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노창희 칼럼>
제76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시상자는 송강호였다. 작년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고, 그 전해에는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송강호가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시상자로 나선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며, 국내 미디어 산업 종사자들이 주목받는 것도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1990년대만 해도 국내 영화산업은 보호의 대상이었다. 당시 국내 영화산업은 미국과 홍콩 영화들이 주도하고 있었고, 스크린 쿼터를 비롯하여 국내 영화산업의 생존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영화산업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IMF를 극복한 이후 국내 영화산업은 양적, 질적 성장을 거듭해 왔고, 이제는 산업적인 측면과 비평적인 측면 모두에서 큰 존재감을 가진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영화산업은 21세기 이후 유례없는 위기를 맞이한 상황이다. 코로나 감염 이전인 2019년 1월부터 4월까지 극장을 찾았던 관객은 6,841만 명이었다. 반면, 2023년 1월부터 4월까지 극장을 찾은 관객은 2019년의 절반에 못 미치는 3,212만 명인 것으로 나타났다(영화진흥위원회(2023). <2023년 4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 물론, 코로나로 인해 야외활동이 제한적이었던 2022년(1,491만 명)과 2021년(1,072만 명)에 비하면 관객 수가 회복된 상황이지만 창고에 쌓여 있는 영화가 100여 편에 달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코로나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다.
넷플릭스는 국내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왔고, 앞으로도 투자를 지속할 것이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넷플릭스의 국내 투자는 IP 확보의 어려움, 제작비 증가, 양극화 심화라는 부작용을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미디어 산업의 글로벌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했다. 넷플릭스의 국내 투자가 국내 미디어 산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제작, 방송, 영화 등 국내 영상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내 유료방송 시장은 성장률이 둔화되는 양상을 보여 왔지만 IPTV 가입자의 증가로 소폭이나마 가입자가 늘어나는 양상을 보여왔다. 하지만 2022년 12월 가입자 수는 단자 수 기준으로 전달 대비 11,629명이 줄어들었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2023. 5. 17). <2022년 하반기 유료방송사업 가입자 수 및 시장점유율 공고>. ). 유료방송 가입자 수 감소는 국내 미디어 산업에서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향후의 추이를 지켜볼 필요는 있지만 국내에서도 유료방송 가입자 수가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영화의 위기로 글을 시작했지만 경기침체로 인한 전산업의 불황에서 국내 미디어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코로나 기간 동안 타 분야와 비교하여 선전했던 미디어 분야는 거리두기 해제 이후 미디어 이용량 감소와 경기침체라는 부담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총체적인 위기를 맞이한 상황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회복되는 양상을 보였던 광고 시장도 악화되면서 레거시 방송 콘텐츠 사업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K-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대한민국은 미디어 강국, 문화 강국으로 발돋움한 듯 보이지만 미디어 산업이 당면한 현실은 만만치 않다. 방송, 영화 등 국내 레거시 미디어 산업은 대한민국 미디어 산업이 글로벌한 인지도를 갖출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 주었다. 레거시 미디어 산업의 위축은 국내 미디어 산업 전반의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2023년에는 이와 같은 상황이 첨예하게 나타날 우려가 있다.
레거시 미디어만 상황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압축적으로 성장해 온 OTT도 성장 한계에 직면했다. CNBC의 앨릭스 셔먼은 스트리밍이 전쟁이 이제 끝냈다고 얘기한다. 앨릭스 셔먼은 어려움에 직면한 미디어 기업들은 가격 인상과 비용 절감에 집중할 것이며, 디즈니 플러스의 4백만 가입자 감소를 OTT 시장이 한계를 맞이한 징후로 보고 있다(Alex Sherman, 2023. 5. 10. The streaming wars are over, and it’s time for media to figure out what’s next. CNBC). 2019년에 디즈니와 애플이 OTT 서비스를 런칭하면서 스트리밍 전쟁이라는 용어가 자주 회자 된 이유는 OTT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스트리밍 전쟁의 종말이 언급되는 이유는 OTT 시장이 특정한 형태로 정리되었다기보다는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떨어지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동안 공격적인 투자와 M&A를 단행해 왔던 디즈니도 콘텐츠 투자 효율화 및 판권 판매를 통한 수익 창출 방침을 밝혔다. 전세계 미디어 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국내 OTT 사업자들도 콘텐츠 투자비로 인한 적자 폭이 커지고 있다.
위기를 맞이한 것은 분명하지만 대한민국 미디어 산업은 여전히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잠재력을 극대화하면서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다. 위축되고 있는 레거시 미디어가 시장에서 자생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아날로그 시기부터 적용되어 왔던 규제 개선이 조속히 이뤄질 필요가 있다. OTT 사업자들이 맞춤형 서비스, 광고요금제 등 다양한 상품 구성을 통해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규제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국내 레거시 미디어 사업자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레거시 미디어 시장이 무너지게 된다면 국내 미디어 산업 전반의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어 미디어 시장 전반이 더욱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내수시장이 좁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국가이고 이와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특정 분야의 성장에 집중하기보다는 미디어 산업 전반의 공동 성장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산적해 있는 정책 과제들을 우선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 큰 틀에서 미디어 산업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총론 차원에서의 큰 그림 마련도 필요하다. 모든 미디어 사업자들에게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제작비와 관련해서도 특정 생산 요소에 의존하기보다는 비용을 줄이면서 창의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다양한 고민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국내 미디어 생태계는 잠재력을 입증해 왔고, 앞으로도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분야다. 어려움 속에서 지속가능한 미디어 생태계 성장을 위한 상상력을 공유해야 하는 시기다.
출처: https://www.ajunews.com/view/20230530095323233
이 글은 같은 제목으로 5월 30일에 <아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