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도 새 살은, 돋는다

by 하날빛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믿음에는 일말의 의심도 없지만, 어렸을 적 나에 대한 엄마의 사랑의 표현은 다소 거칠은 면이 있었다. 일찍부터 온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엄마가 모진 세상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본래 가지고 있었던 성향이 더욱 거세진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하여간 엄마는 소위 말하면 '쎈 캐'에 속하는 편이었다.


할 말은 다 할 줄 알고 어디에도 굴하지 않는 엄마와는 정반대로, 나는 '물러터졌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아이였다. 친구들과 말싸움이라도 날라치면 바로 꼬리를 내리고 사과를 하거나, 턱까지 차오른 하고 싶은 말들을 꿀꺽 삼키고는 환히 웃는 낯빛 뒤에 숨기어 놓는 아이.


나는 어디서든 당당하고 내 한 몸 건사할 만큼의 패기를 가진 엄마의 에너지가 늘 든든하기도 했으나, 종종 그 거친 화살은 그녀의 딸이었던 나에게로 향했다. 나를 움츠러 뜨리고 겁먹게 하기에 충분한 날카롭고도 차가운 말들, 그리고 언어 그 이상의 위력을 가진 냉랭한 눈빛, 그 사이에 흐르는 쎄한 기류 같은 비언어적인 것들로 말이다.





태생이 곧잘 덤벙대고 놓치는 것이 많은 나에게 '너는 대체 왜 그러냐'는 식의 엄마의 서늘 거리는 음성은 마치 본래부터 달고 태어난 꼬리표와 같은 것이었다.


그 딱지는 내 속에서 줄곧 '나는 도대체 왜 이럴까'라는 또 다른 음성으로 전환되어 끊임없이 나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의심하고 부정하며 내 존재의 가능성들을 차단하는 일에 앞장 서곤 했었다.



내가 조금 더 부드럽게 다뤄졌다면.

조금 더 사근사근한 말들에 길들여졌더라면.

보드라운 언어와 감촉의 씨앗이 나에게 심기어졌더라면. 만약 정말로 그러했다면.



지금도 종종 내 자아상에 치명타를 입히는 내 안의 목소리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지 않았을까. 다 자라고 단단히 굳어버린 나를 바꾸기 위해 이렇듯 아등바등 거리는 데에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어느덧 나도 엄마가 되어보고 나니 이러한 생각은 더 간절해지는 것이었다.




'엄마의 언어는 아이의 세계를 만든다는 것'



원망이라고는 한 줌도 없지만은 다만, 이러한 엄마의 영향을 받은 나이 모습이 불쑥불쑥 아이를 대하는 내 모습에 투영이 될 때마다 그것이 무서우리만큼 뾰족한 가시로 내 마음을 이곳저곳 찌르는 것이었다.






엄마와는 극과 극인 나에게 엄마의 가장 싫었던 부분이 데칼코마니처럼 붙어있다는 것은, 인정하는 것조차도 싫은 사실이었다. 온순한 기질 속에, 어떤 부속품이 잘못 껴들어온 것 마냥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불 같은 성질의 것이 올라올 때마다 당황스럽고 낯설며 절망스러운 마음이 들뿐인 것이다.






"또 놓고 나왔어?"


"응.. 엄마 그런 것 같아.. 어떡하지"


"엄마가 몇 번을 이야기했어!

나올 때 꼭 자리 확인해 보라고 했잖아!

매번 엄마가 얘기해 줘야 돼?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딸아이와 신나게 쇼핑몰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을버스 안이었다. 딸아이에게 사준 예쁜 노트 2권을 마을버스를 타기 전 들렀던 빵집 테이블에, 그녀가 놓고 나온 것이다.


마침 그날 아침에도, 선물로 주었던 양산을 어디다 놓고 왔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물건을 잘 챙기고, 어디 갔다 나오기 전에는 꼭 한번 내가 있던 자리를 둘러봐야 한다'며 이미 한 차례 한소리를 한 터였다.


그런 것이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또 제 물건을 챙기지 못하고 그냥 나온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있는 대로 감정을 쏟아내고는 마을버스에서 휙 내려 앞서 빠른 걸음을 걸었다.



'이게 아닌데.

아직 열 살 아이인데 그럴 수도 있지,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야.

너는 뭐 잘하니. 너 닮아서 그런 건데 왜 그렇게 화를 내.

좋게 다시 한번 이야기해 줘도 됐을 일이야. 얼마나 자책하는 마음이 들겠어. 너도 그 마음 알잖아.'



한걸음 뒤에서 기운이 쭉 빠진 채 쫓아오는 아이의 모습이 곁눈질에 아른거리며 수많은 목소리가 발아래 놓인 돌부리처럼 내 마음을 계속해서 걸고넘어지는데. 내 발걸음은 왜 그리도 싸하고 차갑고 빠른 건지. 멈춰지지가 않는 거였다.


다시 빵집으로 간 우리는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채 문을 열고 나왔다.



"어디가, 엄마?"


"공책은 다시 사야 하잖아!"


"아.. 응.."



싸늘하고 쌀쌀맞은 말투가 자꾸만 튀어나왔다. 진짜 마음과는 다른 그것이.


예전에 나의 엄마에게서 그토록 듣고 싶지 않았던, 그토록 느끼고 싶지 않았던, 튕겨져 나갈 것만 같은 그 냉랭한 기류가 우리 둘 사이에 또 흐르고 있었다.



"절대 떨어뜨리지 말아야지"


다시 산 노트 한 권.

딸아이는 그것을 놓칠세라 가슴에 꼭 품고는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며 차가워진 내 손을 꼭 잡는다.



