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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그립 Dec 18. 2023

엄마를 대신해 주는 일

엄마를 대신해 주는 게 착한 딸일까?

나는 제법 커서까지 우산 접는 것이 어려웠다. 아무리 가지런히 잘 맞춰 접으려고 해도 항상 들쑥날쑥했다. 그럼 엄마는 내 삐뚤빼뚤 접힌 우산을 다시 펼쳐서 착착 접어줬다. 내가 애써서 해도 엉성한 것들이 엄마 손에만 가면 항상 쉽게 해결됐다. 그런 엄마를 보며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못하는 게 없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엄마는 하나둘씩 나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영어로 된 상호를 보면 뜻을 물어보시고는 왜 굳이 한글로 써도 될 걸 영어로 쓰냐며 툴툴거리셨다. 그럴 때마다 잘 알아듣도록 적절한 설명까지 덧붙이고 이해시키려 했다. 엄마가 비밀이라며 나에게만 말해준 학력 콤플렉스를 나는 알고 있었으므로. 엄마에게 잘 알려주는 게 착한 딸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찾거나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알려드렸다. 그러면 항상 "너는 어떻게 그렇게 모르는 게 없니" 하셨다. 그 말을 듣는 게 좋았다.



 이제 갓 환갑이 넘은 엄마는 이제 못하는 게 너무 많아지셨다. 모바일 뱅킹, 키오스크 주문, 심지어는 셀프 주유까지. 알려주려고 해도 손사래를 치신다. 이제는 머릿속에도 안 들어오고 배워봤자 금방 까먹는다며 그냥 대신해 달라고 하신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한숨을 쉬지만 귀찮은 내색 없이 해드렸다. 나에게는 그저 귀찮은 일이지만 엄마에게는 최대의 난제일 것이므로. 그게 엄마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엄마는 나를 귀찮게 해.’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미루고 나한테 시켜.’

‘내 생활은 전혀 존중해 주지 않네. 하루하루 너무 바쁜데, 왜 자신이 할 일까지 다 시키는 거야.’





 일을 대신해 준 덕에 나는 이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다. 그러나 엄마는 예전에 하던 것도 못 하겠다고 하신다. 


그러다 엄마 또래 분들 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인터넷 쇼핑도 하고 중고 거래를 하는 걸 보며 깜짝 놀랐다. 요즘 엄마가 밤에 잠도 잘 안 오고 우울한 생각이 든다고 자주 말씀하신다.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사라지면서 오는 상실감이 큰 탓은 아닐까.


착한 딸이 되고 싶었다. 

칭찬받고 싶었다. 

엄마에게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다.


 그러면서 엄마가 새로 배우고 익히는 기회를 빼앗았다. 그렇게 엄마의 주체성과 자존감을 훼손시켰다.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계속 해결해 주면서 엄마를 구속하고 있었다. 엄마와 나의 관계에서 항상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의 인정 욕구로 인해 엄마에게 피해를 주고 있었음을 시인해야 했다. 


아이를 키울 때 많이 들었던 말은 '아이의 자율성을 키우려면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하게 놔둬야 한다.'이다. 그래야 아이도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난다고 했다. 

이제 점점 아이가 되어가는 엄마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그런 것이 아닐까.


엄마가 오늘 스마트폰으로 메모하는 법을 물어보셨다.

전에 같으면 대신해 줬을 일들이다. 나는 1분도 안 걸리니까. 먼저 내가 하는 법을 보여드리고 "한 번 해봐" 하고 돌려드렸다. 서투른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눌러보셨다. 다음번엔 "엄마도 잘하네! 할 수 있어!"라는 말도 덧붙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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