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랑해 버려!"
심리 상담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그냥 사랑해 버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부모님인데, 그게 가능하긴 한 걸까. 부모님을 사랑하라는 건 아직도 참 어려운 과제다. 부모님을 불쌍하고 원망할 수는 있어도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부모님에 대한 마음은 분노와 원망, 연민이 근원이고 나를 지탱하는 힘이라 생각했다.
어릴 때 굳게 다짐한 적이 있다. 아무리 부모가 늙고 약해진 모습이 되더라도 그들에게 약해진 마음으로 대하지 않을 거라고. 그런 내 모습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이제 부모님을 용서하기는커녕 사랑하는 것은 어린 나에 대한 커다란 배신 아닐까. 내면에서 웅크린 채 자라지 못하는 9살짜리 아이가 잔뜩 성이난 채 말하고 있었다. 지난 시간 힘들었던 나는 도대체 어떻게 보상받는 거냐고.
엄마와 함께 TV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출연하는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는데, 엄마가 넌지시 말했다.
“너네 키울 때는 이런 걸 다 모르고 그냥 키웠는데, 지금 와서 보니 너무 미안하네.”
독백하듯 꺼낸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은 싫었다. 이미 나는 성인이 돼버렸는데, 이제 와서 혼잣말하듯 하는 미안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동안 내 마음속에서는 상처가 생기고 곪고 아물고를 무수히 반복했는데. 그 후로 엄마의 모든 행동은 속죄로 느껴졌다. 손주들을 봐주는 것도, 주말마다 친정에 가면 거하게 차리는 음식들도, 우리 집에 와서 한 번씩 살림을 도와주는 것도 전부.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는 계속 외쳤다. 이제 와서 왜. 도대체 왜.
그러나 이제는 놔줄 때가 된 것 같다. 내 마음속 깊고 큰 분노와 원망, 두려움과 공포, 연민과 동정 이 모든 아픔들을. 너무 사랑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고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던 내 마음의 다른 이름임을 인정해야 했다. 움켜쥐고 있는 동안 스스로를 참 많이도 아프게 했다.
부모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아직은 어렵고 낯설다. 그러나 이제 사랑받고 싶었던 어린 마음에서는 벗어나야겠다. 어린 나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럼에도 어린 나에게 꼭 알려주고 싶다. 절대 결혼 안 한다고 생각했고, 여자인 게 너무 싫다고 생각했던 꼬마 아이가 커서 너무 좋은 남편을 만나 아들 셋을 낳았다고. 지금의 우리 가족은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어릴 때 가족과는 다른 모습이라고. 아들 셋은 서로 내 옆을 차지하려고 싸우고, 남편과는 너무 사이도 좋다고. 그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고. 그러니 부디 부모에게서 사랑받고 싶었던 그 마음을 이제는 놓아도 된다고.
부모와 자식은 뭘까. 아이는 태어나서 아무 이유 없이 그저 부모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 그건 누구나 마땅히 가지는 마음이다. 그런데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사랑을 갈구하게 된다. 사랑을 원하는 자신의 모습이 싫어지고, 사랑을 주지 않는 부모가 원망스럽다. 자연스럽게 생기는 마음을 부정하다 보니 스스로를 감옥 속에 가둔다.
사랑받고 싶은 절대적인 존재였으며 나를 난도질하기도 했던 가해자. 서로의 민낯을 보기도 하며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 나는 한 번도 부모를 마음껏 사랑해보지 못했다.
이제는 착할 딸에서 벗어나고 싶다. 어린 시절 맺었던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제 더 이상 부모님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며, 나 역시 더 이상 어쩔 줄 몰라하는 어린아이가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