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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사공이 Apr 12. 2023

자기만의 방

갖고 싶다. 샤넬백보다 더


 어릴 적,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 오롯이 나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내 공간을 갖는 것. 책상 하나, 단출한 요하나 깔 수 있을 정도의 그저 작은 방이면 되었다. 하지만 서른이 다 되도록 나는 내 방을 갖지 못했다. 나의 '내 방'에 대한 집착의 역사는 버지니아울프만큼이나 깊고 길다. 조부모님 댁에서 대가족을 이루고 살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분가해 나왔다. 수원 변두리, 논밭두렁뷰의 20평대 작은 아파트였다. 방이 두 개뿐인 그곳에서는 다섯 식구 중 그 누구도 개인적인 공간을 가질 수 없었다. 사춘기 시절 남몰래 가슴앓이를 털어놓던 일기장 하나 숨겨둘 곳이 없었다.


 몇 해가 지나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갔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부쩍 커진 우리 삼 남매의 덩치도 한몫했지만 버리지 못하고 이고 지고 온 부질없는 짐들이 집안을 가득 채웠다. 사춘기에 접어든 남동생에게 방을 하나 주고 나니 여동생과 또 한방을 써야 했다. 그 누구의 방도 아닌 좁디좁은 방에서 여동생과 지겹게 싸웠다. 룸메이트가 아닌 룸파이터였다. 독립할 능력이 없었기에 그곳에서 스물아홉까지 꾸역꾸역 버티며 살았다. 그러다 편찮으신 할머니를 집으로 모시며 방 하나를 내드리게 됐고, 우리 자매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여동생과 방 2개짜리 연립주택 월세를 얻어 독립을 한 것이다.


 생애최초의 ‘자기 방’을 소유한 우리 자매는 전에 없던 청소와 요리 재능을 펼치기 시작한다. 자매의 파이터 본능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만의 취향으로 꾸민 내 공간에서 나는 충만한 행복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행복은 그리 가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다른 형태의 행복으로 대체되었다. 아주 우연스레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그냥 이렇게 표현하도록 하겠다)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2년 임대차계약을 다 채우지도 않고, 월세 방을 빼서 남자친구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때부터 결혼생활 10년 내내 내 방을 가진 적이 없다. 아이를 낳고 일도 하며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고독감 같은 감정은 사치였다. 당장 눈앞에 놓인 여러 사건사고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을 처리하다 보니 머리에 꽃만 안 꽂았지 온전치 못한 여인내로 살아하게 된다. 그러다 문득 내 안에 목소리를 듣게 된다.  


‘혼자 있고 싶다’


 그 후로부터 한참 시간이 흘러 5번의 이사 끝에 비로소 내 방을 다시 소유하게 되었다. 생애최초의 경험만큼이나 짜릿한 그 느낌! ‘나, 내 방 있는 아줌마야~’ 이대 나온 여자가 남편이 샤넬백을 사줬다는 말보다 더 부러운 말 아닐까? 다행히도 우리 세 식구는 각자의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토록 갈구했던 내 방의 공기를 매일같이 음미한다. 그 어떤 디퓨저도 필요 없다. ‘홀로 있음’이 최고의 향기다. 오늘도 나는 내 방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타닥타닥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그 어떤 피아노 연주보다 감미롭다. 지금 이 순간, 참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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