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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물리학자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든 것

김상욱,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바다출판사, 2023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윤동주의 시 <서시>는 ‘하늘’, ‘바람’, ‘별’을 통해 시인이 처한 현실과 소망을 노래한다. 시가 서문으로 실린 윤동주의 시집 제목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애초에 무제(無題)였던 이 시의 제목으로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가혹했던 현실, 그래서 더 간절했던 소망이 애잔하게 마음에 와닿기 때문이다.


저자의 신간 제목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시집의 제목에서 느꼈던 애잔함이 절로 일었다. 이 책의 설명을 빌리자면 오랜 세월의 학습에 따라 내 뇌 속 시냅스 연결이 강화된 탓이리라. 하지만 제목 아래 쓰인 부제 ‘원자에서 인간까지’를 발견하는 순간 새로운 시냅스가 연결되기 시작한다.


그렇다. 이 책은 본격적인 과학책이다. 제목의 ‘하늘’은 우주와 법칙을, ‘바람’은 시간과 공간을, ‘별’은 물질과 에너지를 뜻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우주와 법칙과 시간과 공간과 물질과 에너지, 거기에 ‘인간’까지 더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물리학자의 눈으로 들여다본다.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는 에세이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에서 동료 천문학자를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나는 이 표현을 무척 좋아하는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무해한 사람들’이 쓴 책도 무척 좋아한다. 순수한 지적 호기심으로 대상을 끈질기게 탐구하고 마침내 완벽히 소화해 낸 덕분에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 사람들의 글. 나에게는 이보다 삶에 영감을 주는 것이 없다. 그리고 책의 저자인 김상욱 교수는 내 기준에서 봤을 때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무해한 사람’이다.


누군가 책을 여덟 글자로 요약해 보라고 했을 때 가장 훌륭한 결과물은 부제인 ‘원자에서 인간까지’가 아닐까 싶다. 말 그대로 만물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 그러니까 원자를 이루는 기본 입자(소립자)부터 복잡하기 그지없는 생명체인 인간에 이르기까지 서서히 줌 아웃하며 설명한다. 그러나 줌 아웃은 연속적이지 않다. 기본 입자에서 원자로, 원자에서 분자로, 분자에서 세포로, 세포에서 인간으로 넘어가는 단계가 연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원자의 특성을 바탕으로 분자의 특성을 추론해 내기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세포 몇 개를 관찰한다고 해서 인간의 두뇌 활동을 설명할 수는 없다. 저자는 각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사이에 예측 불가능한 특성이 보태지는 것을 ‘창발’이라고 표현했다. “‘창발’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가운데 하나다.” (382쪽)


책은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앞부분, 그러니까 1장과 2장은 고등학교 과학 시간이나 대학교 교양 물리화학생물지질학 시간에 배웠을 법한 내용을 가볍게(?) 훑는다. 인상적인 부분은 뒤에 이어지는 3, 4장이었는데 말하자면 ‘물리학자가 설명해 주는 생물학인지과학진화심리학이다. 특히 우리 몸의 DNA 복제, 에너지 생성을 원자 수준에서 설명한 부분은 내가 읽은 생물학책 모두를 통틀어 봐도 빼어나다고 여겨질 만큼 무척 상세하면서도 이해하기 쉽다. 다세포 생물에서 인간에 이르는 동물 진화의 역사도 다룬다. , 진화 계통수의 시작점에서 어떻게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는지를 대략적으로 설명한다.  부분을 읽으면 지렁이와 인간, 혹은 불가사리와 인간 사이에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는지   있다.


저자의 전작이 그러하듯 본문을 쓰면서 참고하거나 인용한 문헌을 성실하게 주석으로 달아 두었다. 아울러 주석에 등장한 문헌들은 책 끝에 참고 문헌으로 정리되어 있다. 특히나 이번 책 참고 문헌의 몇몇 항목에는 ‘빈칸’이 있다. “_______, 양은주 옮김, 《산소》, 뿌리와이파리, 2016” 하는 식이다. 책 어디에도 빈칸을 어떻게 하라거나 어떤 목적으로 비워 두었다고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학창 시절, 다년간의 시험 경험으로 강화된 시냅스를 지닌 사람이라면 어쩐지 빈칸을 채워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 터이다. 어쨌든 한때 추천 도서 목록 컬렉터기도 했던 나는 물리학자의 추천 도서 목록까지 얻어 마음이 설렌다.


여기까지 몇 가지 단어들을 조합해 내 나름대로 책을 설명했지만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의 특성에서 물의 특성을 추론해 낼 수 없듯 나의 부족한 단어들을 통해 책의 진가를 추론해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책이 이루어 낸 ‘창발’을 확인하려면 오직 읽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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