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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운명과 숙명 사이, 너를 쓴다는 것은

엄마가 되었다는 것


엄마가 되었다.



9년 전.

이제 막 차가워지는 공기를 머금기 시작한 

9월의 바람이 

부드럽게 뺨에 와닿던 날이었다.



너와 만나기로 예정된 날이 이르기까지 

아직 2주나 남아있던 날 새벽.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기엔 

아직 준비가 완벽히 끝나않은 집을 뒤로 하고 


앞으로 13시간이 넘게 겪어야 할 고통을 마주하기 위한 걸음을 내딛었다.  





세상의 어떤 기다림이 이렇게 아픈 실체로 감각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옆에 있는 사람의 머리채를 잡아 당기며 

온 몸으로 소리를 질렀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나는 1분 1초 그 사이마다 

내 아랫배를 숨 쉴 수 없이 조여오는 것도 같고  

골반을 부숴대는 것도 같은 아픔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한 치의 소리가 새어나가기라도 하면

그 아픔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되어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에.



긴 복도의 끝과 끝을 

어그적 어그적 무거은 걸음을 내딛어 걸으며

 

다시 입 안으로, 안으로. 

안으로 머금고, 반복해서 머금기를 반복하는 것이 

그 시간을 살아낼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움틀거리며 세상과 만날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던 너를 

그렇게 맞이하러 갔던 날, 


나는 도대체 말로는 설명할 길이 없는, 

사정없이 몸을 후벼파는 아픔의 13시간 순간 순간을 꼭꼭 밟으며 지나. 




엄마라는 것이 되었다. 



처음 비추는 세상의 빛을 만나 

두려운 것인지, 반가운 것인지 알 수 없는 

우렁 우렁한 너의 울음을 품에 안고. 



나는 너의 엄마가 되었다. 


운명처럼.








작가가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숙명과 같은 일이었다.



내 안에 떠다니는 삶의 수많은 잔상들과 

그것에 덧씌워진 언어들을, 

쉽게 안으로 삭힐 수 없다는 것을 

내 스스로가 알고 있었다.  



다만 길을 잃었었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하는 사람인지 

무슨 파편들을 어떻게 주워 담아 이어야할지 알못한 채.



네가 어여쁜 아홉살 아이로 자라온 꽤 오랜 시간,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좇아 헤매이고 있었다. 





네가 내 옆에서 조용히 잠든 

어느 늦은 밤이었을까.


아니면 등굣길에 작은 발걸음을 옮기던

 너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아침이었을까.



내 안의 글은, 너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걸 

문득 깨닫게 된 순간이.



나는 '나'라는 사람을 완성시켜주고 있는 

너와의 이야기, 우리의 운명같은 이야기를 해야하는 사람이었다. 




나를 벗기고 벗기고 벗기고 나니

'엄마'인 내가 서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안에 너를 품은 나를,

만나게 되었으니까. 






운명처럼.

다가온 너, 


숙명인 

나의 글. 




너와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다는 것은.


나에겐 운명이자 숙명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운명과 숙명 사이, 

그 여정을 시작한다. 


                 





@말랑맘의 감성 육아 아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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