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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환 Feb 28. 2019

보노보노야, 다 괜찮다고? 지랄 마

목수J 작가K(16회)

내 삶을 위로해 주겠다는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종류가 하도 다양해서 제목들만 보고 있어도 기가 질릴 정도다.

명사들의 실패담이나 성공담 일색이던 이 분야의 책들이 방향을 틀어

이제는 너도 나도 ‘다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실패했거나 불행한 우리에게,

1.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고

2.뭐든 다 잘할 순 없으니

3.너무 자책만 하지 말고

4.다들 그렇게 살고 있으니

5.지나친 스트레스도 받지 말고

6.때로는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도 하고

7.쉬운 일부터 차근차근 노력하면

8.언젠가는 좋은 날도 있을 테니

9.소소한 데서 행복을 찾고

10.뭐든 좋게좋게 생각하라

고 말한다.

신흥 종교스러운 10계명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출판사들이 자기계발서를 팔아서 문학 파트의 적자를 메꾼다더니

이젠 대놓고 이런 책들만 출간하는 출판사들도 많아졌다.


이런 걸 왜 돈을 주고 사서 읽나!

홀아비 사정 과부가 알아준다고, 이런 말 정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주변에도 많다.

나는 오늘도 J에게 징징대러 간다.


“형편 상 많은 걸 포기했지. 그러다 갑자기 억울해진 거야. 아니, 불행은, 그걸 포기하거나 미루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을 선택하지 않으면서 시작된 거 같아. 그런데도 결혼 초반엔 불행하다는 생각이 많지 않았거든. 왜냐면 그땐, 나아질 기미는 없었지만 당장에는 먹고살 만했던 것 같아. 그런데 갈수록 먹고사는 일 자체가, 맞아, ‘현상 유지’가 힘들어진 거지. 매달 백만 원씩 적자 나는 구조가 1,2년을 넘어서면 그땐 뭐든 다 잘못된 것 같아지거든. 뭐든 다 내 탓 같아져.”

‘그래, 다 네 탓이지. 네가 죽도록 노력하지 않은 탓이야. 이제 그만 좀 징징대라.’할 줄 알았던 J가,

다른 말을 한다.

“네 탓이 아니야.”

어? 10계명 중 <3.너무 자책만 하지 말고>에 해당하는 얘긴데?

이 양반도 혹시 요새 너무 힘들어 항간의 베스트셀러를 좀 들춰보셨나...


“네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한테 너무 오래 세뇌당했던 거지.”

하긴 그랬다.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담에 늘 그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있듯이

실패하거나 불행해진 사람들에게도 당연히 그들이 가진 ‘문제’가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했었다.

게으름의 문제

노력부족의 문제

좀처럼 요령이 생기지 않는 문제

좀처럼 행운이 따르지 않는 문제

타고난 지능이나 성격의 문제...

“그래서... 내 탓이 아니라고? 인생은 원래 그런 거니까?”

내가 말했다. J는 어느새 상기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그게 그러니까,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사회라는 건데...”

“그랬지. 결과적으론 그렇게 되더라고. 시키는 대로 하고 살긴 싫었으니까... 내 선택이라 어쩔 수 없는 거지.”

“시키는 대로 사는 사람들은 먹고살 만하고?"

"응?" 

"빚 갚느라, 애들 키우느라 외벌이에서 맞벌이로, 투잡에서 쓰리잡으로, 월급쟁이에서 자영업으로, 그렇게들 죽어라 살고 있는데도 빚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처럼 생계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해.”

“그렇다 쳐. 그래서 이게 누구 탓인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데도 이 사회가 괜찮은 거냐는 거지...”

“글쎄... 사람들에겐 이제 보노보노가 있으니까...”

“뭐? 그게 뭔 소리냐?”

“모르면 됐어.”


덴마크에서 촬영한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덴마크의 젊은이들이 말한다.

“내 인생이 어떻게 돼도, 돈 많은 가족이 없어도, 국가가 내 최악의 상황을 막아줄 거라는 안정감이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보노보노가 백날 다 괜찮다고 해주어도

우리는 절대 '다 괜찮'지 않다.

우리가 대부분 불행한 이유는,

전혀 괜찮지 않은 곳에서 애써 괜찮다고 생각하려는

시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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