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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 람 Jun 27. 2024

도화지위 짧은 묵상

빛과 어둠

연필로 그리는 것은 아주 단순하고 솔직해질 수 있는 작업이다.

특히 자연을 보고 그릴 땐 더 그러하다.


하얀 도화지는 이미 빛으로 가득 차있다.

때론 부드럽게 때론 강하게,

때론 동그랗게 때론 똑바로.

한 동작 한 동작 연필로 만들어가는 어둠이

자연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빛,

그리고 그 안에서

어두움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세계가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창세기의 신화가 따로 없다.


빛으로만 가득 차있다면 분별되는 각각의 존재는 빛가운데 사라져 버린다.

완전한 어둠 역시 분별할 수 없는 세계이다.

빛만 있고 어둠만 있다면 무언들 그릴 것이 있겠는가?

빛가운데 어둠이 있고  어둠 속에도 빛이 있기에 빛 안에서 어둠을 그리고 어둠 속에서 빛을 그려간다.

어둠을 깊게 표현할수록 상대적으로 빛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빛과 어둠사이를 넘나들다 보면 어느덧 그 흔적이 그림이 되어있다.


일상을 살아가는 날들도 그렇게 빛나는 날들과 어두웠던 날들이 뒤섞여 삶의 흔적을 만들어간다.

일상은 늘 어둠만 있지 않고 늘 빛나는 날만 있지 않다.


낙서가 되느냐 예술이 되느냐는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얼마나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나가는 것에 달려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주어진 삶이 허락된 날까지 내게 맡겨진 운명을 포기하지 않고 정성으로 지켜나가길 다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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