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가깝지만 독립적인 존재인 우리.
예전에 인터넷에서 mmpi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mmpi검사란 미네소타 다면적 인성 검사라 하여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심리검사이다. 마음이 갑갑하고 우울하긴 한데, 도통 정체를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내 마음의 실체를 알고 싶었다.
그때 모든 항목에서 정상을 의미하는 초록불이 나왔다. 검사 결과를 해석해 주시는 분이 이렇게 전부 초록색이 나온 건 처음 봤다며 신기했지만 더 신기한 건 나였다. 분명 나는 문제가 있는데, 왜 검사 결과가 이렇게 나온 걸까? 검사 결과를 듣고 나니 답답했던 마음이 한층 더 안개에 둘러 쌓인 기분이었다. 타인에게 괜찮은 척하는 걸 넘어서서 이제는 자신까지 속이고 있는 걸까?
"뭔가 이상해요. 저 전혀 괜찮지 않아요."
"어떤 점이 괜찮지 않으세요?"
평소 쉽게 속마음을 잘 꺼내지 않는데 어째서 술술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그 후로 그분께 심리 상담을 부탁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몇 차례 상담을 받은 후 상담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원가족, 특히 어머니와 너무 융합돼 있는 것 같아요."
그때까지도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말이라 적잖이 놀랐다. 부모님을 그리 좋아하는 딸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너무 많이 싸우는 부모님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 아버지와 싸운 날이면 엄마는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고 나와 남동생에게 폭언으로 그 화를 풀었기 때문에.
"저는 부모님이랑 가깝지 않아요. 두 분을 전혀 좋아하지 않아요."
이 말을 뱉으면서 스스로도 이상했다.
나는 왜 부모님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이렇게 끌려다닐까.
엄마와 융합돼 있다는 말이 사실 좀 거북했다.
항상 바쁜 부모님, 내게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부모님. 각자의 삶에 지쳐있었던 부모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혼자 방에 있었던 기억 밖에 나지 않는다. 뭐든 혼자 할 수밖에 없었다. 성인이 되고 가정을 꾸린 지 10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부모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부정했다.
엄마와 싸우고 난 후, 몸살을 앓으며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나는 그동안 엄마가 불쌍했다. 아버지와 신혼여행에서부터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는 엄마가 참고 산 세월이 가여웠다. 그리 외향적인 분이 아닌데도 이유를 만들어 외출을 하려 하는 이유를 나는 잘 알았다. 나 역시 집에 들어오지 않을 거리를 최대한 만들곤 했으니까. 고등학생 때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나면 12시까지 하는 보충자율학습을 자발적으로 신청했다. 그 이후엔 새벽 2시까지 독서실에 있다 문 닫을 시간에 억지로 집으로 돌아갔다. 공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좋은 핑곗거리였다.
나도 여자이자 사람이기에 엄마의 심정이 너무 이해가 되었다. 한 개인으로서의 삶이 안타까웠다. 그런 마음이 너무 지나쳤던 걸까. 도움이 된다면 도와주고 싶었고, 꺼내줄 수 있다면 꺼내주고 싶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그 지옥 속에서 도망쳐왔듯이 엄마 역시 구원해 줄 수 있으리라 믿었던 오만이 나와 엄마의 관계를 망가트렸다.
엄마는 엄마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았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 내가 어린아이로 돌아간다면 엄마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아버지와의 불화를 견디며 살고 있으니, 그렇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엄마는 엄마의 방향대로 나아갔을 뿐이다. 나 역시 다시 같은 삶을 산다면, 나 스스로의 삶은 바꿀 수 있을지언정 엄마의 삶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떻게 타인의 삶을 옳다 그르다 재단할 수 있을까. 삶은 아주 잔인할 만큼 정확히 각자의 몫이 있다.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거절하지 못하고 엄마의 말이라면 무리해서라도 들으려고 하는 나였다. 엄마를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나였다. 엄마의 삶을 안타까워한 나머지 짐을 나눠질 수 있다고 생각한 나였다.
우리는 모두 독립적인 존재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가족, 친구를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변해야 할 건 타인이 아닌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