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tgenstein 박병철 역 참조
나는 복도에서 소크라테스를 보았다. 방에 들어 온 나는 타인에게 조금 전 복도에서 본 것을 전달하고자 한다. 그래서 “나는 복도에서 소크라테스를 보았어.”라고 말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복도에서 소크라테스를 보았어.”라는 말은 실제로 그 소크라테스와 같은 것이 아니다. 복도에서 소크라테스를 보았다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직접 그 사람을 복도로 끌고가 소크라테스를 보여줘야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하거나, 혹은 시기와 공간에 대한 제약 때문에 그러한 경험적인 실천이 실패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문장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위에 작성한 설명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와 세계 간의 대응 구조를 잘 보여주는 예시이다. 우리의 언어는 마치 거울과 같이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2차원적인 거울이지만 3차원의 세계를 반영하는 것처럼, 2차원적인 우리의 언어가 3차원의 현실 세계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거울, 즉 우리의 언어는 그 세계와의 것들과 같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듣고 읽은 것을 통해 세계의 가능성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그러한 모사를 만들어 낸다. 또한 우리 사이에 있는 언어를 통해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 탐구하기 위해 이른바 그림 이론을 이용해 설명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이러한 문제 의식은 우리가 “선이란 무엇인가?”, “존재란 무엇인가?” 이전에 그러한 질문이 가능케하는 전제에 주목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사고를 하고, 질문을 하고, 답을 하고, 의사 소통을 통해 앎을 얻어가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