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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Jan 15. 2024

사라진 남편

남편과 나는 25년째 같은 공간과 시간을 나누며 살아오고 있다.

그 긴 세월 속에 이 사람만큼 나를 잘 이해하며 아껴주고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앞뒤가 꽉 막힌 듯 답답하고, 이기적이고, 고집스러운 남자와는 이제 끝을 내자라고 결심하고 실행의 시기를 조율하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의 “의견 불일치“ 원천이자 촉매제였던 아이들이 독립한 요즘은, 서로 각을 세울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동안 갈고닦았던 우리들의 "상대방을 수용하는 능력"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다고나 할까, 특히 공간적으로도 여유로워진 지금은, 더 관대해졌으며 서로의 의사를 존중해 주고 귀담아 들어주는 좋은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가끔 건강 문제로 병원엘 다녀야 하는 것만 제외하면, 나는 꽤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더구나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하여 배움을 얻고 나의 지적인 영역을 넓혀가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예기치 못한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은 제법 먼 거리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갔다 온 날이었다. 날씨가 꽤 추웠는지 집에 돌아오니 온몸이 노곤해졌다. 따뜻한 거실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보다가, 강 건너 낡은 아파트 뒤편으로 묵직한 붉은 노을이 사방으로 내려앉았을 때에야, 곧 퇴근할 남편을 위해 저녁식사를 준비하러 일어났다. 어떤 음식을 할까? 솔직히 요리하는 게 귀찮기도 했지만 어차피 그도 다이어트 중이니 통밀빵, 샐러드와 호박 수프를 만들기로 했다. 간단하지만 건강하게 하루를 마무리 지을 최적의 식사를 위해 나는 바쁘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냉동고에서 통밀빵을 꺼내 해동을 시키고, 바타비아와 루꼴라, 토마토는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후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큼지막한 도자기 그릇에 옮겨 놓았다. 그리고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식초를 잘 섞은 다음 약간의 다진 생마늘을 넣어 드레싱을 완성했다. 열이 잘 오른 냄비에 버터를 넣고 호박을 볶으면 수프의 맛은 더 부드럽고 깊어진다. 쟈글쟈글하게 호박이 익어가자 내 입안에 침이 고였다. 얼른 작은 호박 조각 하나를 꺼내 입에 넣었다. 뜨거운 햇볕에 잘 익은 호박인지 단 맛이 강했다. "완벽하군", 이때 재료가 살짝 잠길만큼의 물을 붓고 한소끔 끓인 후, 손 믹서기로 갈아서 수프도 완성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남편이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감미로운 호박 수프의 냄새가 나보다도 먼저 그를 맞이할 것이었다.


보통 남편은 저녁 7시 30분이면 집에 도착한다. 시간을 체크해 보니 7시였다. 오우케이,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쇼츠나 더 볼까? 다시 소파 위에 누워 유튜브를 보았다. 쇼츠는 잠시 시간 때우기에 최적인 콘텐츠다. 짧아서 언제든지 시청을 멈출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자극적인 제목들에 내 검지 손가락은 클릭하느라 바빴다. 그러던 중 멈출 수 없도록 교묘한 알고리즘으로 인해 생생한 교통사고 현장을 담은 영상을 보게 되었다. 앞서 가던 운전자의 사소한 실수로 3중 충돌사건이 일어났는데 3명의 운전자 중 2명은 사망, 1명은 전신마비의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다소 충격적이어서 나중에 남편에게 보여줄 생각으로 “좋아요“를 눌러 두었다. 평소 남편과 나는 도로 위의 다소 공격적인 운전자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기에 그날 저녁 음식과 함께 식탁에 올라 "오늘의 탑픽 뉴스"가 될 터였다.

한참을 유튜브에 집중하고 있었는데도 현관은 조용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8시였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어?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혹 업무상 누굴 만나고 있나 싶어 메시지도 넣어 봤다.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슬슬 불안한 마음이 일어났다. 보통 남편은 약속이 있거나 정해진 시간에 퇴근을 못하게 되면 미리 연락을 하곤 했다. 오랜 결혼 생활의 긍정적인 산물 이라고나 할까 하여간, 그것은 우리 사이에선 불문율처럼 지켜오는 규칙이었다. 밤 9시 30분이 되자, 나는 어떤 좋지 않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거라 예감하고 일단 경찰서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맘을 먹었다. 매일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생활의 패턴 속에서 2시간이 넘도록 연락되지 않는 남편이 걱정스러웠던 이유는 그가 요즘 운동삼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이 있는 백범로에서 회사가 있는 종로 1가 까지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어 도로의 최우 측 차선을 차량들과 함께 나눠 쓰기 때문에, 거친 운전자들에 의해 언제라도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번호가 몇 번이더라? 한국에 정착한 지 2년이 다 되었지만 지금껏 경찰서와 엮일 일이 없었던지라 얼른 인터넷에서 검색을 했다.

