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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J Sep 16. 2018

보스턴 가는 길

<보스턴 여행일상> 프롤로그

지구본을 돌려 반대편을 보면 미 대륙이 나오는데, 그곳의 동북부에 있는 도시 보스턴은 전세계의 공부 잘하는 '똘똘한' 아이들이 모인다는 도시다. 지구 반바퀴를 돌아가는 곳인데다가 직항 마저 없으니 더 멀게만 느껴지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동생이 그곳에서 산지도 10년이 넘었다. 동생은 여기 보스턴에서 학위를 받고 취직도 했고, 여자친구를 만나고 결혼을 해 재작년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까지 얻었다. 나에게는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하나밖에 없는 조카라 한때는 늘 카톡 프사며 컴퓨터 바탕화면으로는 그 녀석으로 도배가 되어있었어서 오해도 많이 받았다.

나도 그런데 ‘하나뿐인’ 손주를 항상 그리워하고 보고싶어하는 엄마를 위해 동생 부부는 거의 매일 그녀석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가족단톡방에 올려주는데 하루하루 그 녀석이 크는 모습을 보는 것이 하루를 마감하는 낙이기도 했다. 이번 9월에는 못 만난 1년여 만에 또 부쩍 큰 그 녀석을 만나러 보스턴 여행이 계획되어 있다. 

이런 보스턴이 나에게는 동생 가족이 살고 있는 곳으로 늘 따뜻하게만 느껴지는 곳이다. 


4시간 KTX, 고양-창원(김해)

나는 고양시에, 엄마는 창원에 계신다. 그래서 보스턴을 갈때면 출발 날짜를 다르게 해서 인천, 김해에서 따로 출발하기고 하고, 또 엄마와 함께 갈 때는 거의 김해-나리타-보스턴 노선을 이용하는 편이다. 인천에서 출발하면 주로 미국 항공사를 이용해 미국의 어느 도시를 경유하게 되는데, 사실 미국 항공사 보다는 김해에서 출발하는 JAL이 나리타 경유라는 사실은 물론, 음식이나 여러 서비스도 더 좋았다.

이번에는 출발하는 날짜가 엄마와 같아 아무래도 김해공항이 지척인 엄마를 배려해서라도 내가 내려가는게 나을 듯 싶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것들(물론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이런저런 식료품까지 포함된)로 가득 차 있는 24인치 캐리어와 노트북과 카메라까지 이고지고 가는 일은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가까운 행신역이 아주 가깝다는 사실 정도랄까. 하지만 직행이 하루에 1편 뿐인 관계로 동대구에서 기차를 갈아타는 일은 여행 시작전부터 지치기 딱 좋았다. 

그렇게 4시간을 기차를 타고 도착한 창원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역에 마중나온 엄마가 갈비를 사줬다. 긴 기차여행의 피로가 싹 날아갔다. 


김해국제공항

꽤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는 도로를 달려 도착한 김해국제공항. 

나리타로 향하는 JAL 항공기의 수속을 마치고, 미리 환전을 예약해둔 달러까지 찾고 비록 양손은 무겁지만 마음은 가볍게 출국장까지 들어갔다. 엄마는 숄더백 하나에 좀 큼지막한 보스턴백 하나, 나는 노트북이 들어있는 백팩과 작은 크로스백, 그리고 조카에게 줄 <로보카 폴리 열리는 구조본부> 박스를 들었다. 기내에 들고 들어가는 짐들이 엑스레이를 통과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뿔싸. 제일 마지막에 아무데나 구겨넣은 120g 짜리 해어에센스가 문제였다. 왠만하면 그냥 버려도 되겠지만, 이건 바로 얼마 전 일본에서 꽤 비싸게 주고 사 아직 채 10번도 안썼다는 사실에 갈등했다. 엄마는 이미 들어가버렸고, 어찌할까 하던 나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다시 공항으로 나가 약국에서 100ml짜리 병을 사서 쭉쭉 짜서 옮기고 다시 돌아와 짐검사를 받았다. 

