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상, 포도쇼츠
'좋아하는 게 뭐예요?'라는 물음에 지금처럼 다양하게 답할 수 있는 시대가 있었을까요. 혼자서 소소하게 혹은 은밀하게 즐기거나 특정 그룹에서만 공유되던 취향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취향이 넘치는 시대죠. 미디어가 발달하며 책이나 영화, 음악은 물론 다양한 1인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들(캐릭터, 인물 등), 특정 브랜드, 제품, 생활 소품과 습관들까지. 내 소신을 담을 수 있는 것들 소위 말해 '덕질'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너무너무 많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취향이 존중받고 있는 것도 사실인데요. 많이 먹는 게 중심이던 대식 먹방의 유행 뒤에는 미식, 좋은 소리가 나는 음식 ASMR, 나아가 적은 양을 먹는 소식좌의 먹방들까지. 나와 다름에도 접점을 찾아 소통하며 재미를 찾습니다. 테니스, 골프, 방탈출 게임, 수집, 만들기 등 개인의 SNS나 유튜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취미생활을 공유하며 소통합니다. 그만큼 소통의 정도나 파급력 또한 큽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의 '취향'은 간혹 내가 영위하고 있는 일상보다 더 크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저 사람은 정말 그걸 좋아해서 취미로 갖는 게 맞는 건지, 일상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SNS 같기도 하구요. 취향이 곧 '나'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시대적인(?) 느낌 때문일까요. 아니면 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발달로 소통과 연대의 크기가 더욱 커져서일까요.
어찌 됐건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건 매우 중요하고 또 건강한 일입니다. 일상의 고뇌를 잊고 행복을 주는 취향이면 더없이 좋을 테죠. 다만, 이 취향은 불안과 회피가 기저에 깔린 몰입 이어선 안될 것입니다. 나에 대한 '존중'이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내면에 충분히 귀를 기울였다면, 이제 마음껏 취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