“국정원입니다, 무얼 도와드릴까요?“

“어? 마포경찰서 아닌가요? 구글 해보니 이 번호 뜨던데? 182번이요“

“일단 무슨 일로 전화하셨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친절한 여직원이 내게 물었다.

“다름이 아니라 남편이 아직 퇴근을 안 했어요, 평소엔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고, 그렇지 못한 상황이 되면 미리 알려주는데, 오늘은 퇴근 시간이 3시간이 넘었는데도 집에 오지도 않고, 전화 연락도 안됩니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데, 혹여 사고가 나서 어느 병원 응급실에 누워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제가 그 사실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어디 사고 신고 들어온 거 없나요?“

“아, 그런 일이라면 112로 전화하시면 잘 안내해 드릴 겁니다“ 라며 그녀는 공손히 전화를 끊었다.

112의 여직원 역시 친절했다.

“혹시 퇴근 후 만날 사람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재차 퇴근 후 곧바로 집으로 오는 그의 습관을 강조했다.

“남편은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이라 어디서 사고를 당해도 의사소통이 안될 수 있어요, 그래서 더 걱정입니다.“ 그녀는 내게 실종신고를 할 건지를 물어봤다. 신고접수가 되면 핸드폰의 위치 추적을 할 수 있다고 덧붙었다.

“잠시만요, 생각 좀 해볼게요“

대체로 이런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때면 나의 머리는 급속도로 차가워지곤 했다. 성급한 판단으로 인해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단 그 여직원에게 30분 정도 더 기다려본 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주 친절하게 그러시라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다시 남편에게 전화와 메시지를 넣기 시작했다.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갑자기 그의 회사 동료에게 그가 정확히 언제 퇴근했는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실종신고의 근거가 확실해질 테니까.

그런데 어이없게도 내게는 그 어떤 동료의 전화번호도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급히 서재로 가 그의 명함첩을 살펴보았지만 거래처 사람들의 명함만 가득했다. 하기야 누가 같은 회사 동료의 명함을 갖고 있겠나. 그 짧은 순간 나는 얼른 계산을 했다. 현 거래처 사람에게는 앞으로 일이 어떻게 꼬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화를 걸어 현재 이 상황을 설명하고, 게다가 남편 동료의 사적인 전화번호를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남편을 너무 적나라하게 노출시키는 거 같아서였다. 그때 한 명함이 눈에 띄었다. 현 거래처가 아닌 옛 거래처 변호사로 어쩌면 남편 동료의 전화번호를 알 수도 있을 수 있겠다 싶어, 조금 망설이다 그 늦은 밤에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걸었다. 점잖은 목소리가 응답해 왔다. 작지만 다급한 목소리로 이 한밤중에 지인이 아닌 사람의 전화를 받아 준거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고, 내 신분과 용건을 밝혔다. 그는 자신도 남편 동료의 번호를 갖고 있지 않다며 혹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나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왠지 모를 수치심이 살짝 느껴졌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평화롭고 여유롭지 않았던가. 얼마 전 무심결에 이제 더 이상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없다고,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친구에게 했던 말을 하늘이 들었단 말인가?


어느새 밤 11시가 거의 다 되었다. 실종신고를 위해 경찰서에 전화를 했다. 만사가 다 귀찮은 듯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응답했다. 퉁명스럽게 신원 확인을 하던 그가 2명의 경찰관을 우리 집으로 보내겠다며 주소를 확인했다. 의아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그는 그 경찰관들이 남편이 집에 없음을 "먼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후에야 실종 신고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어쩌면 어떤 특별한 이유로 내 전화를 “일부러“ 안 받을 수도 있으니 그도 전화를 해 보겠다 했다. 10분 후 선량해 보이는 2명의 경찰관이 초인종을 눌렀다. 나는 112에 다시 전화해서 그들의 도착을 알리고 매뉴얼에 따라 실종 신고를 했다. 국적, 키, 머리색깔과 모양, 입은 옷과 신발 그리고 신발 사이즈, 안경착용여부, 우울증 여부 등등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평소 얼마나 남편에 대해 무관심했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다그치듯이 그가 물었다.