그렇게 그 짐들을 이고지고들고 뛰어다니다가 면세구역 한쪽에 앉아있는 엄마를 만났는데 이미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왜 이렇게 오래걸렸냐며 묻는 엄마에게 헤어젤 이야기를 했더니 한심하다는 듯 끌끌끌 혀를 차신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게 여행을 좀 다녔다면서 그걸 확인 못했다니, 참 한심했다.

그런데, 정신을 좀 차리고 김해국제공항 안을 훑었다. 

정말 여기가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의 국제공항이라니. 공항 규모는 물론이고 시설까지 좀 실망스러웠다. 이렇다 보니 부산의 신공항 논란이 괜히 생긴건 아닐텐데, 빨리 좋은 결과를 도출해 하루빨리 멋진 부산의 공항을 보고 싶다.       

김해국제공항 ©yoonji.0421김해-나리타 노선에 나온 기내식. 아직 환한 대낮인데 이렇게 와인을 마셔도 될까? ©yoonji.0421

2시간 5분 이코노미, 김해-나리타

비오는 김해공항을 떠나 나리타로 출발했다. 좌석은 이코노미였는데 다행히 비상구 자리를 받았다. 점심시간이 애매하게 지나간 시간인지라 배가 고팠다. 간단한 치킨계란덮밥과 샐러드, 케익 등이 함께 나왔다. 늘 생각하지만 기내식은 언제나 사랑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김해-나리타 노선에 나온 기내식. 아직 환한 대낮인데 이렇게 와인을 마셔도 될까? ©yoonji.0421

기내식을 먹고 새삼 비행기 안을 둘러보니 90%가 일본인들 이었다. 사실 요즘 저가항공사들이 많이 생기면서 가격도 낮아져 ㅈ에어, ㅌ웨이, ㅇ스타, ㅈㅈ항공 등을 타면 90%가 한국인인 사실에 비하면 꽤 생소했다. 영화 <그것>을 볼까, 한글 자막이나 한국어 더빙이 없는 데드풀2를 볼까 하다가 2시간 내내 엄마와 수다를 떨다보니 나리타 도착이다.

나리타에 도착해 환승 수속을 하고 2터미널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아키하바라 면세점을 들렀는데 사고 싶은건 많았지만, 계산을 하기위해 샵 바깥까지 이어진 긴 줄을 보고 지레 포기했다. pp카드도 있으니 라운지나 갈까 했는데 환승대기시간이 짧기도 해서 그냥 아이쇼핑 하는 걸로 만족. 63번 게이트에 도착해 잠시 기다리니 탑승이다. 이제 13시간을 가야한다.      

사려는 사람, 계산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아키하바라 면세점, 보스턴으로 출발하는 비행기 게이트 입구©yoonji.0421
이제 출발이다! ©yoonji.0421

12시간 50분 프리미엄 이코노미, 나리타-로건 인터내셔널

사실 장거리 비행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특히 가장 많은 인원이 탑승하는 이코노미라면 그렇다. 나도 그간 여행을 다니며, 길어봐야 열시간 남짓인 비행기는 무조건 싼걸 타자는 주의였는지라, 내 돈을 주고 이코노미 이상을 탄 적이 없다. 항공사의 호의(?)로 업그레이드를 받아 비즈니스를 탔던 적은 몇 번 있는데 그래봐야 4시간 남짓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번에 동경 나리타에서 출발해 보스턴 로건 인터내셔널 까지 가는 동안에는 프리미엄 이코노미를 타게 되었다. 프리미엄 이코노미는 좌석 넓이, 앞좌석과의 거리, 기내식까지 일반 이코노미와 차별화 시킨 좌석이다. 이번에 우리가 탄 항공기는 일반 이코노미는 2-4-2구조였다면 프리미엄 이코노미는 2-3-2로 물론 비즈니스 이상 좌석 등급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지만 한결 넓고 편안했다. 더구나 우리 옆으로 사람이 없으니 맘껏 화장실을 가는 것도 좋았다.

