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품은, 토양

by 하날빛



엄마라는,

넓은 대지


아이라는,

씨앗 하나


그렇게 엄마는,

아이를 품고 있는 땅이었다지.



저마다의 결을 따라

그 계절

그 크기

그 빛깔로

꽃 피우고 열매 맺는, 씨앗.


나,

엄마라는 것은

그 고유한 씨앗이

그것대로

꽃을 피우고

열매 맺도록

품어주는 토양이었다.


때로는 따갑게 쏘아대는 햇빛이

때로는 몰아치듯 흔드는 바람이

때로는 거칠게 때리는 비가


있는 힘을 다해 땅을 뚫고 나온

작고 가녀린 새싹을

흔들어댈 때에도.


토양은 알고 있지.


뿌리가 깊을수록,

이 모두는

가장 아름답게 꽃 피우는

자양분이 된다는 걸.


그리고 토양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시시때때로 흔들릴 뿌리가

더 깊이깊이

내려가도록

따스이 품어주는 것뿐이란 것도.


토양은,

햇빛을 가릴 수도

바람을 막을 수도

빗방울을 멈출 수도 없지만


품음으로

생명을 틔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힘을 가진 존재임을.



흔들릴수록,

더 뻗어가도록.


더 깊어지도록.



열 달,

인고의 시간을

그리 안았던 것처럼.




"아기집이 보이는 것 같은데요.

확실치가 않아서, 일단 피검사 수치 확인해 봅시다."


그날은 우연스럽게 찾아왔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그 자리에서 바로 피를 뽑고 다음 날 결과를 알려 주겠다는 말을 듣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OO산부인과입니다.

임신호르몬 수치는 741입니다.

현재 임신상태이며

O월 O일 이후 내원 바랍니다]


이제는 아기티를 훌쩍 벗어버린, 우리 열 살 꼬마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검사를 해놓고도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결과를 받아 들고선.


그리고 뒤로 약 1주일 뒤.

나에게는 서른 평생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공포스러운 어지러움과 메슥거림이 시작된다.


앞으로, 장장 10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이어질 고통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우웁


난생처음이었다, 이런 경험은.


버스를 타면, 옆 좌석에 앉은 사람 옷 냄새의 분자들이 하나하나 분리되어 내 코 끝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냄새인가.

알 수 없는 여러 개의 분자들이 내 후각을 공격했다.


한 번은 김밥 냄새가 쓰나미처럼 밀려 들어오는데 밥, 당근, 시금치, 단무지, 고기 냄새가 하나하나가 날을 세우고 달려드는 것이었다.


모든 재료를 뭉쳐놓은 위엄답게, '짭조름한 고소~함'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퉁 칠 수 있었던 김밥 냄새는 그날 이후로 나에게 두 번 다시는 맡고 싶지 않은 6~7개의 역한 냄새의 집합물이 되어버렸다.


적어도 10개월간은.


그렇게 좋아했던 샴푸 향기도.

평소엔 맡아지지도 않았던 냉장고 냄새도.

지하철이고 도보고, 가는 곳마다 풍겨오는 특유의 냄새들은 가뜩이나 핑핑 도는 머리에 한 번 더 타격을 가하는 요인이었다.


그러니 무엇을 먹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후각과 미각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에, 맛의 70%는 냄새에서 온다.


냄새만 맡으면 속에서 침까지 올라오니, 무엇을 먹을 수 있었을까.

그래도 살겠다며 음식을 넣으면, 넣는 대로 족족 "우웁" 소리를 내며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내게 유일하게 맞는 양식은, 참크래커 한 봉지. 그것도 얼마 못 가 알새우칩.

그나마도 다행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갔다.

걷지도 못할 정도가 되어 침대에 붙은 채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거대한 멀미와 동행한 채로.




생명이라는 것은, 얼마나 강한 것인지.


몸은 비록 임산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파리하게 말라갔으나, 배에 품은 생명은 한 주 한 주 그 크기가 놀랍도록 커지고 있었다.

형태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형상도 갖춰가기 시작했다.


배가 커질수록 나에게 닥친, 시련과 같은 이 메슥거림과 어지럼은 '감사' '축복'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었다.


이것은, 신비 그 자체다.

신비가 아닌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오직 배 속에 자라고 있는, 작은 존재에 대한 생각뿐이었던 날들.


나는 괴로웠으나, 그러나 생명을 품은 나에게 '괴로움'이라고는 어느샌가 안중에도 없는 것이었다.


나는 매일 웃고 있었고, 잠시 찡그리다가도 내 배를 쓰다듬으며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 그러나 평소 크기의 2-3배는 족히 넘게 커진 배가 증명하는 이 살아있는 생명과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점점 더 커지는 배에 이 생명은, 노크를 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한 번, 두 번이더니 날이 갈수록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를 두드리는 것이었다.


태동.


그렇게 태동을 느끼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10개월 내내 지속되었던 입덧의 괴로움이, 생명을 품은 자의 기쁨에 완전히 밀려나게 되었다. 완전히.



40주를 향해가던 예정일 2주 전, 나의 꼬마 천사가 세상에 나왔고.


38주 내내 흔들리는 배 속에서 멀미를 하는 듯했던 그 빙빙 도는 세상은, 딸아이와 만나는 순간 신기할 정도로 완벽히 자취를 감췄다.


마법과 같이.




입덧은 나에게 두 번 다시 임신을 생각하고 싶지 않게 하는 고통스러운 기억이지만, 아이를 키우며 나는 그 10개월을 종종 생각하고는 한다.


아이에게 엄마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엔 더더욱 그 시간이 떠오른다.


엄마의 몸과 하나가 되어 배 속에 품고 있는 시간은 열 달 남짓이지만, 세상에 나온 아이는 분리되었으나 여전히 품어야 하는 존재임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내 살을 깎아내는 것과 같은 고통과 아픔을 지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꺼이 내 기쁨과 안락을 조금씩 비워내야 하는 일

나 자신의 밑바닥을 만나는 일

아이의 아픔을 함께 품어야 하는 일


엄마가 되어 아이를 품는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무거운 무게를 지고, 어려운 일들을 해내야 한다는 의미와 같았다.


그러나 아이에게 엄마는, 그 품음은, 아이의 세상 그 자체라는 것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고통스러운 입덧 속에서도 아이의 생명력은 날마다 더 향기롭게 피어올랐듯, 엄마의 품음은 아이에게는 세상을 살아갈 '생명의 힘'을 불어넣어 주는 일이었다.


아이가 만날, 결코 녹록지 않은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엄마는 토양이다.


햇빛을 대신해 줄 수도, 바람을 막아낼 수도 없지만, 그 모든 것을 견뎌내며 뿌리내릴 수 있도록 묵묵히 자리를 내어주는 땅.


때로 갈라져야 할 때가 있고, 고통을 품어야 할 때도 있으나 끝내 아이의 꽃이 피어날 가장 단단한 원일, 가장 위대한 힘.



오늘도, 이만큼이나 자란, 앞으로 내 키를 훌쩍 넘을 딸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엄마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일까.


아이를 품은 토양임을.

너의 꽃 피는 계절을 기다리며,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품어주는 너의 토양임을.


너의 토양임을, 내가 기억하길.




* [하날빛의 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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