“아침에 어떤 옷차림으로 출근했어요? 외투와 바지의 색깔, 그리고 어떤 종류의 신발과 색깔을 착용했는지 자세히 말해주세요, 안경은 일할 때만 씁니까 아니면 평소에도 쓰고 다닙니까“

“어, 글쎄, 잘 모르겠는데요, 저희는 아침에 거의 마주 칠일이 없어서요, 안경은 쓸 때도 있고 안 쓸 때도 있는 거 같은데요“

“사모님, 이렇게는 실종신고가 안됩니다. 옷차림도 모르는데 도대체 저희가 어떻게 찾습니까?“

그의 짜증이 수화기를 통해 곧바로 내 귀를 후려쳤다.

“잠깐만요, 확인해 볼게요“라고 말하며 급히 남편 방으로 달려가 옷장 안을 살펴보고, 입고 갔을 거라 짐작되는 것들을 말해 주었다. 일단 수사가 진행되어야 하니 이런 편법이라도 쓰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경찰관은 이제 남편의 스마트폰이 추적되고 있음을 알렸고, 2명의 경관도 우리 집을 떠났다. 어쨌든 접수가 됐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그때서야 내가 그 시간까지 저녁을 먹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다음 단계를 대비하기 위해 얼른 뭔가를 먹어 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남편을 위해 준비했던 빵과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동시에, 만약 남편에게 사고가 났다면 내가 해야 할 일들과 처할 상황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아이들, 재정문제 등등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거칠고 암울한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다시 112에 전화해 경과를 확인해 보았다.

“사모님, 스마트폰이 추적이 됐습니다. 그런데 근방 몇 킬로미터 이내로만 추적이 되기 때문에 저희가 정확한 장소를 알 수 있는 게 아니고요, 단지 신호가 이동 상태가 아니고 정지되어 있는 걸로 봐서, 아마 어디 내부에 들어가 계시는 듯합니다.“ 무관심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신호 잡힌 장소가 어디예요? 혹시 병원인가요?,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디선가 사고를 당해 길바닥에 쓰러져 있을 수도 있겠네요!“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개인정보 보호의무 때문에 장소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실종자 본인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나중에서야 그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실종 신고가 항상 선의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내나 남편 또는 부모나 자식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실종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들의 개인정보 역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함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현재 내 상황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말도 못 하는 한 외국인이 길가에 쓰러져 도움 요청을 못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정당하지만 복잡한 시스템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서울 골목길 어디에 쓰러져있을지도 모르는 남편을 생각하니 마음이 자꾸 다급해졌다. 게다가 초저녁에 보았던 유튜브의 교통사고 영상까지 떠올랐다.

“지금 신호가 잡히는 지역을 경찰들이 순찰하며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 그사이 남편분이 집에 돌아오시면 저희에게 연락 주세요, 그래야 실종신고가 해제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희가 밤새도록 찾으러 다녀야 합니다.“ 건조한 목소리로 이렇게 마무리를 한 그는 전화를 끊었다. 공감능력 제로인 중년 남성 경찰이 신고 전화 접수와 안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는 나를 진정시키는 대신, 오히려 그들이 기계적으로 업무처리를 하고 있어서 내가 뭐라도 나서서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기게 만들었다. 민중의 지팡이? 믿음직스러운 것 과는 좀 거리가 먼 경찰관이었다. 만약 첫 신고 전화를 받았던 여경이 나의 사건을 안내했다면 나는 그때 어떤 심리상태에 있었을까? 어쨌든 전화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의 불안은 점점 더 커져갔다. 이거 혹시 꿈이 아닌가 싶어 내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아팠다.


