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한번은 싸워야 모녀지.
출산 후 남편이 출근을 하면 낮 동안 친정엄마와 공동육아를 한다. 친정과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자주 왕래하기 편하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만큼 엄마와 마음의 거리도 가까우면 좋으련만...
아기를 돌보며 엄마와 하루에 한번씩은 다투게 된다. 엄밀히 따져보면 엄마의 특정 말을 들을 때 내가 예민해져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하루는 나의 마음이 상하는 지점이 어떤 이유 때문인지 곱씹어 보았다. 공통적인 이유는 바로 나의 의견을 부정했다고 생각할 때인 것 같다. 아기를 잘 키우고 싶어서 육아서적과 교육영상을 열심히 공부하며 친정엄마와 공유하고 있다. 공유하는 과정에서 친정엄마와 의견차이로 내 의견이 반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참 속상해진다. 안 좋은 의도가 아님에도 서운해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다른 사람의 반응에 민감하다. 그래서 누군가 나의 실수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위로해 줄 때 견고하고 딱딱한 마음의 벽이 와르르 무너진다.
내가 바라던 엄마의 반응은 이렇다.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지. 엄마도 그랬어. 그런데 좀 아파도 탁탁 털고 일어나면 돼. 몇 번 넘어지다 보면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실수를 배우는 과정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아이로. 실패를 내가 견딜 수 있다고 배우는 아이로. 실패를 한 상황에서 내가 얻는 게 있다는 것 아는 아이로. 모든 것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아는 긍정적인 아이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친정엄마는 실수에 대한 격려가 서툰 사람이다. 알면서도 다투는 애증의 관계다. 마음은 자식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는 어머니다. 성인이 되고 유아교육을 전공하면서 어릴적 나의 성장기를 돌아보게 되면서 엄마와 친해지고 싶었다. 엄마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내가 변하는 게 더 빠르다고 생각했다. 바위에 계란 치기 같은 엄마와의 소통을 계속 시도했다. 현재는 엄마도 마음을 공감해 주시고 마음을 읽는 것을 잘하고 계신다. 특히 우리 딸에게 빛이 바라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낯설기도 하고 우리 엄마가 노력하는 모습이 고마우면서도 질투도 난다. 나도 저렇게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지난날을 후회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냐마는 부러운 건 부러운 것 같다.
친정엄마와 아기를 양육하며 가장 중요하게 둔 점은 안정된 애착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내면이 단단한 아이로 키우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우리 아기가 자신의 배를 띄어 항해할 수 있도록 오늘도 육아는 계속된다. 우리 아기가 언어를 배우고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할 때쯤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우리 태리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어?" 아마 엄마와 같은 어른이 되고 싶어라는 말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철없던 내가 친정엄마에게 엄마처럼 안 살 거라고 화냈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 엄만 딸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참... 죄송하다. 오늘도 다짐한다. 따뜻한 한마디 엄마에게 해드리자고. 행복은 연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 눈에 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이로 키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