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손해보고 사는 인간의 업계 생존기
독하고 악랄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조금 빨리 성공하는 사례를 우리는 종종 목격한다. 여기서 독하다는 건 사전적 의미 그대로다.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독(毒)을 품은 듯 독기가 있다. 마음이나 성격 따위가 모질다는 뜻이다. 독하게 마음먹고 공무원 시험에 드디어 합격했다!처럼 누군가의 일기장에 쓰이는 그런 고귀한 의미가 아니다.
독한자들의 성공은 조금 빠를 뿐 완벽한 성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원하는 목표로 매진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줬을 것이며, 모르는 척 경쟁자의 명치를 팔꿈치로 쿡하고 찔러 탈선하게 만들었으며, 그들로 하여금 이 바닥을 경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비신사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레이스를 거친 후 얻은 악인의 성과는 안타깝게도 눈이 부시다. 그 일화는 명예롭게 기록되고, 업계의 후배들을 또 다른 악인으로 키워낸다.
경쟁의 결과를 줄 세워야 하고, 박수받는 자가 있으면 비난받는 자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세상.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한 유명 증권회사는 업계가 호황이던 시절, 연말 행사장 맨 앞줄에 각 지점장을 성과 1위부터 꼴찌까지 순서대로 앉혀놓았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고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는 처사다. 나에게 이 일화를 들려준 분은 그 회사를 조기 퇴사 후, 증시 전문가로 활동 중인데 중년의 나이에도 지드레곤의 음악을 즐겨 듣는 유연하고도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그런 그에게 당시 현장의 분위기는 얼마나 큰 압박감으로 다가왔을까? 또 당당히 1위 자리에 앉아 영광을 누린 그 위너는 순도 100%의 온전한 기쁨을 느낄 수 있었을까? 그 역시도 매우 불편했을 것이라 믿고 싶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했지만, 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생활인들은 악인이 판치는 더럽고 치사한 자신의 업계를 떠나기도 쉽지 않다.
일하는 과정 중에 누군가 나를 곤란하게 하거나 근본 없는 갑질로 괴롭게 할 때 나는 똑같이 갚아주거나 맞서며 날을 세우지 못했다. 이유는 나는 그런 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의 기여도를 따지고, 좋은 결과에 내 이름표를 붙이기 위해 불편한 마음을 감수하는 것. 나에겐 그것이 쉽지 않았다. 분노와 다툼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손해보고 털어버리는 일이 많았다.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인 남편은 그런 날 답답해하고, 비난으로 느껴지는 조언을 쏟아내기도 한다. 내가 특별히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 아닌데도 그 탓을 나에게 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강도를 당한 이에게 왜 강도가 다니는 길로 갔냐고 혼내는 것 같았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부담을 주고 피해를 줄까, 또는 갑질로 느껴질까 우려하며 많은 일을 떠안고 허덕 인적도 많다.
그러다가 한 번씩 '진짜 어른'을 만나면 좋은 사람의 가능성을 믿게 된다. 그들은 독하지도 악하지도 않게 업계에 존재해오며 자신의 길을 닦아가고 있었다. 살아남음을 넘어 업계 최고로 칭송받는 경우도 있다. 보고 듣고도 믿기 힘든 이 신화 같은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찡하고 눈물까지 고여온다. 하아... 이게 뭐라고. 타인에게 악한 말과 기운을 쏟아내지 않고, 피해도 상처도 주지 않으며 점잖게 업계에서 성공하기가 그렇게 어려울 일이냔 말이다.
지나간 자리마다 미담이 샘솟는
위너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구글의 나이스 가이라 불리던 남자. 현재는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의 CEO 순다르 피차이가 그랬고, 영화판에 복지의 개념을 실현한 봉준호 감독이 그랬다. 꼭 이런 대성한 인물들 뿐 아니라 생각보다 우리 주위에는 착한 본성을 잃지 않으며 업계에 살아남고, 성장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이 많다. 다만 그들의 과정에는 고려해야 할 상황들과 배려해야 할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성공이라 말하는 아웃풋이 조금 더뎠을 뿐이다. 그러한 이들의 성공은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완전한 성공인 경우가 많다. 과정과 결과가 모두 아름다운 성공.
그 후엔 악인은 절대 느끼지 못할 평온이 찾아올 것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선함으로써 악함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절대 틀리지 않았다고. 옳은 길은 언제나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