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사실, 수영장을 안 좋아해

by 하날빛


엄마는 사실,

수영장을 안 좋아해



내가 가장 달가워하지 않는 장소가 있으니, 바로. 수영장을 비롯한 모든 물놀이를 하는 곳이다.


어렸을 때는, 한 번 수영장에 가면 다시는 물을 떠나기 싫을 만큼 좋아했던 곳이건만.

어른이 되고부터는 그 마음이 조금 달라진 것이다.


한차례 옷을 갈아입고 온몸을 축축하게 적시는 물에 들어갔다가, 또 나와서 물기 잔뜩 머금은 수영복을 한차례나 더! 어렵사리 갈아입고, 씻고 말리고 하는!

이 모든 절차가 번거롭게 다가온다는 게 첫 번째.


움푹 파인 풀 안에 가득 채워진 물.

첫 발을 넣는 순간 머리까지 쭈뼛 차오르는 차가움은,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는 견딜 수 없는 불쾌함이라는 게 두 번째.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시간은 얼마큼 지났나 시계를 보게 되는 지루함이 밀려온다는 게 세 번째.



이유를 대라면 열 가지도 넘게 술술 말할 수 있을 듯하지만 짧게 말하면, 귀찮고 춥고 별 흥미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다 자란 후에는 자발적으로 수영장이라는 곳에 가본 기억이 없다.

여름이면 가족과 함께 가는 수영장도 그저 가야 하니까 가는, 그 정도였을 뿐.


그것도, 물을 싫어하는 나를 알기에 대부분 딸아이와 놀아주는 것은 남편의 몫.


그렇게 수영장에서만큼은 가족의 배려를 받아왔던 나였다.




그런데 한 달 전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서 딸아이의 입에서 노래처럼 나온 단어가, '수영장'이라니.


수영장.


"OO아, 이번 방학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야?~"

"엄마, 나 이번 방학에는 엄마랑 수영장을 꼭 가고 싶어! 많이 가고 싶어!"


아뿔싸.

맙소사.

이런.


그러나 엄마가 어떤 존재이던가.

내 자식이 원하는 것이라면 하늘에 별도,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주고 싶은 것이 엄마 마음이 아니던가.


꽤나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추고 <엄마랑 가야 할 곳 리스트>에 가장 먼저 수영장을 넣었다.


그렇게 나는 딸아이는 알지 못할, 보이지 않는 그녀의 손에 '이 끌 리 어' 집 앞에 워터파크 한 번. 조금 더 큰 워터파크 한 번을 가게 되었다.


다소 귀찮은 절차들은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이기로 한다.


몸에 닿을 차가움도, 시간이 지나면 따뜻해진다며 스스로를 달래 보기로 한다.


지루함이 밀려온다면, 딸의 행복을 위해 그녀가 원 없다 느낄 만큼, 만족에 만족을 거듭할 때까지 그 하루만큼은 내 존재는 없다 한 다짐을 떠올려 보기로 한다.


가기 전 날서부터 다음 날이면 수영장에 가야 한다는 부담이 무겁게 짓눌렀던, 반면 딸아이는 엄마와 물놀이 가는 가장 행복한 날이라며 설레임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 두 번의 수영장 나들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뜻밖에도 수영장에 대한 이전의 나의 모든 불편함들이, 딸아이와의 시간 속에서는 단 한 번도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는 해피한 결말이다.


오히려 그동안의 껄끄러움까지 모두 털어버린 시간이 아니었을까.


남편이 없는 단둘이의 수영장행은 나에게 커다란 책임감을 부여했다.


준비하는 시간부터, 가는 시간, 물속에서의 시간, 나와서 다시 돌아오는 시간까지.

아이는 모든 순간들을 나와 하는 것이다. 딸아이가 그토록 원하는 엄마와의 시간에 대해 나는 분명한 보답을 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거움보다는 어쩐지, 내 불편함 들을 지워주는 힘이 되어주는 것이었다.



6시간, 7시간을 내리 딸아이와 물속에서 보냈다.


깔깔대며 한층 높아진 웃음소리를 내는, 세상의 모든 행복을 다 가진 것처럼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는 알 턱이 없다.


아마도 딸아이에게 비친 내 얼굴도 같았으리라.

세상에는 행복만 남아있다는 듯 웃고 있는 엄마의 얼굴.





그렇게 번거롭게 생각되었던 두 차례 환복의 과정도, 아이와 웃다 보니 생각할 틈이 없었는지.


어느새 드라이기에 바짝 말려진 산뜻한 머리를 휘날리며, 수영장 특유의 왁스 냄새가 잔뜩 배인 수영복이 든 가방을 들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 내 어깨에 살포시 기대어진 머리의 무게가 싫지 않다. 감기는 눈을 이기지 못한 듯 어느새 눈을 감고 잠든 아이.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엄마라는 존재의, 위대함에 대해.


나여서가 아니라,

엄마가 되는 순간 원래의 본성이라는 것을 거스를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는 점에서.


그것도 아무런 거리낌이나 거부감도 없이.


마치 원래 내가 그랬던 사람인 양.




방학 마지막이었던 오늘.


딸아이와 여름방학에 가장 좋았던 일 3가지를 적어보기로 했다.


단연 우리 둘의 1순위는, 수영장.

똑같다.


나에게도 단연, 수영장이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딸아이가 다 자란 어른이 되었을 때.


아빠. 엄마의 품을 떠나 세상 속에서 홀로 부딪혀야 하는 시간을 살아갈 때.


우리가 이렇게 함께 한 시간이, 그 마음에 '널 지지한다'라는 포근하고도 단단한 울림이 되어 너의 모든 시간을 견뎌내고 이겨낼 힘이 되어주길.



나는, 그것이면 되었다.






* [하날빛의 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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