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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그립 Dec 22. 2023

부부 싸움은 아이의 눈을 슬프게 만든다.

소통 전문가 김창옥 강사님의 유튜브 강연 중 '늙어서도 늘 보고 싶은 부모가 되는 방법'이라는 제목이 보였다. 얼른 클릭해 보았더니 첫 부분부터 마음 아픈 이야기를 했다.



김창옥 강사님에게 사람들이 자꾸 눈이 슬퍼 보인다는 말을 했단다. 김창옥 강사님이 말씀하시길, 슬픈 장면을 많이 보면 눈이 슬퍼진다고 한다. '귀가 안 들리던 아버지는 사는 즐거움이 없어서 노름을 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어머니와 K-1을 했다. 어머니는 파트라슈가 됐다.'라며 유머를 섞어서 이야기하는 그의 눈이 정말 슬퍼 보였다. 



우리 부모님도 정말 징글징글하게 많이 싸우셨다. 아버지가 술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엄마와 남동생 그리고 나, 셋은 숨을 죽였다. 오늘은 누가 꼬투리가 잡힐까. 어느 하나는 혼나야 했다. 딱히 잘못을 하지 않아도 아버지 눈에 하나는 거슬렸다. 아버지의 분이 풀릴 때까지 소리 지르는 것을 듣는 것이 하루의 마무리였다.



누가 표적이 돼 아버지에게 혼이 나든 어김없이 엄마와 아버지는 다투셨다. 그러면 나와 동생은 조용히 방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항상 귀는 부부 싸움하는 소리를 신중히 들어야 했다. 혹시 싸움이 너무 커지게 되면 말리러 가야 하므로. 그런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었다.



그날도 엄마와 아버지가 다투는 소리를 한참 열심히 듣다가 더 이상 인기척이 나지 않아 잠이 든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가니 먼저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하고 계시던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다른 집 애들은 엄마 아빠가 싸우면 울고 말려서 싸우지도 못한다는데."


잔뜩 성이 난 눈초리로 나를 흘겨보는 엄마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엄마, 나도 너무 무서운걸.'이라는 말이 목구멍에 가득 찼지만 차마 말은 할 수 없었다. 비겁한 내가 싫고, 힘든 엄마가 밉고, 아버지가 증오스러웠다. 눈앞에 놓인 밥을 묵묵히 떠 입에 넣었다. 맨밥을 꾸역꾸역 삼키고 내 몫의 밥공기를  비워냈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으므로.



 그때 내 나이가 9살이었다. 지금 우리 첫째보다 두 살 어린 나이. 벼락같이 화내는 아버지, 질세라 소리 질러대는 엄마. 그 사이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엄마는 무엇을 바라고  어린 딸에게 원망의 말을 쏟아냈을까. 


 아버지는 일주일에 삼일 이상 술에 취해 들어오셨다. 그러니 스무 살의 절반은 조마조마하게 살아야 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세상에 대한 불신을 심어줬다. 엄마는 내게 죄책감이라는 씨앗을 뿌렸다. 그것들이 자라 내 안에서 얼마나 많은 나를 파괴했을까.






 나는 아이를 낳기 전과 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늘 어둡고 슬펐던 내 얼굴이 웃는 일이 많아졌다. 처음으로 행복이란 이런 건가 할 때도 있었다. 잠 조금 못 자고 육체적으로 힘든 것이 차라리 좋았다. 늘 언제 시한폭탄이 터질까 살얼음판 걷는 듯했던 삶에 비하면, 몸이 좀 고된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음껏 웃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면서 한 가지 다짐한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슬픈 눈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했다.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에 관하여. 사이좋은 부부에 관하여. 공부하는 것만이 유일한 터득 법이었다. 책도 보고 강연도 들었다. 남편이 이유 없이 미워질 때는 법륜 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한 번씩 아이들에게 화를 낼 때도 있었다. 내가 소리를 지르는 모습에서 내 부모님이 보였고, 겁먹은 아이들에게서 어린 내가 보였다. 그럴 때면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아무 말하지 않고 눈물 맺힌 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에 비쳤을 내 모습이 어땠을지, 굳게 닫힌 입 속에서 어떤 무수한 말을 삼켰을지 나는 아니까. 그러면 또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방긋 웃어주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바뀌어야 한다'라고 수 없이 되뇌었다.




얼마 전 집에 친정 엄마가 놀러 오셨다. 외할머니의 깜짝 방문에 신이 난 남자아이 셋이서 거실을 뛰어다니고 까부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아이들을 미소진 얼굴로 한참을 바라보던 엄마가 한마디 툭 던지셨다.


"너희 집 애들은 눈에 걱정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 말에서 얼마나 많은 안도와 감사를 느꼈는지 엄마는 알까.



사진: Unsplash의Brandon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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