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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송작가 조정아 Jul 22. 2018

두 여자의 뒤틀린 욕망의 서사

김진영 소설 <마당이 있는 집> 서평

작가의 후기를 봤다.  작가는10박 11일의 명상코스에서 멋진 창을 가진 여자와 그렇지 못한 여자의 뒤틀린 연대를 그린 이야기를 쓰자고 결심했다고 한다. 영화감독이 쓴 소설이라 대본의 지문을 읽는 것과 같은 생생한 지문은 드라마를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 큰 도움을 줬다. 2016년 4월 9일 토요일에서 4월 27일 수요일까지, 두 여자의 뒤틀린 욕망의 서사가 그려진다.  에필로그에 해당되는 부분은 2016년 6월 3일 금요일로, 긴 세월이 아닌 짧은 여정을 통해 누가 살인을 했고 마당에서 나는 냄새의 원인은 무엇인가를 파헤치는 과정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주란

마당이 있는 주택으로 이사를 한 이후로 신경 써야 할 영역이 집 내부뿐 아니라, 마당 그리고 집 앞 도로가지 확장된 탓에 나는 더욱 예민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부동산에 이 집의 가격을 물어보고, 누가 이 집에 사는지 궁금해 하며 내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끔은 우리 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도 있었다. 똑같은 외관과 입구를 가진 아파트에 살 때가 오히려 더 보호받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대목은 요즘 현대사회의 개인정보와도 관련이 깊어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컸다.


상은

저런 여자들을 잘 알고 있다.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만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여자들. 저런 여자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며칠 뒷면 피트니스 센터에서 태워야 할 지방의 수치에 더 관심을 가질 게 뻔했다.


상은의 이 말은 어쩌면 그녀가 가진 열등감과 질투를 드러내는 문구 같아 너무나 와 닿았다. 



상은

다소 황량해 보이는 길가에 단독주택들이 제각각 위용을 뽐냈다. 각기 다른 디자인으로 건축된 집들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집들은 오로지 집으로만 존재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느 집에서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느낌이 나지 않았다. 사람이 사는 동네가 아니라 집이 사는 동네 같았다.

박재호와 김주란이 살고 있는 집은 대문과 담장이 낮고 붉은 지붕에 목조로 골격을 세운 주택이었다. 다른 집들에 비해서도 큰 창이 인상적인 집이었다. 잔디가 깔린 작은 마당에는 아담한 테이블이 보였고 그 옆으로는 바비큐 그릴도 있었다. 그 집은 풍경과 위용만으로도 나에게 위화감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김주란에게 품었던 동정을 한순간에 우습게 만들어버렸다. 지금 느끼는 위화감은 어쩌면 남편이 열망한 욕망과 일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 멋진 집은 박재호라는 추악한 인간을 가려주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마치 영화대본의 지문을 보는 듯한 이 생생한 묘사!! 현대인들의 집에 대한 열망과 위선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 세상에 쉬운 삶은 없어요. 자신을 특별히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우린 모두 다 평범하게 불행한 거예요. 그럼, 이만.


평범하게 불행하고 평범하게 행복하다는 것. 어쩌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작가가 던지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이 책에 대한 서평은 이미 많은 SNS에 잘 나와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문구를 통해 큰 위안을 얻어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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