JAL 008편의 프리미엄 이코노미 ©yoonji.0421


비행기가 이륙을 하고 잠시 후 핫 타올이 서비스 되고 음료수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메뉴판을 죽 훑었는데 ‘JAL premium’이라고 쓰여진 메뉴가 눈에 띄었다. 단연 내 선택은 이 메뉴들부터 맛보기다. 가장 먼저 주문한 Japanese sochu. 내 기대가 너무 컸나. 말하자면... 일본 소주인데 정말 ‘소주’일 뿐. 뭔가 부드러운 맛이 날거라는 기대는 그냥 내 기대였을뿐. 생각보다 독해서 샴페인(이 역시 JAL premium) 으로 다시 주문했다.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그리고 역시 엄마에게 주문해준 JAL premium 스파클링 미네랄 워터가 별로라 하셔서 JAL 오리지날 ‘스카이 타임 키위’로 다시 주문해주었다. 

장거리 비행기를 타면 간혹 이렇게 메뉴판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아주 좋은  것 같다. 사실 몇시간 보고 버리는 쓰레기라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승무원들 입장에서도 일일이 메뉴를 설명하는 대신 이런 메뉴판이 편하기는 할것 같다.     


JAL 프리미엄 이코노미의 메뉴판과 Baked 'FU' Gluten & chicken rice bowl ©yoonji.0421JAL 프리미엄 'Japanese SOCHU이코노미의 메뉴판과 알래스카 상공을 나르고 있다는 비행노선 안내 ©yoonji.0421
JAL 프리미엄 'Japanese SOCHU이코노미의 메뉴판과 알래스카 상공을 나르고 있다는 비행노선 안내 ©yoonji.0421

몇시간쯤 지나고 기내식으로 나온 저녁식사까지 먹고 나니 한국시간으로 10시가 넘었다. 어느새 비행기 안은 불을 다 끄고 밤이 되었다. 여기저기 곤히 잠든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잠을 자지 말아볼까 생각했다. 어차피 보스턴에 도착하면 또 저녁(한국은 새벽)인데 시차 적응을 빨리 하기 위해서는 안자고 보스턴 타임에 맞추는게 훨씬 낫긴 했다.

노트북을 꺼내고 한국에서 미리 저장해 온 드라마 ‘도깨비’를 틀었다. 이번에 잠시 여행으로 다녀오게 될 퀘벡을 프리뷰해보자는 생각이었다. 1편, 2편, 3편까지 보며 푹 빠져있는데 배터리가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뜬다.

아쉽지만 노트북을 덮고 앞좌석에 붙은 모니터를 켰다. BBC와 NHK 뉴스를 (그림만) 보고, 영화로 옮겨왔다. <어드리프트>를 보고, <그것>을 보고 했는데도 아직 3시간이 넘게 남았다. 한국은 새벽 3시쯤 된 시간. 나도 어쩔 수 없이 눈꺼플이 슬슬 감기는데 좀 있으니 기내식 시간이다. 보스턴은 저녁으로 향해가지만 몸은 새벽일 승객들을 위한 배려일까. 요시노야의 덮밥이 서브되었다.

아침식사로 서브된 에그소스와 비프 볼 메뉴의 요시노야 기내식 ©yoonji.0421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하다보니 어깨는 물론 허리와 다리까지 뻐근한건 프리미엄 이코노미라도 어쩔 수 없었나보다. 모니터에서 ‘기내체조’를 선택해 보며 잠시 몸을 풀었다. 어느새 맑은 하늘 아래로 보스턴이 보인다. 저녁 6시에 비행기를 탔는데 또다시 저녁 6시다. 내 가슴은 콩닥거렸다. 일년이 넘는 시간 만에 동생과 올케를 만나고 조카를 만나게 될 생각에서다. 내 손에 들린 <로보카 폴리 구조본부>를 보고 좋아할 조카 생각에 더욱 흐믓해졌다.


웰컴 투 보스턴 이 말이 참 정겹다. ©yoonji.0421

보스턴에서 여행 일상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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