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면 충분한, 방학

by 하날빛


학교 방학

늘봄 방학

방과 후 방학

파이디온 방학

영어학원 방학

방학

방학

방학



월요일부터 1주일간, 딸아이의 시계가 완전히 멈췄다.


그녀는 완벽히 자유다.


한 주간 24시간 내내 아이와 붙어 있어야 하는 엄마로서는 숨이 막히는 일정 같으나, 나는 내심 반가운 마음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이제 3년.


3학년이면 다 컸다고는 하지만.

볼살이 통통히 올라온 얼굴에 내 손에 반도 안 되는 손을 볼 때면 아직도 아기 같게만 느껴지는데 학교며 공부며 나름의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아이가 가끔 안쓰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에 아이에게 티를 내는 법은 없으나, 마음속에는 늘 짠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1학년까지는 워킹맘으로 이리저리 바쁘게 살다 보니 아이의 기억 속에는 엄마와 제대로 보낸 시간이 손에 꼽힐 것이다.


2학년이 되어서야 조금씩 엄마가 나에게 마음의 자리를 내어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텐데, 더 늦지 않게 지금이라도 나의 온 마음과 시간을 아이에게 쏟을 수 있다는 것에 나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번 방학은, 그런 나에게 찾아온 기회다.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을 어쩌면 만회할 수 있는 기회.


혹여 딸아이 마음 안에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응어리로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엄마와 함께하는 온기로운 추억으로 온통 덮어주고만 싶다.



월요일부터 나만의 '딸아이와의 시간'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찌는 듯한 폭염 속에서 뚜벅 걸음을 걸어야 하는 우리이니 이동 동선은 되도록 최소한으로,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로 생각해 본다.


이번 한 주는 딸아이도, 나도.

각자의 감성을 한껏 끌어올리면서도 함께하는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그리하여 이번 프로젝트 테마는 [전시와 책]으로 결정되었다.




38도를 웃도는, 더위라고도 표현할 수 없는 터질듯한 뜨거움이 지속되었던 월요일에는 집 앞에서 마을버스 한 번이면 도착할 수 있는 알라딘 중고 문고를 향했다.





각자가 골라온 책을 읽고, 매콤한 떡볶이를 입에 넣은 채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나누고.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은, '함께함을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보석같이 소중한 것이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아이와 무엇을 많이 하느냐만큼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얼마나 진솔하게 아이에게 향해 있느냐라는 것이었다.


마주 보고 있는 아이의 눈동자를 한 줄의 결로 맞추고, 말 하나하나에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으로, 말로 공감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딸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알고 있다는 듯 "엄마랑 오랜만에 데이트하니 너무 신난다"는 말을 줄곧 해주었다.



오히려 내 마음이 위로받은 날이 아니었을까.


다음 날로 이어지는 프로젝트를 더 가열차게 실행할 수 있었던, 그런 위로.







다행히 화요일부터는

뜨겁게도 달아오른 한 여름의 기운의 반 풀 정도는 꺾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기는 했지만 견딜 수 없을 지경은 아니었던 날들.



화요일에는 인사동으로, 수요일에는 도서관으로.

목요일에는 어린 왕자 만나러.

그리고 주말 전 마지막,

오늘은 장장 6시간의 수영으로.



딸아이와의 일주일은 이렇게 느린 듯이, 빠르게.

순간순간이 같이 있음의 충만함으로 자분자분 일렁이며 흘러갔다.



아이가 학교를 가고 나면 자연스럽게 내 시간으로 확보되었던 짧으면 5시간, 길면 8시간이 이번 한 주간만큼은 온전히 딸아이의 것이었다.


온통 아이의 것이 된 그 시간은, 땀이 흥건한 손을 꼭 붙잡고 걸어 다녔던 거리의 풍경들과 시덥잖은 것들에도 깔깔 웃어대며 웃음을 공유했던 순간들, 알록달록 색깔의 향연이 펼쳐지는 작품에서 각자에게 새겨진 감각의 기억들이 되어.

우리 둘, 마음속 깊은 곳에 겹겹이 포개지며 애틋하게도 서리었으리라.






기억도 나지 않을 아주 어린 아기였던 시절 이후.

처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오랜만에, 엄마의 시간을 완벽히 소유한 딸아이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엄마! 정말 행복해!

학교 갈 때는 내가 바빠서, 주말에는 엄마가 할아버지 간병 가야 하니까 계속 시간 같이 못 보냈잖아. 근데 일주일 동안 엄마랑 있으니까, 너무 좋아!"



한 주간의 모든 피로가 녹아내리는 아이의 말.




무엇이 더 필요할까.


7일이라는 시간 동안 딸아이를 향해있는 마음이 흠이 없기를, 백이면 백 모두를 주고 싶었던 나의 진심. 그리고 어쩌면 엄마인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 주는 너의 진심.



서로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이면 충분한 방학이 아닌가.




나도, 너랑 있어서.
정말 좋아.






* [하날빛의 글 정원]

글로 이끈 삶을, 글로 쓰고 있습니다.

댓글과 구독 응원은, 글을 계속 써나갈 수 있는 가장 큰 힘입니다. 감사합니다 :)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