'있지..

엄마 마음은, 사실 그게 아니야.


이게 아닌데..'



내 손을 잡은 아이 손은, 보드랍고 따뜻했다. 거칠고 차가웠을 내 손과는 다르게.








그 노트는 딸아이의 비밀 일기장이었다.

비밀 일기장을 쓰는 첫날 오늘의 이야기가 소재가 될 것은 뻔한 것이 아닌가. 아이의 마음이 궁금했다. 어쩌면, 그 속마음을 알고나야 머리 한 대 세게 맞기라도 하고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내심 그런 마음도 있었으리라.


판도라의 상자. 오늘 딱 하루만이다.



......... 엄마가 사주신 노트를 두고 나온 것이었다. 엄마는 화가 나셔서 앞으로 걸어가셨다. 나는 엄마 뒤를 따라가며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 엄마가 공책을 한 권 더 사주셨다. 엄마한테 미안했다. 집에 돌아와서 내 용돈 3천 원을 지갑에서 꺼냈다. 잃어버린 공책 2권에 2천 원, 다시 사주신 1천 원. 합해서 3천 원. 엄마는 돈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고 안 받으시려고 했다. 그리고 안아주시면서 엄마 마음은 사실 내가 물건을 잘 챙겼으면 하는 마음인데 화를 많이 낸 것 같다고 하시면서 미안하다고, 앞으로는 물건을 잘 챙겨보자고 하셨다. 엄마가 돈 때문에 그런 건 아니라는 건 알지만 내 마음을 알리고 싶었다. 공책을 다시 사주신 엄마에게 감사하다. 이제는 물건을 잘 챙겨야겠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적혀있다. 그리고 쭈뼛 솟아오르는 소름과 함께 내 눈이 멈춰 선 곳.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그 누구의 마음이 이 문장을 보고 덜컹거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아이가 느꼈을 감정의 언어이면서, 마흔 평생 내 마음속을 떠나지 않고 어김없이 찾아와 나를 들쑤시곤 했던 내 안의 소리가 아니었던가.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은 마음을 부여잡고 떨리는 손으로 일기장을 덮는다.



이 날부터, 나는 결심을 하나 한 것이 있다.


다시는, 다시는.

날카로운 비수를 꽂는 언어와 눈빛, 그 어떤 것으로라도 아이의 마음을 조각내지 않겠다고. 그리고 다시는 너의 일기장에 손대지 않으리라고.



그리고 그 다음날, 빼곡히 적은 편지 한 장을 딸아이 책상에 올려놓았다.


나의 무례했던 행동에 대한 사과와, 사실은 화 안에 담겨 가려져있던 본마음의 진실.

그 어떤 실수가 또 일어나더라도 다시 또 시도하고, 또 시도해 보자고.

너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라고.







눈에 백 번, 천 번을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 어떠한 의미인지, 뼈가 시리도록 알게 해주는 내 자식에게 상처 주고 싶은 부모는 단연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그러나 오랜 시간, 원치 않게 깎여오며 난 상처는 진심과는 다른 말들과 행동, 어떤 행동들을 끊임없이 유발한다.


은근히 도 숨어있는 나의 기대에 아이가 못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내 모습이 아니었으면 하는 것들이 아이에게 나타날 때. 무언가 나의 깊숙한 쓴 뿌리를 건드리는 아이와 마주할 때.


꽤나 다양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그리고 적절치 못한 나의 반응들을 만나게 된다.





이럴 때엔 오래전, 엄마를 떠올려 보게 된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나이고 싶지 않은, 그러나 그것 또한 '나'임을 직시할 때 깨닫게 되는 그 근본, 그 뿌리가 되는 엄마. 어쩌면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너무 바쁘게 사느라 자신의 상처를 돌볼 틈도 없었을 나의 엄마.


그런 엄마도 나에게 주는 사랑은 서툴렀을 것이고 나처럼 딸에게 내뱉은 마음 같지 않은 언행들로 미안함과 괴로움이 범벅된 수많은 밤들을 보냈을 것이다.


차마 나에게 말하지 못했을 그 수많은 밤들을.


그랬을 것이다.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은 나 스스로 옭아매고 있었던 상처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시작했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상처는, '있었다'는 그 사실을 지울 수는 없지만 새롭게 돋아나는 새살로 덮일 수는 있는 법이다.


한 계절이 가면 또 다른 계절이 오듯,

고통의 시간이 지나면 희망이 찾아오듯.


그러한 세상의 이치, 순환의 이치에 따라 상처 또한 새로이, 순하고 순한 살로 돋아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햇살이 비춰오는 것처럼 환한 기쁨을 누리는 것과도 같지만 종종 그보다 더 어두운 내면의 아픔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봄날의 왈츠처럼 경쾌하고 따뜻한 곡조가 흐르는 때가 있는가 하면, 어느 날은 깊은 밤의 첼로 선율처럼 먹먹하고 슬픔이 서린 곡조가 흘러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 모든 날들이 하나로 어우러지고 돌고 돌며, 엄마라는 음악을 완성해 가는 것임을.




따뜻하게 안아주리라.

너의 사소한 실수에도, 따스히 품어주리라.

넓고 넓은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너의 서툼과 미숙함도 모두 끌어안아주리라.


내가 받고 싶었던 소근소근한 사랑처럼.

내가 받고 싶었던 아늑하고 너그러운 껴안음처럼.


그렇게 너를, 사랑하리라.



엄마인 내 마음에, 이렇게 새 살이 돋는다.

너로 인해.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너.


너로 인해 엄마에게도, 새 살이 돋는다.







* [하날빛의 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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