5년 전 베이징에 살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지인 한분이 한밤중에 싼리툰 거리에서 누군가에게 주먹으로 머리를 가격 당해 쓰러졌다. 시간이 자정을 넘겼지만 워낙 붐비는 거리라 그 시간에도 인파는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쓰러진 그를 흘깃 보기만 했을 뿐 그냥 지나쳤다. 대략 3시간 후쯤 누가 신고를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머리의 뇌동맥류가 터진 채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그는 그 이후로 식물인간이 되었다. 40대 후반의 창창한 나이에 그의 인간다운 삶은 이렇게 산산조각이 났다. 물론 이런 상황은 내국인에게도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특히 이방인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과 배타적인 태도가 얼마나 잔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나는 그때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때 쓰러져 있던 사람이 내국인인 중국인이었다면 신고는 훨씬 이전에 이루어졌으리라고 오랜 경험을 통해 나는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그 당시 그 거리를 지나던 수많은 인파가 길에 쓰러져 있던 그를, 술 취한 주정뱅이 정도로만 생각하고 지나쳤던 모습이 근처 CCTV에 다 찍혀 있었다. 나중에 그의 가족들이 그날 밤 녹화된 영상을 확인차 보았을 때, 매 초, 매 분이 흐를 때마다 그들의 가슴은 갈가리 찢겼을 것이다. 누군가가 바로 경찰을 불러 병원으로 옮겨졌다면이라는 가정을 그들은 수십 번 수백 번을 반복했을 것이다. 나중에 범인은 잡혔지만 이미 식물이 되어버린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랬다 이런 경험을 내 마음속 한켠에 간직하고 있는 나에게, 오늘 남편의 실종이 불안한 것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나는 다시 한번 남편의 전화를 눌러보았다. 신호는 가지만 응답은 없었다. 25년 동안의 결혼생활이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그 긴 세월을 순간으로 압축하자 남편은 내게 참 좋은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많은 다툼들의 결과로 이어진 서로 간의 소심한 복수, 파워게임 등등 이제 겨우 서로 균형을 잡아가며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가고 있던 중인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그때 갑자기 모르는 전화번호가 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떴다, 얼른 전화의 스피커를 켜고 응답을 했다.

좀 전에 신고 접수를 받았던 경찰관이었다. 내가 수색 경과를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무심한 말투로

“번호를 잘못 눌렀습니다“ 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끝까지 불친절한 사람이었다, 이왕 걸린 전화니 빈말이라도 "남편분과 연락이 닿았습니까" 라고 물어볼수도 있으련만.

다시 전화가 울렸다, 그런데 이번엔 남편 번호가 떴다! 기쁨 반 두려움 반으로 스피커폰을 컸다. 웬 두려움이냐고? 전화 거는 사람이 남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사고 사실을 알려주려 남편의 전화를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너무나도 여유롭고 기분이 좋은 듯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야? 전화가 엄청 많이 왔네?“

처음엔 악 소리를 지르다가, 순간 이성을 되찾은 나는 사춘기 아들을 혼내는 엄마의 심정으로

“너, 미쳤냐? 도대체 어딘데 전화도 안 받고 집에도 안 오고. 너 경찰에 실종신고 됐어! 내가 했어!, 지금 니 폰 봐봐, 경찰서에서도 수십 번 전화했을걸, 근데 벨소리가 안 들리디?“

“오, 미안해, 하지만 무음 상태니까 당연히 못 들었지. 아침에 나가면서 얘기했잖아, 오늘 모임 있어서 늦게 들어온다고“ 그 말을 듣고 보니 아침에 웬 개미소리 같은 걸 들은 기억이 났다.

나는 우리 집 최남단에 있는 안방에서 문을 닫은 채 신문을 읽고 있었고, 남편은 최북단에 있는 현관을 떠나기 전에 그 “늦는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집을 나섰던 것이었다. 그 북쪽에서 던진 메시지가 남쪽에서는 개미가 옹알옹알하는 의미 없는 소리로 들렸으니 이런 사단이 날 수밖에. 목소리에도 휘발성이 있나 보다, 하여간 이 작은 아파트 안에서도 남과 북의 거리는 꽤 멀었다.


이렇게 어이없이 물보다 더 싱겁게 남편 실종 사건은 막을 내렸다. 남편은 찾았지만 약간 무거운 마음으로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그렇지 않으면 밤새 수색해야 한다던 그 중년 경찰을 위해 나의 창피함은 접어 두기로 했다. 그리고 민폐를 끼쳤던 그 옛 거래처 변호사에게도 "남편 무사 귀환"의 메시지를 넣었다.

이날 밤 이 어처구니없는 코미디 덕분에 나와 남편은 의사소통 하는 방법에 대해 다시 논의했다.

다행히, 자신에게 걸려온 수십 통에 이르는 전화 리스트를 본 후 남편도 적극적으로 응해 주었다.

규칙 넘버원, 서로 알아야 할 용건이 있을 땐 서로의 눈을 보고 말을 하거나 메시지를 남기자.

넘버투, 외출 중이라도 최소 1시간당 1번은 스마트폰을 체크하는 습관을 가지자.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내가 배운 가장 큰 한 가지는 나와 나란히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는 배우자의 소중함이었다. 평소에는 내 우선순위 리스트에서 제일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그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그 빈자리는 엄청나게 크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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