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무기력했던 일상이 달라졌다
나이가 들수록 가능성은 줄어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게 언제부터였을까.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듯한 자신감이
한 가지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거 같은
의기소침함으로 변해버렸다.
이천십팔년 구월 일일, 독서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방학숙제로 독후감을 써 본 이래로, 처음 손으로 적어보는 독서 기록. 이후 1년 반째 이어져 오고 있는 수기 습관은 내 인생을 180도..... 까지는 아니지만, 1.8도 정도 바꿔놓았다. 독서 기록과 메모와 관련된 자기 계발서가 말하는 것처럼 꿈을 이루고 성공해서 돈을 버는 경지까지는 아직 오지 못했다. 이유는 차차 밝혀보겠다.
독서노트를 쓰기 시작한 때는 생의 허무와 무기력감에 허덕이고 있던 때였다. '사는 게 이게 다인가' 하는 생각은 생리날짜처럼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거여서 이번에도 알아서 지나가려니 했는데 이상하게 가질 않았다. 뭘 해도 재미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런데도 시간은 잘만 갔다. 2018년이 네 달이나 남았는데 이미 다 끝나버린 기분이었다. 아직 오지 않은 2019년도 2020년도...
86년생인 나는 밀레니얼 세대의 범위에서 살짝 벗어나 있거나 간신히 낑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90년대생.. 아니, 2000년대생이 오고 있지 않은가) 신조어의 의미를 아예 모르거나 애써 검색해 배워야 하는 나이였다. (어제도 FLEX 의 의미를 검색해보았다)
기성세대라 불리기엔 조금 젊었으나 사고방식은 보수화 돼 갔다. '꼰대가 되지 말아야지' 하는 거듭 다짐 하는게 첫 번째 증거였고 신밧드처럼 여행 하고 앨리스처럼 모험 하는 일을 영 부질없다 여기는 게 두 번째 증거였다. "그 시간에 취직을 하면 30대 중반에 경력 10년 차 직장인이 된다구. 얘들아, 외국에 가지 마.. 님들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지마오, Look at me" 하는 나를 발견하던 날. 팔다리에 경련으 일으키며 악몽에서 깨어나기 직전의 얼굴로 '아, 아, 안돼애애'를 외쳤다.
"때 되면 직장 가고 결혼해서 애 낳고 애들 크는 거 보는 재미로 살다 죽는 거지, 뭐" 하는 어른들은 다 시시하다고 생각했던 애송이 시절을 지나 이제 철들고 좀 겸허해지려는 걸까. 아니면 생물학적 본능에 따라 안정을 추구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인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어른들 조금만 비웃을 걸)
언제부터였을까. 나이가 드는 만큼 가능성은 줄어든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은.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듯한 자신감이 한 가지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거 같은 의기소침함으로 변해버린 순간은.
이 모든 게 사는 과정 중에 하나라고 해도 20년 후 젊은이들에게 '해외여행 가지 말고 얼른 돈이나 모아라' 하는 기성세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 내게 지금 필요한 덕목은
호기심, 이었다.
그래서 독서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어서 늙는 게 아니라, 호기심이 없어져서 사람은 늙는다는 (누가 했는지는 모르는) 명언을 실감한 때였다. 독서노트를 쓰는 건 조기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의 줄인 신조어)를 통해 우뇌를 개발시키고 요약 정리를 통해 좌뇌를 훈련한다는 미래 40년 계획.
독서노트 기록을 통해 멸종 직전인 내 안의 '크리에이티브'함을 구해보기로 했다.
어릴 때 친구와 교환일기를 쓰던 심정으로 한 페이지씩 써 보기로 했다. 다이어리는 예전부터 쓰던 몰스킨 소프트커버로 구입했다. 1,000원짜리 노트도 많은데 왜 몰스킨이냐, 이유는 한 가지다. 허세. 약간의 허세는 동기부여에 도움이 된다. 몰스킨 다이어리를 쓴다고 인스타그램에도 올리고 블로그에도 올린다. 현대 사회에서는 실제로 별 거 없더라도 있어보이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보면 없던 데서 뭔가 생기기도 한다. 기성 세대를 비웃지 말라, 언젠가 나도 보수당에 투표하게 될지 모른다. 허세를 하찮게 생각하지만 말자, 내게도 허세가 필요한 날이 온다, 요즘 내가 새기고 있는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첫 번째 어른의 독후감. 밥도 주지 않고 떡도 주지 않는 (그런데 하다보니 돈이 생겨서 밥과 떡을 사 먹었다?) 독서노트 기록을 통해 멸종 직전인 내 안의 '크리에이티브'함을 구해보기로 했다. 하다보니 의외로 재미도 있었다. 아무 목표도 목적도 없이,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놀이가 생긴 거였다. 책과 노트만 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혼자 놀 수 있었다.
어설프지만, 이렇게 그림도 그려보고
위클리 리딩 노트를 쓸 때도 있으며
강박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줄거리를 꼼꼼하게 요약하기도 했다. (그나저나 이거 정말 꿀잼)
학교 졸업하고 공부란 걸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인문학 책을 읽으면서 요약, 정리하면서 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도 느꼈다. (이렇게, 공부를 했다면....)
알고 싶은 게 많아졌고, 알아야 할 것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몰스킨 다이어리 1권을 여백 없이 꼼꼼히 쓰는데 1년이 걸렸다. 앞서 언급했듯 독서노트를 쓰면서 독서와 책에 대한 나의 태도는 이전보다 1.8도 달라졌다. 습관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체감했고 몰입의 기쁨을 알았다. 책을 많이 읽다보니 책을 쓰고 싶은 욕망도 생겼다. (작년에 <혹시 이 세상이 손바닥만 한 스노볼은 아닐까> 라는 책을 출판했다. 올해도 비슷한 길이의 제목을 가진 책을 내고 싶다. 이를테면, <혹시 독서노트를 써서 세계 최강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는 없을까> 같은.)
내가 배우고 깨달은 걸 타인과 공유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인생에 특별한 게 있다면 거기에 있을 것 같았다. '몰스킨 다이어리에 글씨를 쓸 때는 0.7mm볼펜보다 0.28mm 볼펜이 훨씬 낫다'는 아주 사소한 정보라고 할 지라도, 뭐라도 좀 나누고 사는 게 좋은 삶 아닐까.
나도 타인의 메모나 개인적에 기록에 알 수 없는 안정감을 느끼곤 한다.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 아직도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미 알던 사람처럼 친숙하게 느껴진다. 내 독서노트가 누군가에게 삶의 무기력을 해소할 수 있는, 갈증 나는 일상의 달콤하고 청량한 포카리스웨트 같은 수단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도 생겼다. (b.g.m 라라라라라라, 널 좋아한다고) 그러자 일상이 좀 덜 심심해졌다. 매일 읽어야 할 책이 있고, 기록해야 할 말이 있었다. 알고 싶은 게 많아졌고, 알아야 할 것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만하면 알만큼 다 알았다는 경솔함, 쓸데없는 짓 해봐야 소용없다는 자조는 갖다 버리고 호기심 많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 뭔가 자꾸 궁금해 하다 죽고 싶다. 쏟아지는 질문을 노트에 적고 또 적는 사람이고 싶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나와서 우리의 기억이 자동으로 컴퓨터에 저장된다고 해도 열 손가락을 이용해서 글씨를 쓰는 사람이고 싶다. 무엇보다 "00 이고 싶다"는 얘기를 안 하는 인간이 되고 싶다......
어른의 독후감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