했다.


연산아, 오늘 저녁때, 운동 갔다가 오면서 찍은 사진이야. 카톡으로 보내줄 테니까 통화하면서 봐. 나는 카톡을 열고 모안이 보내온 사진을 보았다. 벚꽃이 만발한 거리 모습이었다. 모안이 얘기했다.      

사람들은 벚꽃의 자태에 취해. 이것이 벚꽃에 반할 수밖에 없는 이유야. 나는 분홍장미도 좋아하고 가을 소국도 좋아해. 어느 꽃이 안 예쁜 꽃이 있을까?

맞아. 꽃은 꽃이라서 예쁘잖아. 우리나라 꽃이든 일본 꽃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슬픈 건 오늘 내린 비로 다 떨어져 버려 안타까울 뿐이야. 어쩌나.

역시, 감수성 풍부한 연산이야. 이렇게 너는 내 얘기를 잘 들어주잖아. 너의 장점 중의 장점이야. 그리고 너와 나는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그것뿐인가. 너는 나에게 사소한 것도 잘 챙겨주고, 책도 좋아하고, 전복도 좋아하잖아.


그러면서 모안은 나의 장점을 열 가지 이상 10여 분 동안 얘기했다. 장점을 얘기할 때마다 사례까지 들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모안이 잠시 숨을 돌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연산아, 너는 그런 것도 있는 거 알아? 거절도 잘 못 하는 장점이 있어. 그런데 말이야, 지금 나, 너에게 정식으로 프러포즈하는 거야. 받아줄 거지?      


온택트로 한정된 거지만, 연인 사이가 되기로 약속한 오늘, 모안은 나에게 프러포즈라는 행복을 안겨주었다. 이것 또한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내가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모안의 얘기가 계속됐다.     

있잖아, 우리는 이제부터 돌탑을 하나하나 쌓아갈 거야. 그런데 돌탑을 왜 쌓을까? 너와 내가 오래 만나기 위해서야. 평생 가기 위해서야. 알겠어?


모안이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런 거였다. 모안의 프러포즈는 남녀 간의 프러포즈가 아니었다. 사랑한다는 달콤한 표현보다, 결혼하자는 직접적인 청혼보다, 평생 보자는 말이 모안의 프러포즈였다. 평생 친구 하자는 말이었다. 세상에 이런 프러포즈가 어디 있단 말인가!


연산아, 남자, 여자 상관없이, 연애 감정은 언제나 사랑이 넘치는 쪽이 먼저 움직이게 되어 있어. 이 사랑을 한쪽이 받아주면 그다음부터 운명 같은 러브스토리가 시작되는 거지. 우리도 그렇게 하는 거야. 사랑은 불필요한 곳에 집중을 멈추게 해. 사랑하는 대상에 더 집중하게 만들어. 내가 지금 이래라고 언제든지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나를 보듯 너를 보고, 너를 보듯 나를 보고, 네가 있기에 내가 살아지고, 내가 있기에 네가 살아지는, 이것이 더불어 사는 삶이란 행복도 여과 없이 느끼지. 나는 너와 함께 이런 걸 온택트로 느꼈으면 좋겠어. 꼭 만나서만 사랑을 나누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손잡고, 스킨 쉽 하고, 관계하고, 너와는 그런 거 없이 할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싶어.      


나는 모안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었다. 모안은 나에게 감동을 주면서도, 무조건 온택트 사랑을 선택하게 했다. 어쩌면 잔인할 수 있지만, 대단한 재주였다. 이후 우리의 온택트 사랑은 시작됐다. 어떤 방식의 사랑이든, 사랑을 하면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상태가 된다. 나도 조금씩 그렇게 되어가는 듯했다.     

 

모안과 통화하면서, 모안에게 우리 모안, 그러면 모안은 너의 모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안은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너의 모안이야. 그럼으로써 너는 혼자가 아니야. 모안이 있는 거야. 네가 안정적으로 되는 거고. 네가 안정감 있게 너의 모안이 항상 있는 거야. 작가의 경우, 굴곡이 있는 사람이 글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안정감 있는 사람이 글을 잘 쓰는 거 알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안정감이 중요해. 글 쓰는 사람이 안정감이 없으면 전달이 잘 안 돼. 안정감이 고갈되면 읽는 사람이 공감하지 못해. 마음이 조급해서 이 생각, 저 생각 삽입해서 멋지게 꾸미려고만 하니, 사람들 마음에 그게 와닿겠느냐고.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서 자기 세계에만 빠지면 좋은 작품이 나오기 힘들어. 자기 세계도 중요하지만 편안함과 안정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글도 잘 쓰는 거야. 사랑도 있잖아, 정신적으로 안정돼야 사랑도 편안한 사랑을 해. 그런 걸 내가 너에게 해주고 싶어. 나도 그런 존재를 찾는 거고.     


나와 모안은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척하면 척인 사이가 될 수 있었다. 통화하면서도, 모안이 나에게, 받으시오 하면 나는 바로, 따르시오라며 술을 받았다. 내가 농담으로, 술을 들래? 수청을 들래?라고 말하면 모안은 술도 들고, 수청도 들겠나이다.라고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모안과의 온택드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온전히 채워지지 않는 이 기분은 무엇이란 말인가. 솔직히 반쪽사랑도 함께 채워져 완전한 사랑을 나는 원하고 있었다. 모안과 통화하면서, 내 마음을 솔직하게 다시 한번 말하고자 했다. 내가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모안이 말했다.


연산아, 나도 열정을 쏟고 싶어서 누군가를 만나고 싶을 때가 있어. 아는 사람이 남자를 소개해 줬어. 만나 보라고 말이지. 코로나 시대에 사람 만나는 게 버겁기는 해. 그래서 지금 고민 중이야. 그 사람이 산을 무척 좋아한대. 그런데 나는 자연은 좋아하지만, 높은 산, 이렇게 등산하는 건 안 좋아하잖아.


모안의 말에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는 것일까. 서운하기도 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모안아, 네가 만나고 싶은 남자가 나면 안 되는 거니?

모안에게서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연산아, 솔직하게 얘기할게. 너는 내 친구이지만 애인은 아니야. 앞으로도 애인은 될 수 없어. 사랑하는 친구는 될 수 있어. 연산이와 나는 친구 이상, 연인 미만, 그런 사이야. 특별한 친구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미안해. 네 마음을 받아주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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