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군사쿠테타
서울의 봄.
서울의 봄이 올 것이라고 한 80년 5월을 생각하면 의외로 79년 10.26 이후의 실제 전개과정을 오랜 시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곤 합니다. 영화 서울의 봄이 그런 기억을 또 한 번 떠 올려 줍니다. 그 날의 모습을 잘 몰랐구나 싶습니다.
또 있죠. 잘 몰랐던 일은. 80년 5월 광주 현장의 상태를. 80년 5월 끝무렵, 닫힌 학교 교문을 뒤로 하고 커피숍에 앉아 여전히 무슨 상황인지 모른 채 엉뚱한 이야기들만 나누는 가운데로 전해 진 유인물에 담긴 내용의 진실을.
밤늦게 걸려 온 경찰서로 부터의 전화는 그 유인물의 배포자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유인물을 나눠 준 친구는 이미 경찰서에 잡혀 있었고, 처음 겪는 일인데도 그 친구가 자신이 배포자라는 이야기를 안했구나 싶어서 배포자가 누군지는 모른다, 모르는 사람이더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화기 저 편에서는 '그새끼 잡아와!' 라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 말을 받아 전화를 건 자는 '총들고 잡으러 간다'며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신이 없었을 저들은 실상은 저같은 단순 유인물 소지자 는 잡으러 올 여가도 없었던 때죠. 그래도 덕분에 집안은 순식간에 공포분위기가 만들어졌던 기억이 납니다. 뒤늦게 집어 든 유인물에 담긴 광주의 이야기는 도통 믿기 어려운 일들이었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에 그 놀라운 일들이 실제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권력을 장악한 군인들의 학살결정은 당시로서는 자세히 알기 어려웠죠.
그러고 보니 당시 저보다 조금 더 나이 들었을 뿐인 평범한 군인들은 12.12 그 날 얼마나 당황하고 무섭고 그랬을까요? 하나회같은 조직으로 엮인 장교들의 반란에 동원된 군인들은 대체 황당해도 이런 황당한 경우가 어디 있나 싶겠어요.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명령따라 갔더니 반란군이라니.. 밤새도록 우왕좌왕 하며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지휘관들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이런 군인들이 권력을 잡은 나라가 국민을 지킬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반란군을 진압해야 한다는 판단과 결정을 내리고 반란군에 맞섰던 군인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야말로 진짜 군인이었습니다. 장태완, 김오랑, 정선엽 같은 분들과 이들과 함께 한 군인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군인들의 자존심을 지켜 준 사람들입니다. 그분들의 공이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