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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J Sep 21. 2018

가끔은 그 맛이 그립다

누구에게나 그런 날은 있다


외국에서 여행을 다니다 보면 두 부류의 사람을 만난다. 입맛에 맞을지 안맞을지, 어떤 식감과 맛일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 지역의 음식을 도전하는 사람과, 그런 음식들에 도전하기 보다는 고추장과 김이라도 싸가는 사람들이다.
이건 어떤게 옳거나 맞다고 할 수 없는 일일텐데, 생각해보면 나는 전자에 속한다.

뉴욕에서 한달살기 하던 때에는, 신기하게도 정말 한국음식이 생각 안났다. 그땐 숙박비를 절약하겠다고 한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에 묵었는데 함께 쉐어하던 친구들이 밤에 멸치를 볶고 떡볶이를 만들어먹을때 나는 그 냄새가 너무 싫었다. 한달 내내 김치를 안먹었어도 그 한달의 뉴욕살이가 마냥 즐거웠다. 내가 살던 아파트 바로 앞에 있던 마켓에서 사 둔 skim milk와 시리얼로 아침을 떼우고, 점심으로는 1달러짜리 피자를 사 먹었다. 그래도 그 길을 걷는 내내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곰곰히 생각해보니 딱 한번 김치찌개 같은 것들이 심하게 땡기던 날이 있었다.

예전에 말레이시아 여행을 하며 쿠알라룸푸르에 꽤 오래 머물렀는데 그날은 아침부터 몸이 으슬으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현지에서 만난 친구와 점심약속도 취소해야 할 정도로 컨디션이 안좋아서 침대에 몸져 누워 있었는데 그땐 정말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빨갛게 바글바글 끓인 김치찌개 생각이 간절했다.

이곳에서 감기몸살로 죽더라도 먹고 죽자 싶어 겨우 몸을 일으켜 십여분 걸어 패트로나스 트윈타워에 있는 수리아 KLCC의 푸드코트에 갔다. 그곳에는 전세계 메뉴는 다 모여 있었고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한국 메뉴를 파는 곳이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김치찌개에 대한 욕구는 사라졌다. 그리고 김치찌개 대신 그 옆 타이음식점에서 똠양꿍과 밥을 주문해 훌훌 들이마시듯이 먹어버렸다. 정말  머리 속이 뜨끈뜨끈 해질 정도로 너무너무 매웠는데 맛있게 한그릇 뚝딱 먹어치웠고 몸살도 곧 떨어졌던 것 같다.  


보스턴은 날이 흐렸다. 희한하게 짭쪼롬한 장아찌 반찬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밥이 생각났다.

마침 조카가 유난히 좋아한다는 물김치가 똑 떨어졌다고 해 오랜만에 한국마트에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기도 해서 이곳에 함께 있는 푸드코트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다양한 한식은 물론이고 일식과 중식까지. 가격만 보면 전혀 싸지 않은데 사람들이 바글바글이다. 그런데 참 희한한건, 외국인 중에 중국사람들이 월등히 많았다는 것. 패키지 관광객들이 일부러 여기까지 와서 식사를 할 리는 없을 것이고, 요즘 보스턴에 중국사람들이 많이 들어와다더니 진짜 그런가보다.

비빔밥과 우동, 김밥으로 식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장보기를 시작했다.

반가운 빵집도 보이고, 과일도 보이는데, 정말 이렇게만 보면 한국 마트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식재료들이 많다.

이런것 까지 있나 싶게 만두며 과자, 두부 같은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한국 무와 배추까지 들어와 있다. 김치는 또 어떻고. 물김치에서 백김치, 묵은지까지 깔끔하게 포장된 김치들까지 진열장에서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보스턴에 사는 많은 교포들이 이 곳 미국 음식 문화에 적응하며 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내 동생네 처럼 평범한 한국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쌀밥에 된장국으로 저녁식사를 할 것이다. 그래서 조금 비싸도 기꺼이 이 곳까지 와서 장을 보는 것일테고.


배추와 열무, 무도 사고 조카의 밥도둑 고등어도 샀다. 그리고 엄마가 매콤 낙지볶음도 해주겠다며 낙지도 샀다. 그렇게 카트 한가득 싣고 나니 마음까지 풍요로워 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상에는 이렇게 찌부드드한 날씨와 어울리는 콩나물국이 올라왔다. 그저 콩나물국에 김과 김치 반찬 만으로도 우리 식구들은 다들 한그릇씩 밥을 뚝딱 비웠다. 아직까지는 가리는 음식이 많은 조카도 콩나물 국에 밥을 말아주니 그 작은 손으로 떠서 꼭꼭 씹어먹었다.
곧 한국으로 돌아가면 또 질리도록 먹을 한국음식 먹어도 괜찮냐고?

나는 여행자니까, 괜찮다. 내일 또 어디론가 나가서 이 곳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먹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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