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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 Mar 06. 2022

결국 먹고 사는 일의 고됨은 똑같은 것을

<내과 박원장>



화려해 보이는 삶도 그만의 고충이 있다.


누가 그걸 모르나? 고충이 없는 삶은 없다. 다만 다른 분야에서 다른 루틴으로 일하는 사람끼리 각자가 가진 고충을 이해하기 어려울 뿐더러, 애초에 화려한 삶 이면의 고충은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화려한 삶, 잘 버는 삶으로 대표되는 직업 중 하나가 ‘의사’이다. 의사라는 직업이 겪는 고충은 여러 콘텐츠에서 다룬 바 있다. 밤낮도 휴일도 없이 일하는 살인적인 스케줄, 최선을 다해도 항상 마주하는 삶과 죽음의 경계, 정치판 못지 않은 병원 내 권력 다툼을 보고 있으면 ‘의사 아무나 못 한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많은 압박을 받는 직업이다.


하지만 누구도 의사를 ‘생계’와 연결 짓지 않는다. 힘든 직업이라는 사실은 많이 알아도 돈에 허덕이는 직업이라는 생각은 대부분 하지 않는다. 나 역시 타인의 재력을 설명할 때 ‘그 사람 의사야.’ 라는 한 문장으로 압축할 때가 있었다. <내과 박원장>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과 박원장>은 한 내과 개원의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릴 적 TV로 멋진 의사의 모습을 보고 의사가 되겠다 결심한 주인공 ‘박원장’은 TV 속 모습이 실현될 날을 꿈꾸며 매 순간 열심히 살아간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기나긴 공부 기간을 인내하며 버텼지만 의대 졸업 이후에도 치러야 할 시험은 끝도 없이 남아있다. 졸업 후 병원에서 경험을 쌓지만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사명감을 지키기에는 눈 앞에 닥친 상황과 조건이 허락하지 않는다. ‘어머니!!! 이것만 끝나면 찬란한 인생이 시작되는 겁니까!!!’를 외치던 박원장은 어릴 적 꿈꾼 ‘찬란한 의사의 인생’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주 뒤늦게 깨닫고, 처자식의 찬란한 인생을 위해 내과를 개원한다.


몇 년에 걸쳐 찬란한 인생이 마침내 시작된다고 믿는 박원장.


작가는 내과 개원의의 일상을 통해 병원 운영이 얼마나 경쟁이 치열하고 녹록지 않은 분야인지 보여준다. 수도권이나 지방 큰 도시는 개원 자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병원이 동네마다 각축전을 벌이고, 작은 소도시나 시골에는 먼저 자리를 잡은 병원이 환자를 뺏기지 않기 위해 텃세를 부리기 일쑤다. 어렵사리 개원해도 병원을 찾는 환자는 또 어찌나 버라이어티한지, 보다보면 현실이 아니라 판타지라고 믿고 싶을 정도로 온갖 진상이 판을 친다. 대학병원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운영 인원이 적은 개인 병원은 의사가 실력만 있어서는 안 되고, 서비스 마인드와 처세술, 장사꾼과 같은 기민한 경제 감각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다.


유쾌한 톤으로 그려진 병원 진상과 의사를 둘러싼 편견 어린 시선


작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풍성하고 현실적인 소재를 유쾌한 톤으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작가 본인이 의사이며 개인 경험과 주변에서 보고 들은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재구성하기 때문에 커뮤니티에서 볼 법한 리얼하고도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작가는 현실에 맞닿은 이야기를 다큐처럼 매우 진지하게 풀거나 드라마처럼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고 풍자와 자조를 섞은 시선으로 풀어낸다. 작가 인터뷰를 보면 ‘의사가 힘든 얘기를 해서 욕을 많이 먹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공감하는 댓글이 많아 놀랐다’고 하는데, 유쾌하면서도 씁쓸한 시선이 공감을 얻는 데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본 한 칼럼에서 본 내용이 생각난다. 방송인 김구라에 관한 칼럼이었는데, 대중은 김구라 덕분에 ‘방송인 역시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 라는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김구라를 봤을 때, 방송에서 시도때도 없이 ‘돈 때문에 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하거나 게스트에게 수입을 묻는 모습이 상당히 낯설었다. 기승전'돈’으로 끝나는 발언을 두고 상당히 호불호가 갈렸으나 칼럼 내용처럼 김구라 덕분에 방송인이 마냥 즐겁게 일하는 사람이 아닌, 우리와 마찬가지로 돈을 벌기 위한 업을 해내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내과 박원장>도 비슷한 영향을 끼쳤다. 회차마다 비슷한 현실에 직면한 의사가 댓글을 달기도 하고, 전혀 다른 분야인데도 같은 노동자로서 박원장이 느끼는 감정에 공감하기도 한다. 나도 보면서 애를 셋 키우면서 이비인후과를 개원해 운영 중인 사촌 오빠가 떠올랐다. 가끔씩 오빠 이야기를 하다가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래도 오빠는 의사잖아~’ 라는 결론으로 마무리하곤 했는데, 작품을 본 이후에는 농담이라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게 될 듯하다. 결국 먹고 사는 일이란 누구에게나 똑같이 고되고 힘든 일이니까. 



작품명: <내과 박원장>
작가: 장봉수
플랫폼: 네이버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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