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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one Jul 19. 2022

비트겐슈타인과 언어적 전회

The Linguistic Turn


1. 기존 철학의 문제점.


비트겐슈타인이 보는 기존 철학의 문제점은 언어의 논리 남용이다. 소크라테스부터 이어져오는 철학적 문제 제기와 이론은 [말하여 질 수 없는 것]의 나열이었다. [말하여 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실수는 그들이 언어의 논리를 잘못 이해한데서 기인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그들의 이론속의 반박이 아니라 논의의 시선을 바꾸어야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다시 말해서, 언어의 논리를 올바르게 규명하고 이해하는 것이 선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고의 한계가 아니라 언어의 한계다. 따라서 말하여 질 수 있는 것은 엄밀하고 명료하게 말하여 져야만 하고, 침묵해야한다는 것은 곧 우리의 언어가 가진 한계 저 너머의 것들을 뜻한다.


“언어에서만 한계가 그어질 수 있으며, 한계의 다른 쪽에 놓여 있는 것은
 그저 무의미할 뿐이다.” 1918년 빈에서 L. W.



II. 논리의 남용 그리고 시.


한편으로는 기존 철학의 논리-남용은 사람들을 탐미적인 욕구에 빠뜨리기에 충분하였다. (감히 말하자면) 철학은 시가 가지는 역할을 상당 부분 얻어왔다. 또한, 세계와 인간 내부 인식적 한계 대한 정당성에 머물지만, 언어적 한계에 대한 관점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러한 존재, 진리, 앎(지식) 등에 대한 형이상학적 논쟁의 단서를 언어 자체에서 찾지 못해왔다. 그래서 철학적인 모습에 있어서 탈바꿈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이러한 새 모습은 이론이 아니라 활동의 측면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철학은 ”언어 비판“이다.”
『Tractatus』Wittgenstein 이영철 역
“논리는 스스로를 책임져야만 한다.”
『전쟁일기』Wittgenstein 박술 역


III. ‘호수’ 칸트와 비트겐슈타인


기존 철학에 불만을 품었다는 점에서 칸트와 비트겐슈타인의 자세는 동일하다. 칸트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보다 인간 사고의 능력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비트겐슈타인의 물음은 사고 능력이 아닌, 인간이 표현하는 언어 능력적인 측면에 집중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부터 이어진 철학은 생각의 내용에 대한 탐구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범주는 칸트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생각의 내용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그러한 관심을 ”언어적 차원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20세기 분석철학의 기조에 족적을 남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의해서 -언어적 전회(the Linguistic turn)-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Wittgenstein>, 박병철 역, 이룸, 2003

<비트겐슈타인 전쟁일기>, 박술 역, 읻다, 2016

<논리-철학 논고>, 이영철 역, 책세상,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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