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모양

by 하날빛

서툰 어른인 채, 엄마가 되었다.


아직 완전히 빚어지지 않은

불완전함을 가지고 엄마로 산다는 것은,

그래서 기쁨이기도 하고

그래서 아픔이기도 한 일이다.


성장할 수 있는 여백이 있다는 것,

온전한 나를 찾아가는 기회가 있다는 것,

성숙함의 의미가 삶에 스며든다는 것.


엄마가 된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아무런 형태가 없었던 나는,

매일 아이와 함께

'엄마'라는 존재로 빚어져간다.


모두가 다른 모양으로,

그러나 '엄마'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우리는 매일마다 빚어져가고 있다.


그러니 매일의 나는,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엄마의 형태를 갖춰가는지에 대한 모든 흔적이리라.


사랑을 배워가는 나

서툴 뿐 아니라 실수하는 나

따뜻하고 정겨운 나

또 한편으론 매몰차고 이기적인 나

반성하고 또 나아가는 나


모든 것이 엄마로서의

내 작은 조각들이다.


매일 하나하나가 모여

나라는 엄마의 '모양'으로 매만져진다.


그 누구와도 같을 수 없는,

나와 내 아이와의 관계 속에서만이

다듬질될 수 있는,

나의 모양.


엄마라는, 모양.



십 년.

엄마라는 게 된 지, 꼬박 열 해.


아이가 열 살이 된 지금에서야, 나는 제법 엄마 노릇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 자신에게조차도 서툴렀던 때,

엄마가 될 수 있는 조건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던 때.


하얗고 보드라운 살갗으로 덮여진, 사람이라고 하기엔 팔 한 마디도 채 되지 않아 한 번을 안아도 부서질까 매 순간이 조심스러웠던, 그러나 너무나도 찬란하고 영롱하게 내 품 안에서 빛나기만 하고 있던 작은 생명을 만났다.


내 뱃속에서 자란 것이 실감조차나지 않았던 매일, 그래서 내 눈 앞에서 어설픈 몸짓으로 움직이는 이 생명체를 향해 그저 신기한 눈빛을 보내보고는 했었다.


이제는 내 키의 반을 이미도 훌쩍 넘어버린 아이에게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가끔 이러한 신비스러움을 느끼고는 한다.


한 생명의 '전부'가 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다.


여전히 때가 묻지 않아 티 없이 맑은, 고귀할 정도의 해맑은 아이의 웃음을 보고 있자면.

내 무르팍에 머리를 눕힌 채 나뭇잎 하나 겨우 팔랑거릴 수 있을만한 작은 콧소리를 내며 세상에는 아무런 해악도, 근심거리도 없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 존재가 나에게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나는 여전히. 해봐도 해봐도 행복해지는 의문을 품고는 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와는 별개로.

엄마로서 나는, 엄마라면 마땅히 아이를 향해 품게 되는 본능적인 사랑, '모성애'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어 온 시기가 있다. 스스로에게.


두 마음.

합쳐지지 못하고 두 개로 갈라진 마음이, 나에게 있었기 때문일까.


아마도.

만약 마음속에 저울이 있어서 아이에 대한 사랑과 나에 대한 사랑을 놓고 저울질할 수 있다면, '나' 쪽으로 무겁게 기울어 버린 순간이 거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리라.


아이보다, 나를 향해 있는 마음 추의 무게를 느낄 때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실제 나의 행동으로 발현이 될 때마다.


나는, 희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의 이 서툴고 모자라기만 한 '모성애'에 자책감을 갖고는 했던 것이다.



한창 일에 빠져 있던 때는, 모든 열정을 일에 쏟아붓고는 약간의 부스러기처럼 떨어져 나온 마음을 긁어모아 아이에게 쓰는 느낌이었다.


내 모든 시간을 나의 성취와 성공을 향해 들이붓고는, 그 틈에 새어 나온 자투리를 아이에게 건네는 느낌이었다.


'내가 정말 엄마인가'

'나에게 모성애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


엄마로서의 나에게 던져지는 질문 앞에 적절한 대답도 찾지 못하고 그저 괴로운 마음만 안은 채, 그렇게 지나온 꽤 오랜 시간.


나 자신으로서 불완전함을 채우기에도 버거웠던 시간에, '엄마'라는 이름은 어쩌면 '혼란'이라는 단어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세월은 많은 것을 변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세월이 남기는 것은, 조금씩 흐물해지는 피부와 패어짐이 보이기 시작하는 주름뿐이 아니었다.


불안정하게 흔들렸던 미래에 대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노련함, 섣부름보다 진중함으로 순간을 선택하는 약간의 지혜, 내 가정을 지키는 한 사람으로서 두터운 책임감까지.


열 해라는 시간은 무심히 흘러가 버리지만은 않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옅게나마 농익는 단단함으로 나를 채우며 지나가 주었음을, 다행히도.


무엇보다, 조금씩 조금씩.

아주 조금씩.

'엄마의 마음'이라는 것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며, 내 마음을 온통 채워가기 시작했던 것.


나는 어느새 아이를 향한 나의 사랑, '모성애'라는 것에 대해 일말의 의심도 갖지 않는 진짜 '엄마'라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굳이 마음속에서 저울질을 해보지 않아도, 아이에게 주는 나의 마음은 매 순간이 진심이며 그 어떤 것보다도 짙고 선명함을 나 스스로가 알고 있다.


부스러기 같았던, 아이를 향한 마음은 온전한 사랑의 형태를 갖추어 가고 있음을.

쪼개어진 자투리 같았던, 아이와의 시간은 나의 것을 모두 버려서라도 채워주고 싶은 가장 소중한 것이 되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엄마로 살아가는 나'가 얼마나 큰 행복인지, 얼마나 나를 온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지, 그 역시도.



성장할 수 있는 여백이 있다는 것

온전한 나를 찾아가는 기회가 있다는 것

성숙함의 진정한 의미가 삶에 스며든다는 것


엄마가 된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아무런 형태가 없었던 나는, 매일 아이와 함께 '엄마'라는 존재로 빚어져간다.

매일의 나는,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엄마로 만들어져 가는지에 대한 모든 흔적이리라.


사랑을 배워가는 나

서툴 뿐 아니라 실수하는 나

따뜻하고 정겨운 나

또 한편으론 매몰차고 이기적인 나

반성하고 또 나아가는 나


모든 것은, 엄마로서의 내 작은 조각들이다.


이렇게 매일 하나하나가 모여 나라는 엄마의 '모양'으로 매만져진다.


그 누구와도 같을 수 없는,

나와 내 아이와의 관계 속에서만이 다듬질될 수 있는, 엄마라는 나의 모양.



엄마는 아이와 함께, 매일마다 자란다.

엄마의 사랑도, 매일마다 자란다.


단 한순간도, 멈춤이 없이.

매일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