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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J Sep 27. 2018

아침산책 #1

평소에는 잘 하지 않지만, 여행을 오면 꼭 하는 일이 있으니 바로 '산책'이다. 

그 중에서도 아침일찍 일어나 한바퀴 돌아보는 산책을 거의 빼먹지 않고 하는편인데, 특히 시차가 있는 여행지라면 더더구나 눈이 일찍 띄여서 제대로 된 아침 풍경을 즐기기에 아주 제격이다.

내가 여행지에서 아침산책을 즐기는 이유는 사람들이 모두 눈을 떠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간이나 밤과는 전혀 다른 그곳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건 내가 여행지에서 이어폰을 왠만해서는 끼지 않는 이유와 비슷한데,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 보다 그곳 사람들의 말소리, 차소리, 바람소리를 듣는게 더 좋기 때문이다.  

이 곳 보스턴과 한국은 하루가 정 반대다. 한국이 오후 3시면 보스턴은 새벽 2시다. 아침일찍 눈이 떠진 아침에는 산책을 나가기 더 좋았다.


아, 그런데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사실 일상적으로 보스턴이라고 부르는 도시는 보스턴의 메인 도심과 그 주변 도시인 캠브리지, 뉴튼, 서머빌 등의 도시들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보스턴하면 생각나는 하버드대학교는 캠브리지에 있다. 마치 우리나라 서울과 성남, 수원, 고양 등의 도시들을 통칭해서 (특히 외국사람들이) 서울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고 할까. 

이 도시들은 지하철도 연결되어 있고 공항을 비롯해 각종 사회 인프라와 경제, 사회적 기반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보스턴 사람들은 보스턴 시내에 있는 직장을 다니면서 외곽 도시에 집을 마련해 사는 경우가 많다. 뉴욕 다음으로 비싼 보스턴 시내의 비싸고 좁은 집 대신 삶의 질을 선택하는 것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내가 머물고 있는 동생 집은 뉴튼에 있다. 뉴튼 지역은 지하철로 몇개만 가면 보스턴 시내에 닿을 수 있는 보스턴 생활권이지만 아기자기한 하우스들이 널찍한 잔디밭 위에 지어져 있어 살아가는 환경은 최고로 꼽히는 지역이다. (여기에는 수준높은 교육환경도 한 몫 한다 한다.)

그런 동네의 아침 풍경은 어떨까?




정말 죽을듯이 더웠던 여름을 보내고 갑자기 선선해진 한국의 가을이 시작되자마자 이곳으로 왔는데, 여기에도 가을이 시작되고 있는 걸까. 낮과는 한결 다른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느릿느릿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밤에는 풀벌레 소리가 가득하더니 아침이 되니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맑다. 집집마다 꾸며놓은 정원은 아기자기하고 키 큰 나무들과 뾰족뽀족 지붕들이 예쁜 동네다.

이렇게 걸어가는 동안 만나는 사람도, 지나가는 차도 손에 꼽을 정도인데, 직장으로 향하는 아빠와 함께 학교로 가는 아이들이 차를 타고 나오는 모습이 어쩌다 보이는게 전부다. 

그리고 갑자기 툭툭 나무에서 무언가 떨어져서 쳐다보면 어느 집 앞에 있는 나무든 쪼로록 돌아다니는 청설모까지 쉽게 만날 수 있다. 어느날은 칠면조 가족도 간혹 보인다고 하니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또 아파트로 이사갈 예정인 나는 참 만나기 어려운 아침풍경이었다.

그렇게 동네 한바퀴를 돌며 하늘을 쳐다봤다.

조금만 더 있으면 노랗고 빨간색깔로 갈아입을 나무들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느린 걸음으로 타마락로드에서 출발해 화이트 파인 로드, 라운드 우드까지 걸어왔다. 그 사이 해가 조금 더 올라왔다. 가을이 더 깊어지면 더 예뻐질테고, 내년 봄에는 어느집에서든 갖가지 꽃이 활짝 핀다는데 좀 더 오래, 느긋하게 맞이하고 싶은 아침 풍경이었다. 이 동네가 조금 더 사랑스러워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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